바른 생각 바른 글

첫눈이 오면 여기로 꼭 나와야 해. 그러나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지구빵집 2016. 11. 2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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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이는 계절이다. 계절이 바뀐다고 말한다. 가을이 가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눈이 오기 전에 한 번 연락이라도 해야 했다. 그 여자와 같이 캠퍼스에 있을 때는 계절마다 만났다. 봄에는 독서 모임으로 만나고, 여름에는 동아리 모임을 따라가서 만났다. 

가을에는 서로 외롭기도 해서 내가 자주 가는 술집이나 그녀가 일하는 과사무실에서 만났다.

겨울 방학 때는 눈이 내리건 안 내리건 만났다. 인적이 드문 학교에선 식당에서도 만나고, 도서관에서도 만나고, 과사무실에도 만났다. 가끔은 집으로 가는 방향이라서 버스에서도 옆자리에 앉아서 갔다. 빈 강의실에서도 자주 만났다.


지금은 가까운 곳에 산다고 한다. 강의도 나가는 모양이다.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는 말을 왜 좀 더 일찍 못했을까. 

"네가 먼저 졸업을 하는구나" 

"그래" 

"잘 지내라" 

"그래" 

"사회에 나가면 보자" 

"그래" 

"첫눈이 내리면 여기 64동 건물 뒤편 변전소 앞에서 꼭 만나자" 고 했다. 큰 키에 큰 눈으로, 긴 머리 자락을 감으며 "알았다"고 했다.


첫눈은 폭설이 되어 내렸다. 첫눈은 기상관측소 직원이 육안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확인한 경우 인정이 된다고 한다. 이런 눈을 확인 못할 리 없다. 여자는 잊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도 변전소 앞 잔디밭에 가지 않았다. 아마 그 후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젠장 니가 내 일을 알기나 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나 하냐고! 난 오르고 싶어. 여자라서가 아니고 나라서. 나만이 가능한 곳까지 올라갈 거야.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올라갈 거라고! 어쩌다가 가끔 보는 너는 부담스러워. 친구면 친구처럼 지내. 미안해." 


"난 늘 내 길이 맞다고 생각해. 너처럼 느슨하고, 연약하고, 데모나 하러 다니는 그런 여유가 없어. 네가 나에게 잘해준 건 알겠어. 그런데 첫눈이 오면 만나자든가, 떠난 지 오래된 시골 마을에서 보자는 그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지난 일이야.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너는 줄기차게 걸어가면서 왜 내가 그곳에 있길 바라는 거지? 너도 안 나올거잖아!"

첫눈은 그렇게 내렸다. 아주 퍼엉퍼엉. 아주 조금만 내려도 첫눈인줄 아는데 각인시키려고 그렇게 험하게 온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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