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호를 얻다. 여름이 가기 전에 지어준다던.

지구빵집 2017. 10. 1. 17:21
반응형

 

  한 여름에 그가 나에게 호를 지어준다고 했다.  주위에 호를 가진 사람이 여럿 있다.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보통 필명으로 쓰거나 별호(別號)로 지어 우아하게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원래는 8월 중순 생일이 되기 전에 지어줄려고 하다가 늦어지고, 8월 말 여름이 가기 전에 지어 주었다. 맑은 날아침, 밝은 곳에서, 깨끗한 기운으로 생각해야 좋은 호가 나온다고 해서 그런 날을 찾느냐고 늦었다고 했다. 마침 8월은 비도 많이 오고, 흐린날도 많았다. 동네에 아는 분들도 호를 서로 지어주기도 한다. 가까이 지내는 분들 호를 보면 청안, 과농, 을목, 혜안 등이다. 의미도 모두 좋을 수 밖에 없는데 너무 건방 떠는 듯 지어줘서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친구는 주역이나 사주, 수행 쪽 공부를 많이 했다.

 

  호란 어떤 사람이 본 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을 말한다. 아호는 흔히 시·문·서·화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호라는 뜻으로 일컬음이요, 당호는 본래 집(正堂과 屋宇)의 호를 말함이나, 그 집의 주인을 일컫게도 되어 아호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아호(雅號)를 짓는 작법(作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보통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뜻이 있는 문자를 사용해 인생관이나 좌우명 그리고 신념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둘째, 본인의 소망 취미 적성 성격 직업에 알맞은 문자를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셋째, 이름과 마찬가지로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서 울려서 퍼지는 소노리티(Sonority)가 좋아야한다. 

넷째, 아호 자체의 음양오행이나 수리오행에 서로 상극되는 경우를 피하고 길함이 좋다. 

다섯째, 타고난 사주와 음양오행의 조화를 이루게 하고 본명의 결함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여섯째, 아호 두 글자의 획수를 합하여 길한 수리를 사용해야 한다. 

일곱째, 아호는 겸손을 미덕으로 하여 높고 고귀한 문자보다는 소박하고 정감이 있는 겸손한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자료참고 http://blog.daum.net/yescheers/8597670, 책 - 아호연구)

 

  그는 위에 설명한 7가지의 작법을 모두 적용하여 호를 지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하고 있는 일, 이름자의 한문 획수, 사주와 음양오행, 태어난 시 일 월 년과 장소, 어릴 때 살던 곳, 태어난 곳, 지향하는 바, 획수, 약한 물과 나무를 보완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내용까지 모든 의미를 고려하여 끙끙거리며 지어주었다. 5가지의 후보군을 지었고, 마음에 드는 호을 선택해보라고 했다. 드디어 내게 고민의 시간을 주었다. 

 

  그가 지어준 호의 후보군이다. 1. 과하(果河) - 과천의 강 2. 공파(供波) - 물결을 일으켜 이바지하다 3. 곡비(谷飛) - 골짜기 날다 4. 견하(見河) - 물을 바라보다 5. 마경(馬耕) - 말이 경작하다. 

 

  그에게 호를 받은 날부터 처음에는 크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단어를 생각했다. 그리고 큰 의미, 세상을 품을 정도, 포괄하는 등의 의미를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진짜 쓸 데 없는 일이었다. 의미는 중요한 게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지내온 삶을 돌아보았고,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생각했고, 굳건하게 바닥을 딛고서 살아갈 수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작아도 좋고, 겸손해야 하고, 지혜가 있고, 고요한 의미를 지닌 호를 선택했다.

 
  "見河 견하 강물을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좋았다. 조용하면서도 내면에 가득 찬 큰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분노와 심술이 녹아 없어지고, 갈증이 해소되고, 원하는 바람들을 하나씩 이루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일을 사람들의 판단과 평가를 받아 볼 필요는 없다. 그들도 처음이고, 우리도 처음이다. 만난 사람이 다르고, 키우는 자식이 다르고, 하는 일들이 다르다. 더군다나 햇살도 다르고, 바람과 공기까지 다르다. 누군가에게 처음이듯 모든 사람에게는 처음이다. 그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 '견하'를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호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에게 고마웠다. 늘 그에게 받기만 한다. 글을 쓰는 마지막에도 넣어야 하고, 서명도 바꿔보고, 소개자료에도 이름 옆에 넣어야 하고 갑자기 사용할 데가 많아졌다. 아마도 이것도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8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간다. 
 
"見河 견하, 강물을 바라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