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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숏커트의 단발 머리가 트랙을 달리는 발 아래 일렁인다.




운동장 트랙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다. 짙은 초록색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가운데 있다. 축구장을 둘러싼 붉은색 바닥의 트랙 여덟 라인이 흰색 페인트로 말끔하게 구분되어 있다. 트랙을 도는 달리기 훈련을 처음 하게 되면 조금은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씩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루한 느낌은 사라지고 달리기가 편해지기 시작한다. 바로 트랙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는 때다.


일정한 시간을 달린다든지, 아니면 거리를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운동장 트랙(400m 공식트랙)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트랙은 가장 안쪽부터 1레인이 시작되고 보통 8레인까지 그려져 있다. 트랙에서 연습하는 사람의 수가 많을 경우, 한 사람이 가장 안쪽 레인(lane)만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반 운동장의 트랙에서 각 레인 간의 폭은 대부분 42인치(106cm)이다. 이 경우 안쪽 레인은 물론 정확히 400m이다. 4번째 레인은 422m, 마지막 8번째 레인은 454m이다. 다른 레인의 길이도 이 거리를 기준으로 추정치를 구할 수 있다.
세계육상연맹(IAAF)의 규정집에 따르면 레인의 폭은 36~48인치까지 다양하다. 이 폭에 따라 각 레인의 길이도 차이가 있다. 국제규격은 48인치로 바깥 레인이 가장 길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인 간 거리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천천히 안쪽 레인을 달리면서 시간을 측정한다. 각 레인의 시간을 측정하면서 2, 3, 4레인으로 이동하면서 기록을 재보면 각 레인 간 약 2초 정도의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만약 8레인에서 4바퀴를 돌고 1,600m의 기록을 산출하려면 실제 시간에서 트랙을 돈 횟수에 2초를 곱한 시간을 빼면 실제의 기록을 측정할 수 있다.
오른쪽 무릎이 불편한 여자가 억지로 시간을 내어 목요일 훈련에 왔다. 무릎에는 충격을 방지하고 근육을 제대로 잡아주는 테이프가 붙어 있다. 일찍 도착해서 몇 바퀴 돈 모양이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몸이 더워져 열기가 올라 불그스레한 얼굴은 예쁘다는 말 한마디로 설명이 안 되는 훨씬 많은 단어로 설명될 필요가 있는 얼굴이다. 만지고 싶고, 비비고 싶은 얼굴이다.
"통증이 조금 있지만 쉬지 않으려고 나왔어." 여자가 말했다.
"조금도 아프지 않게 다 날 때까지는 뛰지 말지 그러니? 걱정된다. 이 구제불능아." 남자가 말했다.
"괜찮아. 조금씩이라도 달리고 싶어. 얼마 안 있으면 개강인데 그때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달려야 할 것 같아서." 여자가 말했다.
"부상도 그렇고, 아프면 안 돼!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야." 남자가 말했다.
러너들이 두 줄을 맞춰 천천히 1km를 6분 30초에서 7분 정도의 조깅 속도로  달린다. 여자는 내 뒤에 바싹 붙어 달린다. 운동장 구석 4곳에 세워진 큰 라이트가 축구장과 트랙을 밝게 비추고 있다. 여자가 걱정되어 정면을 보는 얼굴을 숙여 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짧은 쇼트컷 머리가 트랙을 달리는 내 발 옆에 출렁인다. '잘 달리고 있구나.' 생각하자 마자 여자가 앞으로 움찔하며 손을 내 어깨에 짚는다. 발이 조금 틀어지는 듯 했다.
"어엇, 미안해."
"아냐, 조심해, 숫자 세고 있지?" 
여자도 틀림없이 발걸음을 셀 것으로 생각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선배 한 분이 숫자 세기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달리면서 걸음을 세는 일이다. 발을 놓는 숫자를 단순하게 세는 일이다. 신기하게 먼저 세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만약 오른쪽 발이 불편하면 왼발을 먼저 센다. 4걸음에 하나를 세어도 좋고 두 걸음에 하나씩 세어도 된다. 먼저 세는 발에 힘이 들어가니 조금 불편한 발에는 힘이 실리지 않아 절뚝거리지 않고 조금은 편하게 달리기를 할 수 있다. 같은 거리를 달리면서 숫자를 셀 때는 숫자와 거리가 정확하게 비례한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숫자는 줄어들고, 천천히 달리면 숫자가 늘어난다. 속도와 보폭과 걸음이 아주 정확하게 일치됨을 느끼는 순간은 신기하기만 하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숫자세기의 강한 힘은 잊히지 않는다.
숫자세기는 달리기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굉장히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무조건 센다. 걸어갈 때도, 욕조에 들어갈 때도, 누워서도 틈만 나면 센다. 명상하거나 생각할 때도 센다. 간격과 반복은 세는 사람 마음이다. 영화에서 시계 없이 하나씩 세어가며 시간을 서로 맞추거나, 정확히 길이가 맞는 노래를 불러가며 탈출하는 장면에 숫자세기가 나온다. 
여자는 언제쯤 아픈 무릎이 다 낳을까? 낳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일은 힘들다. 그러나 내가 말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자는 여자의 삶이 있다. 나는 나의 삶이 있듯이 말이다. 온전히 낳길 바랄 뿐이다. 다시 예전처럼 같이 달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지 않으리란 걸,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즐겁지 않은 표정이다. 
남자는 여자가 지내 온 과거가 남자의 미래에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하는 모든 일이 오직 단 한 번만 일어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見河-







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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