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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춘천마라톤 대회가 며칠 남지 않았다. 남자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는다. 늘 하는 일이지만 오늘따라 신중하다. 머지않아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남자는 욕조에서 나와서 더 늦기 전에 가만히 발톱과 손톱을 깎는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에는 늘 하는 일이다. 한 달 전에 풀코스 42.195킬로미터를 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마지막 점검을 위해 손기정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달렸다. 남자는 서서히 운동량을 줄이며 일주일에 3번 가볍게 뛰면서 대회일을 기다린다. 2주 정도 남겨 놓고는 마음 편하게 몸 상태를 아주 좋은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한 준비를 하며 지낸다. 주중에 두 번 가볍게 6킬로미터를 달리고 마지막에 100미터 인터벌을 4회 정도 한다. 복근 운동이나 근육 운동을 하던 대로 한다. 대회날이 가까울수록 새로운 운동법, 새 신발, 새 양말, 몸에 좋은 음식은 하지 않는다. 선배들 말대로 '늘 하던 대로' 지낸다. 운동선수도 아니고 대단한 기록을 내기 위해 단련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발이 도착했다. 기린 목이 되어 기다릴 정도로 늦게 도착했다. 메이저 마라톤 대회에 출사표나 후기에 글을 보낸다. 글을 써서 남자는 선물을 받은 게 두 번째다. 도착한 신발은 검은색 아식스 젤 카야노-25W 모델인 240밀리미터 크기 러닝화다. 선물을 받은 여자는 무척 좋은가보다. 조금은 비싼 신발을 공짜로 얻어서 그런가. 2주 전에 여자는 운동복 위에 가볍게 입는 싱글렛을 사주었다. 춘천마라톤을 잘 뛰라고 말했다. 춘천마라톤 출사표 이벤트에 글을 올려 당선되었다. 부상으로 받은 신발을 그에게 보냈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일, 눈에 안 보이는 좋은 것들을 가르쳐준 일, 무엇보다 집중하는 방법을 알려준 일들이 고마웠다. 오래도록 먼 거리를 잘 달릴 수 있기를 바랐다.

 

"편하고 좋아요! 사다 놓은 주황색 끈으로도 매 봤어. 덕분에 좋은 새 신발 신어보네. 고마워." 여자가 말했다.

 

"사진 많이 보내달라고 했지? 그리고 발목까지 나오는 사진도 보내달라고 했지? 왜 발목까지 나와야 하는데?" 여자가 말했다.

 

무엇이든 궁금한 사람이다. 신발 크기와 받을 주소를 보내고 신발을 받을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출사표 당선 사실을 알렸다. 신발이 도착하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발목이 말해주는 것은 많다. 가늘고 하얀 발목은 건강함을 보여준다. 자연스레 굴곡이 생길 테니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난다. 성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속설도 있다. 여자의 가는 발목을 보고 싶었다.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른다. 여자의 가는 팔목 하고 똑같이 발목도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린 안쪽에 쏙 잡혔다. 이건 눈으로는 잘 안 보인다. 손목이 가는지 눈으로는 모른다. 발목이 가는지 운동화 위로 드러난 발목을 보는 것만으로는 잘 모른다. 허리가 가는지, 가슴이 큰 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가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살면서 너 때문에 제일 많이 웃은 거 같아." 남자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여자가 말했다.

 

"잘 달려.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장애물이 없다고 생각하고 달려!" 남자가 말했다.

 

"그러다 사라지면 어떡하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 어쩌지?" 여자가 말했다.

 

"그럴 일은 없어. 아무리 빨리, 멀리 달려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테니." 남자가 말했다.

 

"사무실이니? 별일 없지?" 여자는 매 번 남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여자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하고 무엇을 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자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한 건지 잘 모른다. 잘 지내냐고? 남자는 잘 못 지낸다고 말해볼까? 하고 생각한다. 필요 없는 말이다. 아무 일 없지만 아무 일이라도 생기면 좋겠다. 여자를 기다리는 일은 늘 지루하다. 늦은 시간이다. 여자도 수업을 마치고 이제 막 집으로 와서 저녁도 먹지 못하고 신발을 신어보는 중일터 나도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한다.

 

"새 신발이라 좋은데 이거 신고 대회는 못 나가는 거 알지? 몇 번 뛰고 나서 장거리를 뛰어야 하거든. 아직까지 밥도 안 먹고 사무실에서 뭐하시나?" 여자가 말했다. 이런 말투가 귀엽다.

 

"그 정도는 나도 알거든? 오늘 포천까지 가서 회의한 내용들 정리 중이야. 여기서 4시간 운전하고 다녀오니 힘드네. 일도 잘 안되고. 몸 상태도 좀 좋지 않네. 서브 4 달성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남자가 말했다.

 

"다음에 나가면 신발 보여줄게." 여자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벌써 난독증이라도 걸린 건지. 대화를 띄엄띄엄한다. 버릇인가? 하고 남자는 잠깐 생각한다.

 

길지 않은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이야기했다. 그에게 고마웠다. 그에게 무엇으로 갚아야 하는지, 꼭 갚아야 하는 건지는 미래가 알려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이젠 좀 잊고서, 떠나서 막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지루하고 변함없는 일상을 견뎌왔다는 사실이 후회된다. 늦었지만 어쩔 수 없다. -見河-

 


"정말 네가 없었다면,
아니 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고맙고 감사해.
고맙다는 건 네가 할 일을 다 한데 대해 칭찬하는 것이고,
감사하다는 건 네가 할 일 이상의 일을 나에게 베풀어 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거야.
너와 함께 달린 후로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
세상은 아름답고 아침 공기는 신선하고 세상 모든 소리는 음악이었다."

 

조금 더 써야 할까 하다가 더 늦기 전에 올린다. 이때를 놓치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240. 아식스 젤 카야노-2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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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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