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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각 바른 글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을까나? 이런 말투가 귀엽다.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 말투다. 무심한 듯 말하지만 엄청나게 고르고 골라서 생각한 끝에 지어낸 말처럼 재미있는 말투를 알아냈다. '밥은 먹고 다니시는 거냐?' 같은 말인데, 부드럽고 천천히 해야 한다. 정중한 질문도 아니고, 다정한 말도 아니면서 사실은 걱정하는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말이다. 밥을 먹었는데도 안 먹었다고 거짓말을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귀여운 질문이다. 여러 단어를 생략해도 가장 많은 의미가 통하는 말과 비슷하다. 우연히, 아니 의도적으로라도 누군가 나타났을 때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을까나?' 하고 물어준다면, 사실을 낱낱이 고해바쳐도 아깝지 않은 말투다. 남자는 어디서 알아 왔는지 가끔 이런 식으로 말한다. 

  바닷가의 모래는 파도를 기다린다. 파도는 모래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기다리던 파도가 몰려온다. 파도와 모래가 만나는 주름진 선에 흰 거품이 일고, 바람은 거세다. 갈매기가 타고 온 바람은 파도가 만든 거품을 모래밭에서 얕게 띄워 공중으로 날려 가능하면 멀리 보낸다. 남자는 지금 하는 일에 변화가 생기고, 길고 먼 항해를 해야 하고, 이제 다시 어딘지 모르지만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루하루 그냥 되는 대로 살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삶이란 사실 원래가 그렇게 살아도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늘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때로는 그게 화나기도 했다. 예전에는 안 그런 사람이었는데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목표나 목적을 갖는 일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매진, 노력, 성취, 환희 같은 것으로 삶을 채워도 언젠가는 죽는다. 어떻게 살아도 채울 수 있는 만큼 채워지는 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목적을 잃어도 그런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일찍 옆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깨달아가는 쉬운 편을 택한 남자는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야! 지금 네 모습 알지? 굉장히 멋진 모습 말이야." 여자가 물었다. 

"이게 나야? 끊임없이 달리고, 많은 일을 하고, 부단히 성장하는 나를 말하는 거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이런 날이 내 삶에 가당키나 한 거야?" 남자가 물었다.

"바로 네가 그래, 자식아. 나도 네가 이렇게 빨리 좋아지는 사람인 줄 몰랐어." 여자가 말했다.

"가끔 슬퍼질 때가 있어. 너를 부른 게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 널 그냥 내버려 두는 건데, 그냥 네 삶에 주어진 대로 살도록 놔두는 게 좋을 뻔했는데, 괜히 너를 부른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넌 무얼 해도 아까운 사람이야." 여자가 말했다.

"그러니? 아니, 살면서 너랑 있을 때 가장 많이 웃었어. 남은 내 삶은 덤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이젠 더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단 생각을 많이 해. 나야말로 너한테 고맙지 뭐." 남자가 말했다.

삶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몰랐다. 아무것도 연관된 일이 없었다. 그냥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이 이렇게 어긋나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들추거나 알아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면 저절로 다 아니까. 그냥 두고 가는 게, 떨어뜨리고 가는 게, 그리고 모른 척 하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거리낌이 있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겸손해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 세상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게 맞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사실이다.

"도대체 이걸 다 어떻게 안 거야?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던 거니?" 남자가 물었다.

"그건 말 못 해." 여자가 말했다.

"넌 그때 이 일을 그만뒀어야 했어." 여자가 또 말했다.

"그래? 그럼 너도 그때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 아니면 한 번이라도 날 찾든가." 남자가 말했다.

"나를 부른 건 너야.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고,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준 사람은 너야. 왜 하라고 한 거야? 궁금해. 지금도 궁금해. 난 멈추거나 떠나지 않아. 가고 싶은 곳 끝까지 갈 거라고." 남자가 또 말했다.

"갈 수 있을 때 가. 모르고 가도 돼. 가보기 전에는 모르는 게 당연해. 갔다 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여자가 말했다.

"내가 있으면 기다린 거고, 없어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기다릴게." 여자가 또 말했다.

  두 걸음 옆이 지옥이라도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그를 다시 만난 시간도 너무나 짧았다. 돌아갈 곳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아니면 어느 장소에서 얼마나 멀리 갔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거리가 아니라 시간이 알려준다. 시간이 흐른 만큼 우린 멀리 가 있다. 남자는 물론 가지 않아도 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남자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같은 시간 동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냥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다시 포기하는 일을 남자는 용납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늘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물러서는 행동을 자신이 선하기 때문이라고 포장하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다툼을 싫어하고 싸우지 않고, 무엇인가 당당히 쟁취하는 일을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며 핑계 삼아 회피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비굴하게 사는 일은 그만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도착하고자 하는 곳을 정하면 거기까지만 간다. 남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상한선이 정해지면 그 선 아래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남자는 선천적으로 급하긴 급하고, 인내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모순이 많은 인간은 모순에 끌린다. 두 가지의 말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상태나 두 가지 말이 모두 참이 되지 않는 경우를 모순이라 한다. 사람은 모두 쉽게 모순에 빨려 든다. 무한해 보이는 경제적 이익, 변하지 않는 사랑, 아름다운 사람에게 빠져들게 된다. 사실은 유한하고, 변하고, 아름답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인류는 발전하기도 한다.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남자는 웃지 않는다. 남자는 웃지 않으면 침울하다는 표현이다. 화가 나면 남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見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