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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1교에서 저승사자를 만나다 - 조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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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1교에서 저승사자를 만나다 - 조현세 

 

조현세(cityboy, 달밭)|입문 2001년|풀코스 60회|풀코스 3:57:43 좋아하는 명언: No pain, No gain 

 

“빨리 골인, 골인!”

 

골인 지점, 두 여성 회원들이 저만치서 하는 손짓이 마지막 영상이다. 장면이 바뀌어 119 구급대원의 붉은 옷과, 집 전화번호를 다 급히 묻는 B회장의 목소리! 의식을 잃기 직전과 깨어난 직후 두 장 면 사이의 짧은 9분. 천당과 지옥이다.

 

그 순간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보았는가? 양마클 동호인들의 심 폐소생술 덕에 다시 살아가고 있다. ‘죽어 봤었던’ 경험이 오늘 이 순 간을 만들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중략)

 

참으로 기적처럼 다시 얻은 삶이다. 배움과 베풂을 염두에 두고, 사는 길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의식불명 9분! 그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저 삶의 모든 것이 고맙고 감사한 이즈음이다.

이것은 실화實話다.

 

죽기 5일 전

 

2016년 4월 25일 광화문~여의도 구간 조선일보 하프 대회는 클럽 내 조별 경쟁을 붙였다. 회원 일부는 아들딸과 함께했다. 나는 제3조 폭탄이었으나, 길거리 밴드들과 놀며 2시간 24분 51초라는 나름의 기록을 냈다. 저녁 일정으로 노량시장의 회식에는 빠 졌다. 그다음 일주일 내내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집안에 몹시 속상한 일이 벌어졌고, 매일 술로 위안했다. 금요일 밤도 다음 날 양마클 정기 모임에는 여차하면 빠지지 하며 마셔댔다. 아껴둔 와인마저 동났다. 그러나 토요일 정기모임 시간에 맞춰진 알람에 술이라도 깨자 하며 후다닥 나갔다.

 

죽기 2시간 전

 

2016년 4월 30일 8시 영동 1교. 토요 정기 모임. 13 명 만 참석. 모두들 적당히 준비 운동하면서 6일 전 하프 대회 후일 담으로 웃음이 가득했다. 8시 40분 등용문 10km 몸풀기로 달려나 갔다. 초반에는 어젯밤까지도 풀리지 아니한 문제로 가슴이 무거웠다. 반환점을 돌자 다 잊히고, 숨은 차올랐다. 그렇다고 걷지는 아니했다. O여성회원의 키 껑충한 아들이 뒤에서 힘겨워한다. 자네는 무슨 문제라도? 서로 말을 붙이기도 뭣하여 그의 아들을 앞세우고 내가 꼴찌로 들어오며 마무리했다. 65분 정도 달렸으니 숙취도 빠지고 기분 전환 ‘즐거운 달리기’였다. ‘어서 집에 가서 샤워나 하자.’ 스트레스 해소는 역시 운동이야. 혼잣말이다.

 

죽기 10분 전

 

정리운동을 하려는데 B회장이 갑자기 “해장국 내 기나 합시다.”라며 제안한다. 5명씩 편을 먹고 영동 1교 아래를 뱅뱅 돌았다. 꼬리 물고 달리기 헉헉. 가슴팍은 치고 올랐다. 5바퀴째 때다. 저쪽 팀과는 두어 발자국 차이다. 내 가슴이 터질 듯 쪼인다. 저 팀을 이겨야 했다. 나이 든 값 변명은 없다. 가슴팍이 콱 막혀 온다. 어지럽다. 머리 위로 소용돌이가 빙빙 돈다. 5m 앞 골인 지점에 자봉 Y, L지니가 ‘빨리’ 손짓한다. 가슴을 움켜쥘 찰나, 동시에 뒤따르던 KS가 “힘들어요? 천천히”라고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냥 앞으로 꼬꾸라지며 이마 쪽부터 꽈당 엎어진다. 퍽!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완전히 뻗었다. 의식이 없어졌다.

 

죽었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을 쉽게 죽게 하지는 않나 보다. 온통 구급요원이 된 회원 12명은 일사불란했다. 바로 뒤따른 KS가 나를 앞으로 누였다. 동시에 KH는 119 전화 신고, B 총무는 내 혀를 빼고 L은 나의 양 볼을 움켜쥔다. 죽었기에 앙다문 입을 벌리기 힘들었단다. KS는 손깍지를 끼고 즉시 매뉴얼대로 심폐소생술 실시, 그는 ‘심폐소생술’을 배웠기에 죽어라 해댔으나 힘에 부쳤다. 바로 전임 회장 KJ가 이어서 숨차게 압박한다. 심장 부근 어딘가 의 혈액 망이 조금씩 다시 길을 튼다. 동시에 119차 소리가 가깝다. KH와 SJ대감이 주로에 길라잡이로 달려 나가서 구급차를 안내한다.

 

죽은 지 3분

 

저만치 오고 있는 구급차에서는 “지금 소생술 하는 사람 귀에 전화기 붙여라!” 명령형이다. 마침 3번째로 R 교수가 내 배 위에 올라 전화 구령 지시에 따라 둘, 셋, 압박을 제대로 한다. 숨 길이 트이고, 막힌 혈관으로 산소가 공급된다. 심장 박동이 인다. 사랑 DML의 손길이 사람을 살린다.

 

죽은 지 4분

 

양재 119 구급대는 직선 1.5km 거리를 4분 만에 도착했다. 다리 벽 쪽에 기대어 울며 기도하던 O여성 회원. “부처님, 이분을 살려주세요. 나무 관세음보살.” 기도발이 먹혔다. 내 집 전화를 확인하려는 다른 두 여성 회원. 엄지발가락 쪽을 주무르는 L회원. 12인 모든 회원 손길은 혼비백산하면서도 일사불란했다. 내 숨은 희미하게 돌아오고, B 회장은 입술이 터졌다. ‘아, 우 리 회원이 여기서 죽어 나간다’ 경찰 조사야 당연하겠지만, 언론 보도, 사인死因규명, 부검, 장례식. 심지어 클럽 해체까지? 되돌아봐도 끔찍 그 자체다.

 

기적처럼 살아나다

 

구급대 도착, 내 숨통 트임과 동시에 CPR 기를 가슴에 댄다. 벌떡. 벌떡! 어렴풋한 시야로 붉은색 옷 입은 이들이 어른거림과 동시에 흔들리는 이동 침대가 느껴진다. 내 발끝 쪽 구급차 문밖으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희미하게 지나고, 구급차 안에 서는 B 회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난겨요?”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집에는요?”

 

담요를 덮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추웠다. 죽은 지 4분 만에 숨길이 트이고, 9분 만에 구급차 안에서 사생死生이 삶으로 바뀌어 갔다. 기적이 이뤄지고 있었다.

 

살아난 15분

 

Y병원 응급실 도착. 가족들이 얼떨결에 와 있는 사이, 모든 회원들이 비좁게 다녀갔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산소마스크가 답답했다. 헛웃음 지으며 각종 검사에 들어갔다. 다들 재벌가 사례 이야기를 한다. S그룹 L 회장은 6분 만에 응급실로 왔으나 지금도 뇌사 상태로 있다. 그가 국내 제일의 재벌일지라도 나와 같은 동료들의 적극적 심폐소생술을 건너뛰었기 때문일 것이란다.

 

살아나서 하루

 

심장으로 바로 들어가는 중요한 동맥 길이 막혔다 고 했다. 정말 우물쭈물 당황하다가 그냥 두면 죽었다. 죽은 시간은 9시 55분. 의사 사망 진단 시간도 별다름 없을 것이다. 만약에 보통 시늉으로 심폐소생술을 했더라면 죽거나 뇌사, 반신불수가 틀림없음이다. 죽는 건 한순간이다. 살아나서 느낀 바, 심폐소생술 하면서 갈비뼈가 안 나간 게 다행이다. 때로는 심하게 압박하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폐를 찌르고 그 출혈로 바로 사망했다? 과실치사죄는 아니란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Good Samaritan Law이라고. 내 경우는 두 달 동안 흉부 통증으로 웃지도 못 했다. 그럼에도 가슴은 뻐개지게 좋았다. 모두 천 운이다. 운 좋은 놈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응급실에서 검사하고, 다음 날 새벽. 바로 혈관조형술, 스텐트 Stent 하나 시술 후 중환자실에 누웠다. 침상 소변을 마다하고 화장실 이 용하는 등 멀쩡한 상태로 한낮, 한밤을 지새웠다. 이른 새벽 저쪽 병상에서 두 사람이 사망 진단으로 나간다. 밖에는 가족들 울음소리조차 없다. 다시금 나를 떠올리며 빙긋이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마 나도 지금 저 지하 냉동고에 있겠지. 어쩌면 오 늘 염殮하는 날이겠네. ‘평상복을 입혀 장례 치르라’는 말을 해 둘걸. 내 사후死後를 걱정한다. 어떤 친구들은 조문 와서 마라톤 회원에게 시비를 걸까? ‘당신네들이 사람 죽이는 마라톤 클럽인가? 훈련 매뉴얼은 있던 거여?’ 클럽 총무가 땀께나 흘렸으리라. 아들 녀석은 ‘조문비 정중사절’ 팻말은 했을까? 살아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런저런 상상 속에 모든 것들에 대해 고마워했다. 어머니 손때 묻은 법구경 책도 들고, 중환자실 천 정에 있는 성경 시편詩篇 구절이 와 닿는다. ‘범사에 매사에 감사하자.’ 다시 문상 온 회원은 신나서 이런저런 정황들을 남긴다. “우리 회원이 정기 모임 연습 중에 팍 쓰러졌는데 심폐소생술로 살아나서 응급실에서 웃고 있다네” 이날 토요일 저녁 양마클 가족 들의 밥상머리 대화란다. 누가 마라톤을 단순 개인적 운동이라 했나? 소문은 퍼져서 이런 동지애로 뭉친 ‘양마클’을 부러워한다. 수많은 청계산 등산객들 중에 심폐소생술을 제때 못 받거나 또는 설렁설렁하다가 죽는 이가 해마다 서넛은 된단다. 예전보다 마라톤 도중에 사망하는 예는 확실히 줄었다. ‘마라톤 그 자체’로 죽은 이는 아무 도 없다.

 

살아나서 이틀, 또 하루하루

 

스트레스로 인한 초기 원인에 급격한 심장 박동으로 급심정지가 왔고 마라톤 동료들의 열성 심폐소생술로 소생한바, 좁아진 혈관에 스텐트 시술 한 곳을 하였고, 협심증 소견도 있어 투약과 정기 소견서를 받고 이틀 만에 퇴원하니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 더라. 가족들은 헛헛해하며 마라톤을 죄인 취급한다. 친구들은 죽었다 깨어난 맛이 어떠냐? 소감을 자꾸 물어온다. 내 스스로 장례를 치르는 셈으로, 삼우제三虞祭도 떠올리고. 49재祭 즈음에 선산先山어머니 아래쪽 내 평장平葬자리도 가봤다. 어머니 다니신 절에도, 친구네 성 당에 가서 조용히 앉았다 왔다. 그런가 하면 내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을 염두에 두고 감사의 글도 작성했다. 결국은 웰다잉 Well Dying 연습 기회를 가진 셈인가? 철이 두어 번 바뀌니까 살아가는 이기심은 거기까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는다. 운동이나 거르지 말고 약이나 잘 챙겨 먹자. 매사에 잘하자.

 

살아나서 일 년 그리고 삼 년

 

다시 삶의 고행苦行 속으로 들어와서 마라톤에 나갔다. 풀코스는 제한 시간 내에 완주가 어려웠다. 연습 부족이 첫째고, 가슴 벅차게 뛰지는 말라는 의사 권고도 있다. 누구나 그렇듯 삶에 ‘스트레스’는 여전하지만, 명상과 그저 사물을 보며 멍하니 있는 ‘우두커니’로 풀어내려고 한다.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 했다. 해마다 돌잔치라고 4월 말 경 양마클 자봉을 자처한다. 그날은 심폐소생술 교육용 인형 ‘애니’를 사두고 실습을 겸한다. 그럼에도 풀코스 꿈은 살아 있다. 우리 네 삶에는 타박네처럼 걸어가는 풀코스도 있을 수 있다. 그날 한 사람 살리자고 뛰어들어 저승사자를 물리친 12명, A~Z 회원과 양마클 모든 이여! 삶을 깨우고 스승으로 삼아도 좋은 동지로 사도師徒, 사람을 살려내려는 신성한 일을 헌신적으로 해준 무리로 사도使徒. 모두에게 이 생환 보고서를 올립니다. 세상은 아직 살아내야만 가치와 고마움이 가득 있더이다. 늘 감사하오.

 

*저자의 말. ‘대표에세이’ 동인지 2016년 『골목길의 고백』 책 99쪽에 짧은 에세이로 발표한 것을 중략中略하고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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