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았을 때는 살아있다고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크게 다치거나 죽거나 하면 연락이 온다. 옛말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거나 회사에서 상사나 동료가 급하게 찾거나, 아이들에게서 면담 요청이 요면 행여나 좋은 소식일 거라는 기대는 금방 사라진다. 어떤 경우라도 예측한 것은 예측대로 될 뿐만 아니라 예측한 방향으로 간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려면 안 좋은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 늘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방안을 찾고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을 한다.
학교 사업단에서 일하면서 학습 관리시스템 플랫폼과 관리를 맡았다. 진자 교수가 상의할 일이 있다고 가보니 남자가 맡고 있던 실습수업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이제까지 해 온 과정이 있으니 의견을 말해달라고 한다. 새롭게 맡은 일이 있고 서버와 플랫폼 관리로 근무할 곳이 2월부터 바뀌기도 해서 수업을 맡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6학기를 이어온 창의설계 수업을 이번 학기부터는 맡지 않기로 한다. 아쉽기도 하지만 당연히 다른 교수가 맡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3월이 되면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일도 없다. 실습 툴을 구매하고 아크릴 재단해 조립 방법을 알려주고 원하기만 하면 아주 오랜 기간을 사용할 수 있는 툴을 만들 일도 없다. 아이들은 맑고 발랄하고 허공에 떠서 지내니 수업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다. 멋진 노래와 음악을 많이 알아 놓았는데 소용이 없게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유튜브로 노래를 한 곡 듣고 수업을 시작하는 일도 이젠 없다. 남자는 질문을 하고 활발한 아이들은 거친 대답을 한다. 처음 만난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잔뜩 호기심을 품고 있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더 이상 볼 수는 없다. 팀을 이루어 작품을 만들다가 무언가 빠뜨린 부분이 있거나 해결할 수 없으면 귀신같이 남자를 찾고 함께 해결하는 열정에 찬 아이들의 과감함을 볼 일은 없다. 아이들을 다시 만날 때는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까?
현실에는 없고, 현재를 뛰어넘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고 마지막 발표일이 되면 아이들은 꾸미거나 과대 포장하는 일이 없다. 기말 평가라고 해도 특별히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팀원과 해오던 일을 무던히 반복하는 일을 그대로 한다. 아이들은 결과도 결과지만 과정을 좋아한다. 탄탄한 몸매, 아주 빠른 마라톤 기록, 놀라운 유연성, 높은 기술 습득 같은 것들은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인내란 좋아하는 과정을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괴로움이나 고통을 넘어 대단한 보상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남자와 아이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모습이다.
“반복은 지겨움과 편안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겨움 쪽으로 나아간 반복은 결별을 만난다.
편안함 쪽으로 나아간 반복은 일상이 된다.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선택하는 게 인생이다.
욕망은 새롭고 화려하고 특별한 것에 끌리는 습성이 있고,
관계는 평범하고 오래되고 한결같은 것에 마음을 두는 습성이 있다.
편안함은 머물거나 떠나거나 상관없이 고단한 일상의 반복을 평화롭게 여기는 자의 몫이다.
그것은 마치 앙금 같아서, 들끓는 욕망의 온도가 차분히 가라앉은 자리에서 생겨난다.”
-관계의 물리학 p19, 림태주 저
남자는 소소하고 지루하면서도 분명한 반복적인 일상의 의미를 잊지 않고 지켜낼 것이다. 지켜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것이다. 건강, 돈, 인간관계, 감정 그리고 인생의 의미까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꿈꾼다면 좋은 것을 하기 전에 나쁜 것들을 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말고 불편한 것들과 친해진다. 불편의 다리를 건너고 이미 대가를 치른 사람들을 존경하라. 그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언젠가 그 길을 걷고 있는 너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기회와 행운은 비겁하게 아무런 기척도 없이 모른 체 지나간다. 남자는 녀석들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자기 한계 설정과 배우지 못한 이유로 당하고만 있었다. 이제 막 중산층을 넘어서 부자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번번이 주저하고 되돌아왔다. 개인 사업자는 18억 원을 벌 면 안된다고 믿었고, 직원을 채용하면 신경 쓸 일이 많아진다고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일을 하게 되면 좋아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고 지금이 이토록 좋은데 공연히 힘든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한마디로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고, 거지 근성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이다. 모든 것은 정신의 문제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렸다. 갖고 싶은 것이 많아도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하고 또 포기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습관이라서 계속 반복하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기가 어렵다. 무언가 하고 싶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가장 필요한 일을 배우려면 남자가 원하는 것들을 이미 달성한 사람과 어울리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진흙탕이든 가시덤불이든 뛰어들어 건너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물론 소확행은 맞지만 그런 것은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작고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남자는 모든 변화를 환영하는 사람이고 해보지 않은 기술과 업무를 배우는 일을 좋아한다. 지금까지는 망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성공하는 과정이 좀 터프할 뿐이다. 항상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고, 루틴을 만들고, 겸손하게 삶을 대하기로 한다. 남자는 무엇이든 늦게 배우는 안타까운 사람이지만 배우고 나면 아주 매혹적인 사람이 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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