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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도종환
슬픔은 구름처럼 하늘을 덮고 있다
슬픔은 안개처럼 온몸을 휘감는다
바닷바람 불어와 나뭇잎을 일제히
뒤집는데
한줄기 해풍에 풀잎들이 차례차례 쓰러지듯
나도 수없이 쓰러진다
분노가 아니면 일어나 앉을 수도 없다
분노가 아니면 몸을 가눌 수도 없다
기도가 아니면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다
맹골도 앞 바닷물을 다 마셔서
새끼를 건질 수 있다면
엄마인 나는 저 거친 바다를 다 마시겠다
눈물과 바다를 서로 바꾸어서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엄마인 나는 삼백 예순 날을 통곡하겠다
살릴 수 있다면
살려낼 수 있다면
바다 속에 잠긴 열여덟 푸른 나이와
애비의 남은 날을 맞바꿀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썰물 드는 바다로 뛰어 들겠다
살릴 수 있다면
살려낼 수 있다면
사월 십육일 이전과
사월 십육일 이후로
내 인생은 갈라졌다
당신들은 가만히 있으라 했지만
다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동안 내 자식이 대면했을 두려움
거센 조류가 되어 내 자식을 때렸을 공포를
생각하는 일이 내게는 고통이다
침몰의 순간순간을 가득 채웠을
우리 자식들의 몸부림과 비명을 생각하는 일이
내게는 견딜 수 없는 형벌이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견딜 수 없다
내 자식은 병풍도 앞 짙푸른 바다 속에서 죽었다
그러나 내 자식을 죽인 게
바다만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 참혹한 순간에도
비겁했던
진실을 외면했던
무능했던
계산이 많았던 자들을 생각하면
기도가 자꾸 끊어지곤 한다
하느님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하고 묻다가
물음은 울음으로 바뀌곤 한다
이제 혼자 슬퍼하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함께 울겠다
파도가 다른 파도를 데리고 와
하얗게 부서지며 함께 울듯
함께 울고 함께 물결치겠다
함께 슬퍼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걸어다닐 수 있으랴
그들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위로 받을 수 있으랴
정작 잘못한 게 없는 많은 이들이
미안해하며 울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눈물이 내 눈물이란 걸 안다
그들의 분노가 내 분노라는 걸 안다
그들의 참담함이 내 것인 걸 안다
이 비정한 세상
무능한 나라에서
우리가 침묵하면
앞으로 또 우리 자식들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노란 리본을 달고 또 단다는 걸 안다
내 자식은 병풍도 앞 짙푸른 바다 속에서 죽었다
오늘도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때린다
오늘도 눈물은 바닷물처럼 출렁이며 나를 적신다
한 줄기 바람에도 나는 나뭇잎처럼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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