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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쓰는 편지

지구빵집 2014. 8. 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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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쓰는 편지



단원고 생존 학생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to. 존경하는 교황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단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유정(가명)이라고 합니다. 우선 이렇게 교황님께 편지를 쓰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두고 우리나라에 방문해 주신 것 또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할 말이 너무 많기도 하고 부족하고 서툰 글이겠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고 편히 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단원고등학교의 대표학생이 아닌 2학년 한 여학생의 입장으로 120일 동안 느낀 감정과 심정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진정한 세월호 치료는 가해자들의 사과에서


120일이라는 시간 동안 전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행복했던 하루였어도 밤마다 잠이 들 때면 친구들의 사진을 보고 날마다 엄마 몰래 눈물을 훔치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들 곁에 가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이 한심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친구들의 사진만 보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우리가 바다에 나와 병원에 갔을 때, '어른들이 말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TV를 보면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가 자막으로 나옵니다. 사망자 수는 늘어나기만 하는데 작은 방 안에 갇혀 '어른들이 말하는 상담의사'와 우리의 안부를 묻는 쓸데없는 얘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해야 상담이 끝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제 매일 괜찮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엔 진정한 치료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를 버리고 제일 먼저 안전하게 구출된 선장과 그 외의 선원들, 이 사건과 관련해 잘못한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제일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월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왜 우린 바보같이 기다리고만 있었는지, 본질적인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과를 하고 이유를 알아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래야 곁에 없는 친구들과 유가족분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많이 참아왔습니다. 병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상담치료를 해도, 병원에서 울고 있는 우리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몰려와도, 다시 입시전쟁에 들어가 수업을 억지로 받아도, 울고 있는 친구들의 가족과 형제를 봐도, 그저 참고만 있었습니다. 사실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고 이제는 믿을 수 없는 한심한 언론에만 의지해 정부 입장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그 정부 입장 또한 이제 우리를 미치게 할 뿐입니다.


언론에서는 대학 특례입학과 특별법 보상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국민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직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친구들의 가족은 열악한 체육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찰들은 보상이 아닌 진실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우리 친구들의 가족을 폭행하기까지 합니다. 18살인 저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미친 것 같습니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렇게라도 표현해 우리나라의 심각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밥 먹고 껴안던 친구들이, 18년 동안 아끼고 쓰다듬으며 귀하게 키운 자식들이, 한순간에 모두 예고도 없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정부는 우리를 외면하려고만 합니다.





어른들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도록


사실 이렇게 세월호 사건이 이슈화된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만약 조용히 이 사건이 끝난다면 우리나라는 또 반복된 실수를 할 것이 분명하고 또다시 우리나라는 망가져 갈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님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주신 것이 정말 진심으로 위안이 됩니다.


교황님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희망이라 확신합니다. 이제 겉만 선진국인 우리나라를 바꿔 주세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나라를 믿을 수 있도록 이 썩어 빠진 정부를 바꿔 주세요.


32일째(8월 14일 현재) 친구 아버지께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만을 바라보고 단식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마저 곁을 떠날까 매일 불안하고 무섭습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리 큰 고통을 겪어야 할까요. 언제쯤 이 고통이 끝이 날까요?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어른들만 믿다가 다신 볼 수 없게 된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가족들, 그리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어 또 희생 당하게 될 수 있는 사람들. 그 모두를 위해 특별법 제정과 친구들이 왜 벌써 우리 곁을 떠나게 됐는지 그 진상규명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정부는 우리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명 교황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나라와 정부를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아니 많이 욕심을 내자면 이 두 가지뿐만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부의 만행을 비판해 주시고 바로잡아 주신다면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릴 것입니다.


저희는 이제 어른들에게 신뢰를 잃었고 이 세상에 대해 신뢰를 잃었습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와 같은 학생들에게 이 나쁜 세상을 물려주어 죄를 짓지 않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서툴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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