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라는 지루함이 비범한 운동임을 말해준다.

그 지루함이 싫었다. 세상에 4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는 일도 지겨워 하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시간을 무한정 달릴 수 있을까. 난 정말 달리는 운동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참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다. 달리기는 재미없는 운동이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 비범한 운동일 수도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달리기가 주는 여러 좋은 점들이 나와 잘 맞아 돌아간다고 느낀 건 요즈음이다.  

 

사람들이 늙어 갈 때 함께 늙어가지 않는 일은 슬픈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어가는 걸 모조리 봐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야 그 사람의 소중한 법을 깨닫는 법이다. 그게 인간의 한계다. 그렇지 않다면야 세상은 웃음소리가 가득한 평화로운 곳이어야 했다. 

어디에 가서도 연락을 해야 했다. 언제 어디에 가든. 남자를 만나면 여자는 말 수가 적었다.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대범하고 거침없는 사람 앞에서 버릇처럼 말을 할 수 없었다. 늘 그랬다. 간혹 말이 많아지거나 많이 웃기라도 하면 그런 날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거나 나쁜 일이 많이 생겨서다. 여자도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다를 떨 때는 안 좋은 일이 많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은 크는 건 순식간이다. 코흘리개였던 아이가 어느덧 훌쩍 커서 소녀가 돼있었다. 내가 고향을 떠날 땐 소녀였던 아이가 여자로 변해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자로.

여자를 보지 못하는 하루는 참 길었다. 물론 밤은 더 길고. 그러니 보려는 마음은 늘 강렬했다.

아무리 오래 만나고 강렬한 사랑을 한 후 여자는 가면서 한 마디 말만 한다. "당신을 만나서 좋았어요."

벌새는 보통 새가 아냐. 심장은 분당 1,200번 뛰고 초당 80번씩 날갯짓을 하는데, 날개를 못 움직이면 10초도 안 돼서 죽어. 평범한 새가 아냐. 기적을 불러오는 영물이지. 날개 움직임을 느린 화면으로 보면 어떤지 알아? 날개 끝이 이렇게 돼. 숫자 8이 뭘 상징하는지 알아?
무한대, 무한대!

늘 그렇듯이 바뀐 건 우리 자신 뿐이었다.

이따금 여자가 말해준 새로운 세상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고 난 귀담아 안 들었다. 

삶은 단순했고, 난 궁금했다. 우리가 이전에 지내온 모습과 죽은 다음 생에 우리가 어떻게 만날 지 궁금했다.

영원한 걸 지키는 건 죽음 뿐이지. 당신하고 그렇게 오래 지냈는데도 얼굴이 기억이 안나.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