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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러너스

2024년 서울마라톤 배번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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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마주하는 5천 원짜리 백반에도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어떤 행복도 느낄 수 없다. 달리기에 함께 하는 동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달리기는 이미 내 인생에 끼어들었다.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눈 오는 날이 많았던 겨울 내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봄이 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절기는 변함없이 순환한다. 남자와 함께 어떤 걸 해도 항상 더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와 함께 술을 더 자주 마시고, 더 오랫동안 놀고,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자주 재미있는 일들을 하길 바랄 뿐이다. 겨울 달리기가 주었던 손발이 오그라드는 고통과 추위로 체온에만 집중한 훈련이 끝났다. 서울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정말 다짜고짜 활짝 꽃피는 계절이 온다.

 

정확히 대회 2주 전 월요일에 배번이 도착했다. 배번은 영어로 Bib number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밥 먹을 때 음식물을 흘리는 것을 방지하는 턱받이에서 유래한다. 이름이 가장 크게 적혀있고, 번호와 물품을 보관할 차량 번호가 보인다. 모든 배번의 디자인이나 강조하는 글자들이 같지 않다. 배번에 따라 아주 숫자를 가장 크게 적고 이름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이름을 크게 표시하고 번호는 작게 표시하기도 한다. 번호나 이름 둘 중에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는 아니다. 경주 중에 찍는 사진에서 이미지 인식을 하든, 사람이 분류하든 사진의 배번과 이름을 분류하는 작업, 정확히 접수한 본인임을 확인하는 증거로 사용한다. 

 

12월부터 시작한 훈련이 지난주 끝나고 테이퍼링 중이다. 의도적으로 훈련 양을 줄여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중인데 덜컥 몸살감기가 왔는지 열이 나고, 근육에 통증이 있다. 일찍 오길 다행이다. 아직 대회까지는 시간이 있다. 12월에는 110km, 1월에는 225km,  2월에 226km를 달렸다. 빠지지 않고 참가했지만 달린 거리를 보니 훈련 상태는 형편없어 보인다. 42km를 페이스 5분으로 달려야 달성하는 3시간 30분 이내 완주가 목표였지만 마지막 훈련까지 해보니 페이스 5분 10초로 시간은 약 3시간 36분 정도 예상을 한다. 이것도 대단한 일이다. 

 

대회가 주는 약간의 기록 상승과 행운을 바라지만 훈련한 것 이상으로 좋은 기록은 절대 얻을 수 없다. 마라톤은 사적인 의지를 공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음에 만족한다. 주로에서 달릴 수 있는 그 자체로 러너에겐 천국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포기는 없다. 감기 기운은 좀 없어지는데 갑자기 자고 일어났더니 허리가 몹시 아프다. 허리에 부담을 준 적이 없어 그냥 몸살기로 인한 통증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좋아졌으면 좋겠다. 

 

무슨 선거였는지, 20대 총선인가?, 선거운동을 할 때 캠프에서 함께 운동한 아줌마가 있었다. 나보다 몇 살 더 나이가 들었지만 작은 몸집과 귀여운 얼굴로 어려 보였다.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선거 운동을 한 선배와 재혼했다. 남자 선배는 유학을 다녀오고 돈벌이는 별로고, 정치적 문제에 해박한 사람이고 성격은 좀 까칠했다. 남자 선배도 이혼남이었다. 그때는 두 분이 만나는 게 좋아 보였고 나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두 분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했다. 지금은 선배는 전혀 하지 않고, 아줌마는 자주 하시는 SNS를 가끔 보면 서로의 소식을 서로가 모르는 것처럼 그냥 함께 사는 정도다. 내 판단이 잘못되길 바라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지금 보니 늘 나쁜 선택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차라리 혼자 있었다면 더 아름답고 자기 인생을 풍요롭게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랑이라든가 호감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 이유는 없다. 결정을 한 뒤 한참 지나서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 대부분이 그럴 수 있다. 안타깝지만 문제는 고스란히 남고 해결 할 사람은 자신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잃기 싫어서 자기 주변에 좋지 않아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 매 순간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간다. 그러면 된 거다. 그게 자신의 결정이면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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