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마이크 앞에 선 생존 학생들 "시민들에 감사…구조가 아니라 탈출이었다"
세월호 학생 “살아나온게 죄”…눈물바다 된 광장
전국 곳곳에서 1월 7일 열린 새해 첫 주말 촛불집회의 공통된 주제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이었다. 참사 1000일을 앞둔 이날, 당시 세월호에 탑승했던 단원고 생존 학생 9명은 광화문 광장 집회에 참석해 공개 발언을 이어갔다. 3년전, 참사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이들은 이제 만 20살의 성인이 됐다. 이들이 참사 이후 공개적인 장소에 올라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생존 학생 발언 전문 (2학년 1반 장애진)
저희는 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들입니다. 저희가 이곳에 서서 시민 여러분 앞에서 온전히 저희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간 저희에게 용기를 주시고 챙겨 주시고 생각해 주신 많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나라가 감추는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참사의 책임자가 누군지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민 여러분 덕에 이렇게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구조된 것이 아닙니다.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기울고 한순간에 물이 들어와 머리 끝까지 물에 잠겨 공포에 떨고, 많은 친구들이 안에 있다고 구조해 달라고 직접 요구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저희 요구를 무시하고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들과 저희는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구하러 온다 해서 구하러 올 줄 알았습니다. 헬기가 해경이 왔다기에 역시 별 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앞으로 평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저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저희가 살아 나온 것이 유가족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죄를 지은 것만 같습니다.
처음에는 유가족들을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고개조차 들 수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며 어떤 원망도 다 받아들일 각오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희는 잘못이 없다, 힘을 내야 한다’며 오히려 응원하고 걱정도 해 주고 챙겨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더 죄송했고, 지금도 너무나 죄송합니다.
어찌 우리가 그 속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안부도 여쭙고 싶고 찾아 뵙고도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혹시나 저를 보면 친구가 생각나서 더 속상하실까 봐 그러지 못한 것도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렇게나 친구들이 보고 싶은데, 부모님들은 오죽할까요?
3년이나 지난 지금 아마 많은 분들이 ‘지금쯤이라면 그래도 무뎌지지 않았을까,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으실 겁니다. 단호히 말씀 드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친구들 페이스북에는 그리워하는 글들이 잔뜩 올라옵니다.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꺼져 있을 것을 알면서도 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전화를 해 봅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 달라고 간절히 빌며 잠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에 나와 주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물 속에서 나만 살아 나온 것이, 지금 친구와 같이 있어 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하고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던 그 7시간. ‘대통령의 사생활이다, 그것까지 다 알아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나타나지 않았던 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제대로 지시해 줬더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 줬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고, 따라서 제대로 보고 받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러면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큰 사고가 생겼는데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을지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가는 계속해서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국민 모두가 더 이상 속지 않을 텐데, 국민 모두가 이제는 진실을 알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당사자이지만 용기가 없어서, 지난 날들처럼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숨어 있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저희도 용기를 내 보려 합니다. 나중에 친구들을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 왔다고, 우리와 너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사람들 다 찾아서 책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뜻을 함께해 주시는 많은 시민들, 가족들,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조속히 진실이 밝혀지길 소망합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께. 우리가 나중에 너희를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를 잊지 말고, 열여덟 살 그 시절의 모습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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