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엄마의 공책 - 치매는 상식이다.

지구빵집 2018. 8. 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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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조금 이상하다고 연락이 왔다. 남동생과 큰 누나가 바삐 움직인다. 흥덕 보건소 가서 치매검사를 받고 다음 날 추가 검사를 약속을 하고, 모시고 왔다 갔다 한다. 아버지 상태는 지금이 가을이라고 하시고, 여기 보건소에 오신줄도 모르시고, 이상한 말씀을 하시고, 110동 현관 비밀번호 기억을 잘 못하시고···. 큰누나 이야기로는 간이치매 검사 결과 30점 만점에 18점이고, 인지기능 저하로 월요일 임상심리 검사를 한다고. 엄마가 오히려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검사 받으신다고 한다. 

 

하. 이렇게 또 닥치는 건가? 일들이 또 덤벼드는 건가? 준비도 안된 철부지에게 이런 암울한 소식이 들려오다니. 나나 아내도 견딜 능력도 없는데 이런. 그냥 내가 늘 일을 마주하는 버릇대로 괜찮아, 운이 안좋아. 하면서 맞는 일도 아니려니와 이건 우리 전체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하니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오래있다가, 더 지나고, 좀 더 성숙해지고, 삶을 아는 나이가 되면 그때 찾아왔으면 하고 바랬는데···.

 

더위 때문에 잠시 그런거겠지 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니까 처음이니까 아주 약하니까 아직은 큰 일은 아니겠지 하고 마음을 놓아보려 한다. 어차피 지나갈 거니까. 어차피 마주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결국은 나의 일이라는 것만을 분명하게 생각한다.

 

벌써 아쉽다. 좋은 기억도 많이 없고, 잘 해드린 기억도 없고, 즐거운 날도 그리 많이 보내지 못했는데. 

 

*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에 1명이 치매. 치매의 병 종류는 100가지가 넘고...

자식도 못 알아보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끝에 가서는 음식을 삼키는 것도 다 잊어버려서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먹지 못해 죽어간다는 "질병"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 조차 모르고, 기억은 예전껏들은 그대로 이면서 최근 것부터 서서히 잃어가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곧바로 긴장하고 세심한 관찰에 들어가야 한다. 외출하기 싫어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옷매무새가 예전 같지 않고 흐트러진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거스름돈 계산이 제대로 안 된다, 옛날 엄마 요리가 아니다, 재활용품 수거 요일을 자꾸 잊어버린다, 항상 같은 옷을 더러운 채로 입고 있거나 목욕하기 싫어한다, 같은 물건을 계속 산다, 냉장고에 상한 음식이 많다, 물건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다···.

 

아들 규현이 어머니가 조금 이상하다고 눈치 채는 순간이 있는데, 윤자처럼 나이 탓이라며 웃어넘기기만 하면 위험하다. 한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중요하다. 이런 순간순간을 무시하며 넘기다보면 치매증세가 눈앞에서 가려져 보이지 않고, 결국 병이 깊어진 다음 뒤늦게 후회하며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금의 치매는 이미 15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에 앞서 25년 전부터 걸음걸이 등을 통해 그 조짐을 알 수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p.21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치매환자 본인은 본인의 병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자신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치매는 보통 초기(건망기)-중기(혼란기)-말기(치매기)의 3단계나 초기치매-중고도치매(중기와 말기)의 2단계로 구분한다. 뒤로 갈수록 지적 능력을 포함한 모든 기능이 나빠지면서 식사나 용변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고 누워서만 지내는 상태에 이르게 되지만, 초기에는 자신의 병에 대한 의식이 있다. 

 

나이 탓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영화 속 어머니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아들에게 자기가 먼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니들은 내가 바보로 보이냐? 의사가 나 치매라고 하지? 요즘 경로당이나 보건소 가면 치매환자한테 의사가 어떻게 하는지 얘기 다 들어.”

그러면서 어머니는 “인생 동동거리며 참 바쁘게 살았네. 그런데 잊어버리고 싶은 건 안 잊히고, 잊어버리면 안 되는 건 다 기억이 안 나니, 죽을 때가 된 거지.” 혼잣말인 듯 속을 내보이고, 끝내 홀로 방에 앉아 소리 없이 운다. “지지리 복도 없네. 부모복, 남편복, 자식복도 없더니만… 내가 널 잊으면 안 되는데 어떡하면 좋으니….” p.42

 

치매환자가 오전에는 괜찮다가 오후에 접어들어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상태가 나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일몰증후군’이라고 한다. 많은 환자가 해질녘에 더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며 흥분하거나 망상이 심해진다. 그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두워지면 주위가 희미하게 보이니 혼란을 느끼게 되고, 거기다가 낮에 쌓인 피로로 인해 몸과 마음의 기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으로 짐작한다. 오전에 활동을 많이 하고 오후에는 차분하게 쉬면서 안정을 유지하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 해질녘에는 돌보는 사람이 충분한 시간여유를 가지고 환자와 함께 있어주도록 하고, 환자가 좋아하는 소일거리나 TV소리, 잔잔한 음악, 밝은 조명 또한 도움이 된다. p.70-71

 

치매환자만 우울한 것이 아니다. 가족도 우울하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좀 우울하게 마련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져서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치매의 경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물론 흔히 ‘착한 치매, 예쁜 치매’라고 부르는, 문제행동이 심하지 않은 환자는 가족들을 조금 덜 힘들게 하기는 하지만 치매라는 질병 자체가 아름답고 품위 있는 노년의 삶을 무망(無望)하게 만들어버린다. 

 

노력한다고 나아지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돌본다고 애틋함이 깊어지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허무해지면서 의욕이 떨어진다. 우울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끝을 치매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인생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우울하다. 치매노인 돌봄과 간병의 어려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우울과 고립 속에 빠져들면서, ‘간병살인’, ‘간병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병,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에 대해 개인과 가족에게만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사회가 다함께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p.104

 

기약 없는 수발과 돌봄에 하루하루 지쳐간다. 치매환자와 하루 종일 씨름하다보면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고립감에 시달리게 된다. 때로 치매환자가 다른 가족들에게 ‘주돌봄자가 자신을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다’고 고자질하듯이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가족이 치매환자의 말에 앞뒤 가리지 않고 돌보는 쪽을 의심하거나 비난하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 

 

하루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소진(burnout)이 와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게 되고 더 이상 환자를 돌볼 수 없게 된다. 주돌봄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환자는 집에 머물기 어려워질 뿐만이 아니라, 주돌봄자 역시 인간인지라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면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 경고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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