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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의 엄마 - 예슬이 전시회 개막식때 낭독한 도종환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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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 전시회 개막식때 낭독한 도종환 시인의 시입니다.

 

 <엄마> -도종환

 

엄마!


내 목소리 들려요?


나는 엄마가 보이는데, 엄마도 내가 보여요?


엄마, 나 이제 여기를 떠나요.너무 놀랐고, 너무 무서웠고, 순간순간 너무 견디기 힘들었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를 소리쳐 불렀어요. 내가 이렇게 사고를 당한 것 때문에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봐 미안했어요. 아빠한테 도요.


내가 아직 따뜻한 몸을 가지고 있던 그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나며 엄마를 생각했어요. 매일 잠에서 나를 건져내던 엄마의 목소리. 내 어깨를 흔들던 엄마 손의 보드라운 감촉, 매일 듣는 엄마의 달콤한 꾸지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던 봄바람, 내 살에 와 닿던 바람의 천 자락, 냉이 국이 끓는 소리, 햄이 프라이팬 밑에서 익어가던 소리, 계란이 노랗게 몸을 바꾸는 냄새, 그리고 부엌에서 들리는 딸그락 소리, 그것들이 아직 생생하게 제 몸에 남아 있어요.

 

엄마,

엄마가 그동안 나 때문에 너무 울어서, 나 엄마가 흘리는 눈물 속에 있었어요.


엄마의 눈물 속에 섞여서 엄마 얼굴을 만지고, 엄마의 볼에 내 볼을 부비고, 엄마의 손등에 떨어져 엄마 살갗에 스미곤 했어요.


나도 엄마를 떠나기 싫었어요. 이제 내 영혼은 더 이상 지상에 머물지 못하고 엄마 곁을 떠나야 해요. 그러나 자주 엄마의 눈물 속에 섞여서 엄마 곁으로 돌아오곤 할게요.


엄마가 나를 잊지 못하듯, 나도 엄마를 잊을 수 없어요.내 영혼의 나이는 이제 열여덟. 언제나 열여덟일 거예요. 세월이 흐르고 엄마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은 엄마가 되어도, 나는 열여덟 살로 있을 거예요. 언제나 엄마의 아들, 엄마의 딸로 있을 거예요.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고마웠어요.

 

우리는 결국 꽃 피는 사월의 제주에 가지 못했어요.


어느 생에 다시 몸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때도 유채꽃 노랗게 핀 사월이면 좋겠어요. 제주로 가는 푸른 바다가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다림의 끝이 환하게 터지는 웃음이면 좋겠어요. 성산 일출봉이, 올레길이, 수선화가 그때도 저와 제 친구들을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같은 배를 탄 어른들이 정직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믿을 수 있고,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때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어 있길 소망해요.

 

엄마 이렇게 떠나야 해서 정말 미안해요.


바다에서 몸을 잃어, 몸은 여기 없지만 엄마가 기도할 때마다 엄마 곁으로 올게요. 엄마 눈물 속에 눈물로 돌아오곤 할게요. 사월 아침 창가에 새벽바람으로 섞여오곤 할게요. 교정의 나무들이 새잎을 낼 때면 연둣빛으로 올게요. 남쪽 바다의 파도처럼 엄마에게 밀려오곤 할게요. 엄마가 팽목항으로 오시는 날이면 나도 빨간 등대 옆에 바닷바람으로 먼저 와 있을게요.


엄마 이렇게 떠나지만 나도 매일매일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의 소리, 엄마의 향기, 엄마의 그늘 옆에 있고 싶어요.


내가 얼마나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지 엄마가 더 잘 알잖아요.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엄마라는 말은 안녕이라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 안녕이란 말 대신 내 마지막 인사는 엄마에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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