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42.195km: 양마클 여신의 카보 수호 대작전
* '카보'는 '탄수화물'(carbohydrate)의 줄임말이며, 주로 운동선수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카보 로딩'(carbo loading)처럼 사용합니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주요 영양소이며, 근육이 움직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는 달리기, 아니 움직임의 ‘움’ 자만 봐도 눈을 질끈 감는 여자이고, 무릇 양반 가의 아낙이라면 절대 무리한 노동은 자제하며,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중년의 조신한 여신이다. 10km 완주는 이미 2년 전, 뱃살 공격에 의해 마지못해 치렀던 ‘경박스러운 일탈’이었을 뿐, 나는 여전히 지방과의 끈끈한 의리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날은 양마클(양반 마라톤 클럽) 정기 회식, 즉 ‘삼겹살과 소맥의 영광’이 있는 날이었다. 10km 메달을 목에 걸고 젠체하는 나를 향해, 우리 클럽의 진취적이며 목표 지향적인 미스터 정이 껄껄 웃으며 던진 말이 화근이었다.
"스텔라 누님, 10K는 이제 경보 아니에요? 누님 정도의 '중후한 관록'이면 풀코스죠! 내년 동아 마라톤 풀코스, 제가 코치해 드릴게요!"
순간, 나는 풀코스(42.195km)라는 경박스러운 단어에 귀를 틀어막고 싶었으나, 이미 소맥 두 잔과 삼겹살 세 점에 정신이 혼미했던 관계로, 그만 "내, 내년에는... 양반의 품격을 보여주지!"라고 외치고 말았다. 내 입이 내 몸의 존엄성을 배신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그날, 10km의 달콤한 추억을 발판 삼아 42.195km의 지옥행 급행열차에 오른 것이다.
지옥의 관문: 30km LSD와 탄수화물 폭격
일단 달리기로 결심했으니, 양반은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42.195km를 완주하려면 LSD(Long Slow Distance)라는 경박스러운 훈련을 해야 한단다. 30km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는 말에, 내 무릎과 발바닥은 그날부터 '전쟁 발발'을 선언하며 매일 밤 통곡하기 시작했다.
첫 30km LSD 훈련 날. 새벽 5시, 짙은 안개 속에서 양마클 크루들과 함께 출발했다.
"스텔라 누님, 천천히! 페이스 9분 30초 유지하세요!" 미스터 정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나는 이미 '이것은 걷는 것인가 뛰는 것인가' 싶은 9분 50초 페이스로 전진 중이었다.
20km 지점. 내 발바닥은 이미 족저근막염의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었고, 무릎은 "주인님,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며 파업을 선언했다. 나는 결국 둑방길 옆 벤치에 주저앉아 배달 앱을 켰다.
"여기, 짜장면 곱빼기 하나랑 탕수육 소스 부먹이요. 위치는... 네, 한강 뚝방길 20km 지점 벤치입니다."
짜장면을 흡입하는 나를 보고 양마클 크루들은 충격에 빠졌지만, 나는 당당했다. 이것은 '탄수화물 로딩'의 정당한 행위이며, 양반은 배를 곪지 않는 법이다. 덕분에 다음 주 훈련에서 미스터 정은 나를 향해 "스텔라 누님, 누님은 러너스 하이가 아니라, 카보 하이(Carbo High)에 취하신 것 같아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결전의 전날 밤: 비빔밥과 수면 대소동
대회 전날. 코치인 남동생(풀코스 3회 완주한 경박한 마른 남자)이 신신당부했다. "누나, 내일 기록은 포기해도 좋으니, 오늘 밤은 무조건 일찍 자고 장을 안정시켜!"
나는 그의 말대로 저녁 6시에 일찌감치 전주비빔밥 특대 사이즈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너무 일찍 누웠을까?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나는 배 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을 세 번이나 왕복했다. 아마도 내 위장이 "주인님, 우리가 내일 42km를 뛰는 건가요? 맙소사! 비상 대피 훈련입니다!"라며 야단법석을 떤 모양이었다.
결전의 아침. 나는 이미 반쯤 영혼이 탈출한 상태였다. 양마클 단체 티셔츠(똥꼬가 낄까 봐 두 사이즈 크게 샀다)를 우겨입고, 남동생이 채워준 진달래색 헤어밴드를 이마에 두르고 결전지로 향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42.195km
출발 총성(땅!)이 울리자, 남동생이 타 준 이온 음료와 에너지 젤(남동생이 '생명수'라고 불렀다)을 챙기고 대열에 합류했다.
0km ~ 10km: '이것은 걷는 것인가 뛰는 것인가' 시즌 2
시작은 좋았다. 주변의 헐벗고 탄탄한 젊은 러너들이 워낙 빨리 치고 나가기에, 양반의 자존심이 발동하여 나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를 했다. 1km도 안 되어 심박수가 170을 찍었다.
"안 돼! 나는 스텔라! 9분 30초 페이스를 사수한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페이스를 찾았지만, 나만 계속 뒤로 밀렸다. 어르신 러너도, 유모차를 미는 아빠 러너도, 심지어 풍선 인형 탈을 쓴 러너까지 나를 추월해 달아났다. 나는 그들을 경박스럽게 보내주었다.
10km ~ 21.0975km: 반환점의 유혹
'어라, 여기가 내가 2년 전에 골인했던 그 지옥 아니던가?' 10km 표지판을 보는데 왠지 모를 기시감과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때 완주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는데, 오늘은 이제 겨우 4분의 1을 달렸을 뿐이다.
21.0975km 반환점을 돌아설 때, 내 발목은 이미 남동생의 '생명수'를 원망하고 있었다. '여기서 택시를 타면 얼마일까?' '메달 훔쳐서 걸고 인증샷 찍을까?' 온갖 경박스러운 유혹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그때, 멀리서 나를 응원하는 양마클 크루의 외침이 들렸다.
"스텔라님! 양반의 품격은 여기서 무너질 수 없습니다!"
25km ~ 35km: 인간의 존엄성 상실 구역
이 구간은 지옥 그 자체였다. 다리는 시멘트 덩어리가 되었고, 무릎은 독립운동을 선언했으며, 허벅지는 통곡했다. 나는 내 몸을 저주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32km 지점. 드디어 그 유명한 ‘마라톤의 벽(The Wall)’을 만났다. 벽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차가웠다. 내 정신은 이미 집에서 닭볶음탕을 끓이고 있었고, 육체는 '걷는 것' 외의 모든 행위를 거부했다.
바로 그때, 내 앞에 한 러너가 주저앉아 신발 끈을 묶는 척하며 울고 있었다. 여기 저기 누운 러더들이 보였다. 나는 약해빠진 러너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보다 덜 조신한 러너가 있었군!' 걷는 러너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나는, 남동생이 준 마지막 에너지 젤을 짜 먹고 다시 9분 50초 페이스로 나아갔다.
40km ~ 42.195km: 괴성을 지르며 골인
40km 표지판을 보는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오기'라는 여신 특유의 오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걸을 순 없다! 남동생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가 말했던 '양반의 품격'을!
내 몸은 9분 50초로 달리고 있었지만, 내 영혼은 5분 페이스의 락 스타였다. 눈앞에 저 멀리, 'FINISH'라고 적힌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아치가 보였다.
마지막 195미터. 나는 주변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괴성을 지르며 들어왔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누군가가 "누가 보면 1등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라며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6시간 15분 42초! 나는 드디어 풀코스를 완주해버린 것이다!
우악스럽게 메달을 걸고, 피니시 라인에서 나를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던 남동생과 인증샷을 마구 찍어댔다.
지하철을 타고 되돌아가는 길. 피곤에 절어 눈을 감고 있는데, 옆에서 양마클 크루들이 다음 대회를 논하고 있다.
"다음은 베를린 마라톤에서 메달 따야죠!"
"아니, 이제 울트라 마라톤(50km) 한 번 가봐야지!"
나는 그 말에 귀를 틀어막고, 내 발바닥이 다시는 이런 경박스러운 짓을 하지 않도록 철썩같이 다짐했다.
내가 6시간 15분 42초 달리는 여자야! 다 덤벼! 하지만 잠시만, 내년에 다시 볼 때까지는 덤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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