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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러너스

나 여기 달려, 너 거기 달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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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달려, 너 거기 달리지?"

 

어제는 관문체육공원에서 등용문까지 다녀왔다. 달리다가 영동 3교에서 너구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달려오는 날 보고 너구리는 죄송한 듯 움찔하더니 내가 지나자 길을 건넌다. 주암 2교 근처에서는 개구리가 점프하다가 발에 차여 나뒹굴었는데 순간 힘을 줄여 살짝 부딪쳤는지 뒤돌아보니 펄쩍 뛰며 사라진다. 양재천 물가에서 광채 나는 녹색 머리 청둥오리 수컷 한 마리를 두고 갈색의 암컷 두 마리가 꽥꽥거리며 다투고 있었다.

 

달리기, 특히 오래 달리는 마라톤은 지극히 개인적인 운동이다. 조깅할 때를 제외하면 팀을 이루어 달리는 일도 없고, 달리기 시작할 때 동료가 끝까지 함께 달리는 일도 없다. 아마도 아주 많은 나이에도, 90세가 넘어 100세까지, 하프코스나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가장 많은 운동인 이유가 혼자 하는 운동이어서 아닐까. 무엇이든 장기간 오래 하면 일종의 수양이 된다. 그저 묵묵히 달릴 뿐이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달리는 길에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친절하게 굴면 된다. 러너는 서로를 이해한다. 다른 주자에게 함부로 인사하지도 말고, 침 뱉지 말고, 힘들다고 티를 내거나 인상을 쓰거나 괜히 허공에 대해 욕하지도 말자.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달린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어떤 사연이 있고 삶이 어떠하기에 먼 거리를 달리는지는 오직 러너 본인만이 안다. 모든 러너의 목표는 다를 뿐만 아니라 오래 달리면서 항상 변한다. 러너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한다. 함부로 다른 사람의 러닝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 애써 구호를 외칠 필요도 없고, 인사를 하려고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요즈음 주로에서 만나는 러너들은 파이팅을 외치거나 하이 파이브 손을 들어 인사하지 않고 엄지 척을 한다. 달리는 당신이 최고라는 의미일까.

 

처음에는 자신의 달리기를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고, 기록이나 거리를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는 시기가 온다. 또는 달리기가 아닌 것들 -복장이나 신발, 영양제, 여러 마라톤 대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많은 비법들-을 쫓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응원은 강력한 힘을 주고, 경쟁은 동기부여가 되고, 실력을 향상한다. 매일 달리는 원동력이 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는 시간에는 모든 주로의 풍경,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절이 좋아 사방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바람과 함께 달리고, 다리 아래와 교각 위를 달리고,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마주치는 꽃과 나무, 개울과 들과 철새들을 바라보는 일도 즐겁다. 달리는 시간이 짧아 기쁘고, 그 세월이 빠르게 지나감을 슬퍼한다.

 

초보 러너 시절을 지나면 달리기는 일종의 시험이 된다. 언젠가는 멈추겠지만 여전히 달리고 있는 자신의 일상을 견디는 시험, 하프와 풀코스 거리를 더 짧은 시간에 달리려는 의지의 시험, 동료와 다른 러너들과 맺는 관계에서 오는 리더십과 소통에 대한 시험, 다른 종류의 러닝을 해보겠다는 도전을 감당하는 시험을 거치는 순간이 온다.

 

어쨌든 항상 시야를 4미터 앞 바닥으로 향하고, 가끔 멀리 바라보고, 바로 앞에 펼쳐진 주로 만을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달리기는 삶과 비슷해서 멀리 보면 거리와 삶이 주는 무게에 압도당해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 지금 당장 달리는 바로 앞 만 바라본다.

 

요즈음은 달릴 때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한다. 가령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뭘까? 이 상황을 돌파하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하지? 난 왜 안 되는 놈인가?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망할까?" 이런 질문을 달리기 시작하면서 하나 잡고, 답이 나올 때까지 달리면서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스스로 가장 좋은 결정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에게 늘 친절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폐쇄적인 구조라서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반드시 책임지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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