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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모음

시골 창녀 -김이듬 시인, 히스테리아 시집 수록 - 김이듬 진주에 기생이 많았다고 해도 우리 집안에는 그런 여자 없었다 한다 지리산 자락 아래 진주 기생이 이 나라 가장 오랜 기생 역사를 갖고 있다지만 우리 집안에 열녀는 있어도 기생은 없었단다 백정이나 노비, 상인 출신도 없는 사대부 선비 집안이었다며 아버지는 족보를 외우신다 낮에 우리는 촉석루 앞마당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을 보고 있었다 색한삼 양손에 끼고 버선발로 검무를 추는 여자와 눈이 맞았다 집안 조상 중에 기생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창가에 달 오르면 부푼 가슴으로 가야금을 뜯던 관비 고모도 없고 술자리 시중이 싫어 자결한 할미도 없다는 거 인물 좋았던 계집종 어미도 없었고 색색비단을 팔러 강을 건너던 삼촌도 없었다는 거 온갖 멸시와 천대에 칼을 뽑아들었던 백정 할아비도 없었다는 말은 너무나..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어린애 같은 건 어린애들만이 아니다. 어린애 같은 건 어린애들만이 아니다. 어른들 역시 허세의 이면에는 장난스럽고, 어리석고, 엉뚱하고, 상처를 잘 받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겁에 질리고, 가엾고, 위로와 용서를 찾는 면이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서 사랑스러움과 여림을 보고 그에 따라 도움과 위안을 주는 데 능통하다. 우리는 아이들 곁에서 내면에 존재하는 최악의 충동, 복수심과 분노를 밀쳐놓을 줄 안다. 기대와 요구를 평상시보다 약간 낮게 재조정할 수도 있다. 화를 늦추고, 발견되지 않은 잠재성을 더 많이 의식하는 것이다. 이상하고 애석하게도 동료들에게는 보여주기 꺼려지는 과도한 친절함을 아이들에게는 쉽게 베푼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제페토의 시집 '그 쇳물 쓰지 마라'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집 에는 노년의 아픔을 들려주는 시가 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새벽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관절염이 아니라어쩌면,미처 늙지 못한 마음 이리라.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망한 기사에 제페토는〈그 쇳물 쓰지 마라〉는 추모시를 남겼다. 그 시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청년의 추모동상을 세우자는 움직임과 함께 이런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그 쇳물 쓰지 말고맘씨 좋..
오래된 연애 - 장석주 시인 오래된 연애 - 장석주 시인 가을은 끝장이다. 여러 개의 파탄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양파를 썰자 눈물이 난다. 개수대 아래로 물이 흘러들어간다. 당신이 떠난 뒤 종달새는 울지 않는다. 장롱 밑에서 죽은 거북이 나오고 우리는 잦은 불행에 대해 무뎌진다. 접시를 깬다, 실수였다, 앞니마저 깨진다. 분별이 무서워서 분별을 멀리했다. 짧은 황혼 속에서 빛이 희박해지면 나무는 어둠 속에서 목발을 짚고 일어선다. 누군가 허둥거리고 물이 얼자 인도네시아에서 온 원숭이들이 웅크린 채 잠든다. 우리가 하지 않은 연애는 슬프거나 치졸했다.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여름과 겨울이 열 번씩 지나갔다. 날씨는 늘 나쁘거나 좋았다. 영혼은 무른 부분에서 부패를 시작한다. 나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
모든 게 네 탓 세상은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번번이 우리에게 혼란과 실망, 좌절과 상처를 안긴다. 세상은 우리를 지체시키고, 창의적인 시도에 퇴짜를 놓고, 우리를 승진에서 제외시키고, 얼간이들에게 보상을 주고, 우리의 포부는 그 암울하고 무자비함에 산산이 부서진다. 그래도 우리는 거의 언제나 불평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책임 있는 사람을 알아내기가 너무 어렵고, 누구 책임인지를 확실히 알 때에도 항의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해고를 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
욕심 내려놓기 - 법륜스님 욕심 내려놓기 - 법륜스님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게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 중에서 여기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는데, 이걸 집고서 '어떻게 하면 놓습니까?' 하고 묻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뜨거워 죽겠어요, 어떻게 놔요?” 답은 “그냥 놔라”. 우리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건을 집었다가 “앗! 뜨거워!” 이러면서 그냥 내려놓잖아요. 근데 이걸 쥐고 뜨겁다 고함치면서도 어떻게 놓느냐고 자꾸 묻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덜 뜨거워 아직 쥐고 있을 만하든지. 또 하나는 뜨겁지만 갖고 싶든지. 그러니까 첫 번째는 덜 뜨거우면 좀 더 뜨거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두 번째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뜨..
버들 류(柳). 버드나무를 뜻하는 한자가 쓰인 사자성어 ○ 유서지재(柳絮之才) 영설지재(詠雪之才)와 유서지재(柳絮之才), 영서지재(詠絮之才) 옛날 중국 춘추시대 때, 진나라에 사혁(謝奕)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어느 눈 오는 날, 남매를 불러 놓고 “저 내리는 눈이 무엇을 닮았느냐?”라고 묻자 오빠인 낭(朗)은 “하늘에서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사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고개를 돌려 누이동생 도온(道韞)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자 "유서(柳絮-버들 솜)가 바람에 날려 춤추는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버들가지에 비유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멋진 시를 읊었다는 고사에서 ‘여자의 뛰어난 글재주를 기리는 말’인 영설지재(詠雪之才)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으며, 유서지재(柳絮之才)와 같이 쓰이고 있습니다. ○ 유암화명(柳暗花明) 버들은 무성(茂盛)..
임태주 시인 "어머니의 편지"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울리는 임태주 시인의 산문이다. 산문집 '그토록 붉은 사랑'(행성 B 출판사)의 맨 앞부분에 '어머니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는 글이다. 임태주 시인은 책 끝에 산문의 사연을 적었다. 몇 해 전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오래 치매를 앓으신 어머니는 마지막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래서 유언이 있을 리 없었고, 그런 것이 다 서러웠다는 것. 살아계실 적에 당부했던 말들과 지나가며 내뱉은 생살 같은 말들을 ‘누군가의 자식일 당신과 나누고 싶어’ 유서 형식으로 엮었다고 말했다.('어머니의 편지'는 누가 썼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식이고 어미일 수밖에 없다. 사연도 사연이거니와 좋은 글은 자주 읽을수록 더 마음이 가는 성질이 있다. 모든 문장이 시처럼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