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계절을 탄다.
계절이 바뀔 때면 늘 앓는다. 여름으로 넘어 갈 때나, 가을이 올 때 면 더욱 그렇다.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했다. 동기생들은 전산실, 은행, 공공기관에 졸업도 하기 전에 줄줄이 들어갔다. 졸업을 하고도 한달 후에야 입사를 했다. 나 보다 두 해를 먼저 졸업한 그녀는 학교에 있었던 것 같다. 찾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날 즈음 대학원을 다닌다며 연구소로 그녀가 찾아왔다. 국제 관계를 연구 중이라고 했다. 동 서독 통일을 한반도의 정세에 비추어 쓴 논문이었다 쉬지 않고 한글 윈도 3.1에서 타이핑을 했다. 잠도 안자고 타이핑을 했다. 삼 백 페이지중에 3페이지를 남기고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그녀에게 주었다.
여러 번 부서가 바뀌었다. 아스팔트가 쩍쩍 신발에 붙을 때 컴퓨터를 같이 사러 갔다. 조립 피씨다. 사임당이란 소프트웨어를 나는 자꾸 신사임당 소프트웨어라고 말해서 무안했다. 공항동 그녀의 자취방에 컴퓨터를 가져갔다. 2층집이었다. 볕이 잘 들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가져온 나의 편지들을 함께 읽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 보낸 편지봉투를 보았다. 봉투 하나 하나 꺼내어 니가 내게 보낸 편지들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여름은 지나갔다. 겨울이면 대학교 학력고사가 끝나는 계절이다.
그녀의 친구를 내 친구와 만나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본정통을 거의 정복하다시피 만났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다. 그녀는 떠난다고 했다. 그녀의 친한 친구는 떠나지 말라고 사정했다. 투다리에 모여 청하를 사정없이 마셨다. 떠난다는 목표를 지닌 사람은 말이 없다. 그녀는 취했다. 짧은 치마에 몸조차 가누기 힘들면서 떠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리고 휑하니 가버렸다.
아리조나 투산으로 출장을 갔다. 어뢰를 피하는 장비에 들어가는 열전지를 만드는 회사를 방문하는 출장이다. 엘에이까지 가서 다시 아리조나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다. "머 드실래요 ?" 하는 목소리에 놀랐다. 그녀였다. 공항동 집까지 갔을때 본 여자가 대한항공 승무원이었다. 웬일이냐고, 너는 웬일이냐고 놀랐다.
LA에 머무는 몇 시간 동안이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공항을 함께 벗어났다. 나는 12시 전에 투산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공항을 벗어나 가장 가까운 커피가게에 앉았다. 왜 항공기 여승무원이 된거니 ? 너는 연구소에서 일하는게 좋으니 ? 말이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난들… 그녀는 대한항공 승무원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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