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조기숙 / 2011-03-22)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동료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귀국해 학교에서 시험을 봤다고 한다. 사회 시험에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을 쓰세요”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아이는 ‘청소부’라고 썼다. 아이는 틀린 것으로 채점된 시험지를 돌려받았다. 교사는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이 정답이라며 아이의 답을 오답 처리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듣던 다른 동료 교수들은 아이의 기발하고 기특한 생각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게 될 아이네요.”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교수 전원은 그 아이의 답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획일적 교육에 시들어 가는 우리 아이들의 천재성이 안타까웠다.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물그릇에 방울토마토가 담겨 있습니다. 물에 설탕을 계속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문제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작은 아이의 답은 “점점 달아진다”였다.
아이의 답을 보고 배를 잡고 웃는 우리 부부를 아이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가 비중의 원리를 이해할 리 만무했다.
우리는 “네 답도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토마토가 물에 뜬다”일 거라며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그럼 자신의 답도 맞게 처리해야 하지 않느냐며 끝까지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의 시험과 채점은 그나마 합리적인 편이다. 청소부는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설명할까? 트친들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은 대머리 아닌가요?”에서부터 “네가 맞고 선생님이 틀렸다” “시험문제가 모호해서 잘못되었다” “빛낸다는 의미는 광낸다는 의미와 다르게 쓰인다”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한 대응법이 올라왔다.
사회과학에서는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묻는 질문이 있다. 무슨 사건이 몇 년에 일어났느냐 하는 사실에 대한 질문에서는 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처럼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빛내다’는 의미도 달리 해석할 수 있지만 ‘빛낸 사람’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부모가 선생님이 틀리고 아이가 맞다고 추켜세우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학교와 선생님을 불신하게 되면 교육은 불가능해진다. 부모가 아이의 불신을 부추길만한 발언을 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따져야 할까?
정답 찾기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창의적으로 자랄 수 없다. 자신만의 의견과 생각을 갖도록 독립적이고 비판적이며 개성 있는 아이로 키워내야 한다. 부모 혼자의 힘으로는 그렇게 만들 수 없다. 우리 학교가 변해야 하고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생각이 변해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교육에서도 필요하다.
민주사회에서는 국민의 생각이 여론이 되고 여론은 정책을 결정한다. 학부모가 창의적인 교육을 원하면 그런 정책을 내건 교육감과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출하면 된다.
권위적이고 틀에 박힌 정답을 좋아하는 보수는 절대로 창의교육을 할 수 없다. 입만 열면 창의교육을 외치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거짓말쟁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는 보수는 자신들만이 옳고 세상 모든 것엔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새로운 생각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억압적이고 위계적인 분위기에서 어떻게 새롭고 도발적이고 발칙한 생각을 용인하겠는가. 다양한 사고와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은 수평적인 인간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창의교육은 다양한 사고의 공존을 용인하는 진보주의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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