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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러너스

마라톤의 사계(四季) - 가을 마라톤의 사계로 글을 쓰던 중 겨울, 봄, 여름은 그러대로 잘 썼지만 마지막 글인 가을편은 정말 마무리하기가 힘들었다. 사계절을 쓰는 중에 마지막이라 그런지, 절실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 건지, 아니면 없었던 욕심이 일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절실하다는 건 사실 안타깝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낙엽이 지는 시간일 수도 있고,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이거나, 아니면 가을이란 계절이 길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단풍을 오래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달리고, 더 잘 쓰려는 나의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참 많이 달렸어.'라는 말은 가슴이 뭉텅 빠지는 느낌이다. 무엇엔가 들인 시간은 어떻게든 모두 돌려받는다는 말처럼 달리기에 쏟았던 시간에 맞는 선물을 천천히 하나씩 돌려받았다...
첫 우중런, 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느낌이다 첫 우중런, 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느낌이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비가 막 쏟아져 오늘 훈련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늦게 나왔을 것이다. 낮부터 소나기가 쏟아졌고, 구름은 어둡게 일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겹겹이 검은 구름이 보이면 반드시 비가 내릴 징조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으니 남자는 길을 나선다. 다른 일이 없으니 관문 운동장으로 간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비닐 주머니에 차키와 스마트폰을 넣고 입구를 매서 인조잔디 위에 둔다. 보통 비닐 랩이 둘둘 말려있는 부엌에서 요긴하게 쓰는 비닐 주머니 묶음은 땀에 젖은 옷을 담거나 비 오는 날 유용하다. 여름으로 접어들어서 빗물은 차갑지 않다. 남자는 붉은 트랙을 천천히 달린다. 비가 오는 날은 누구도 운..
서울 하프마라톤까지 지켜보다. 2019 SEOUL HALF MARATHON 3월 17일에 열린 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을 달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기 전이라 서울 하프마라톤도 참가하지 않았다. 4월 28일 열리는 서울 하프 마라톤이 열리면 2019년 봄의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모두 끝난다. 속절없이 흘려보내는 봄은 우리가 어떤 이유로 잠잠히 지내더라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아마도 일찍 핀 꽃들은 볼 수 있는 계절이다. 대회 날은 약간 쌀쌀한 날씨다. 정확히 13~16도를 가리키는 춥다는 느낌이 드는 날씨는 달리기에 최적의 온도다. 광화문은 아침 7시부터 10km와 하프코스를 달리는 건강하고 활기찬 러너로 붐비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심장을 헤집는 신나는 기분을 서울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러너는 알고 있다. 하프 거리 21.0975km는 오래 달린 러너나 10k..
남김없이 피고 지고, 벚꽃 엔딩 런 양재천 둑을 따라 활짝 핀 꽃들이 남김없이 피고 진다. 흰 꽃잎이 바람에 날릴 때는 모든 것이 부질없어 바람에 날려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이다. 핀 꽃은 진다. 피지 않은 꽃은 지는 순간을 갖지도 못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꽃은 작년에 핀 꽃도 아니고 내년에 필 꽃도 아니다. 지금 이순간 피었다 지는 꽃이다. 우리가 엄청나게 열심히 살아도 인생에서 꽃을 피우기는 어렵다. 싯다르타가 죽음에 직면해 제자들에게 "얘들아, 고개를 돌리지 말고 무상에 직면하라."고 말했다. 무상은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마치 죽음과도 같다. 무상을 직면하라고, 고개를 돌리거나, 얼핏 보지 말고 눈을 부릅뜨고 무상을 똑바로 보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서, 누군가에게서 무상을 볼 수 있을 때는 그 대상과 쉽게 헤어질 수 ..
러너의 귀환, 주로(走路)로 다시 돌아온 그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러너의 귀환, 주로(走路)로 다시 돌아온 그의 얼굴이 밝아 보인다. 그가 두 달 동안 햄스트링 근육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꼬박꼬박 정모에 나와서 걷고 기다리고 개인적인 훈련을 하는 게 전부였다. 고기를 물 밖에 내놓으면 결국은 죽는다. 다른 동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은 많이 좋지 않았다. 그가 저번 주에 잠깐 달리더니 오늘은 완전히 주로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이 얼마나 밝은지 온통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다. 가는 곳마다 탁한 공기와 먼지 낀 어슴푸레함을 몰아낼 지경이다. 아무래도 그의 귀환을 축하할 수밖에 없다. 역시 그는 인내하는 데 탁월하다. 참고 이겨내는 데 전혀 힘을 들이지 않는다. 엄마처럼 강하고, 물처럼 흐르고, 파도처럼 움직인다. 마라톤 전사의 도움을 받아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일이다. -고구려 마라톤 풀코스 완주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일이다. 달리기에는 조금 추운 날씨인 2월 17일에 '아! 고구려 역사지키기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동아 국제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거의 한달전에 열리는 대회라서 실전 연습을 위해 많은 러너들이 참가한다.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열리는 열리는 고구려마라톤을 그와 함께 달렸다. 그제서야 내가 그사람보다 빨리 달리게 되어, 앞으로 함께 달리기는 여간해서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일이다. 마라토너가 구간 전체를 고른 페이스-전 거리를 같은 빠르기로 달리는 이븐페이스를 말함-로 달리는 일은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날씨에도, 거리에도, 노면의 상태나 다른 사람에게서도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러너들은 시간과 ..
4킬로미터를 아주 느린 속도로 달렸다. 조짐이 좋다. 인내란 자유를 향한 긴 여정에 반드시 겪는 과정이다. 아침 일찍 영동1교로 간다. 자봉이 준비한 음식을 올려놓는 작은 테이블과 가방과 옷들을 두는 돗자리를 동료와 함께 챙긴다. 아직도 조금은 찬바람이 분다. 허벅지 부상을 회복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통증도 없고 걷는 모습도 아프기 전과 다름없지만 나아지는 속도는 정말 더디다. 모여서 인사를 하고, 준비 체조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각자의 페이스에 맞는 속도로, 서로 다른 거리를 달린다. 천천히 달려본다. 달리는 일은 걷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걷는 것보다는 빠르다. 땅에 닿는 발바닥의 형태가 틀리고, 허리와 무릎과 발목에 전해지는 충격의 양이 틀리고, 일단 전신의 자세가 다르다. 그래서 걷는 일은 아무리 빨리 걸어도 달리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회고록 "달리는 일에 대해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할 수 있다니." 하면서 그의 글을 읽는다. 그의 글은 늘 회자된다. 마라토너가 아닌 일반 사람에게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과정, 그리고 결국 다다르는 지점은 모두 동일하다. 긴 문장을 옮기지만 나 역시 공백을 달린다.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서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