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글 모음

늦게 온 소포-고두현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니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
꽃자리 - 구상 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나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연민 없이 감정을 표현해 내는 감독, 제인 캠피온 Jane Campion 내 책상 위의 천사(1990) 뉴질랜드의 한적한 시골, 1남 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남 자넷(Janet Frame as a child: 카렌 페구슨 분)은 잔뜩 부풀려진 빨간 머리와 뚱뚱한 몸매 그리고 못생긴 얼굴로 친구들에게조차 소외당하는 천덕꾸러기다. 친구들의 관심을 끌고자 아버지의 돈을 훔쳐 눈깔사탕을 한웅큼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지만 무서운 선생님에게 들켜 자넷(Janet Frame as adolescent: 알렉시아 케이 분)의 작전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외톨이 신세가 된 그녀는 같은 처지의 친구를 사귀면서 문학과 성의 신비로움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것도 한순간, 아버지 앞에서 섹스에 대해 언급했다가 호되게 꾸중듣는 순진한 자넷은 점점 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문학이라는 순수한 감성의 세계에..
청춘, 신의 보석이여 Juventud, divino tesoro 중남미의 시성이라 할 루벤 다리오(Ruben Dario, 니카라구아)의 시 "봄에 부르는 가을의 노래"에서 따온 싯귀에 빠꼬 이바네스(Paco Ibanez, 스페인)가 곡을 붙여 노래한 “청춘, 신의 보석이여”입니다. Juventud, divino tesoro (청춘, 신의 보석이여) - by Paco Ibanez Juventud, divino tesoro Ya te vas para mp volver! Cuando quiero lloar no lloro Y a veces lloro sin querer 청춘, 신의 보석이여 너 이제 가서 돌아오지 않는구나! 울고 싶을 땐 눈물이 나오지 않더니 때때로 나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지네. Juventud, divino tesoro Ya te vas para mp v..
협상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8가지 팁 협상에서 언제나 승리하는 8가지 팁 1. 상대의 머릿속을 파악하라 협상 상대방의 생각, 감성, 정서를 파악하라. 가장 효율적인 협상은 강압적 수단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손을 내밀도록 하는 것. 2. 감정에 신경 써라. 중요한 협상일수록 사람들은 논리보다 감정에 의존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보살펴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3.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 같은 사람과 같은 내용으로 협상을 하더라도 시간, 날짜, 컨디션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4.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standards)을 활용하라.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 과거 발언을 알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전례가 있는 일인데 이를 거부하면 그 점을 지적하라. 까다로운 사람을 상대할 때 효과적이다. 5.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 김계수 시인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서 어떤 남자가 울고갔는지 가을이 다 알기 어렵다 폭풍과 비바람을 이겨낸 남겨진 풀잎들이 아슴아슴 지는 해에 마음을 아끼는 때 순간 찾아오기도 하는 가을은 말라가는 풀잎에 몸을 걸친 늙은 여치의 울음, 일생을 울고도 함께 돌아갈 짝을 이루지 못하는 귀머거리 귀뚜라미의 하얀 고막 같은 것,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서 어떤 인연이 다녀갔는지 가을이 다 알기는 어려워도 밤이슬 툭, 떨어지는 가는 풀잎에 제 얼굴을 비쳐 본 사람이라면 가을이 언제 지나가는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남자를 발견한 가을은 언제나 굳게 다문 입이다 - 김계수 님
시골 창녀 -김이듬 시인, 히스테리아 시집 수록 - 김이듬 진주에 기생이 많았다고 해도 우리 집안에는 그런 여자 없었다 한다 지리산 자락 아래 진주 기생이 이 나라 가장 오랜 기생 역사를 갖고 있다지만 우리 집안에 열녀는 있어도 기생은 없었단다 백정이나 노비, 상인 출신도 없는 사대부 선비 집안이었다며 아버지는 족보를 외우신다 낮에 우리는 촉석루 앞마당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을 보고 있었다 색한삼 양손에 끼고 버선발로 검무를 추는 여자와 눈이 맞았다 집안 조상 중에 기생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창가에 달 오르면 부푼 가슴으로 가야금을 뜯던 관비 고모도 없고 술자리 시중이 싫어 자결한 할미도 없다는 거 인물 좋았던 계집종 어미도 없었고 색색비단을 팔러 강을 건너던 삼촌도 없었다는 거 온갖 멸시와 천대에 칼을 뽑아들었던 백정 할아비도 없었다는 말은 너무나..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어린애 같은 건 어린애들만이 아니다. 어린애 같은 건 어린애들만이 아니다. 어른들 역시 허세의 이면에는 장난스럽고, 어리석고, 엉뚱하고, 상처를 잘 받고, 히스테리를 부리고, 겁에 질리고, 가엾고, 위로와 용서를 찾는 면이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서 사랑스러움과 여림을 보고 그에 따라 도움과 위안을 주는 데 능통하다. 우리는 아이들 곁에서 내면에 존재하는 최악의 충동, 복수심과 분노를 밀쳐놓을 줄 안다. 기대와 요구를 평상시보다 약간 낮게 재조정할 수도 있다. 화를 늦추고, 발견되지 않은 잠재성을 더 많이 의식하는 것이다. 이상하고 애석하게도 동료들에게는 보여주기 꺼려지는 과도한 친절함을 아이들에게는 쉽게 베푼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멋진 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집 에는 노년의 아픔을 들려주는 시가 있다. 노년을 아프게 하는 것은 새벽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관절염이 아니라 어쩌면, 미처 늙지 못한 마음 이리라.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망한 기사에 제페토는〈그 쇳물 쓰지 마라〉는 추모시를 남겼다. 그 시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청년의 추모동상을 세우자는 움직임과 함께 이런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
오래된 연애 - 장석주 시인 오래된 연애 - 장석주 시인 가을은 끝장이다. 여러 개의 파탄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양파를 썰자 눈물이 난다. 개수대 아래로 물이 흘러들어간다. 당신이 떠난 뒤 종달새는 울지 않는다. 장롱 밑에서 죽은 거북이 나오고 우리는 잦은 불행에 대해 무뎌진다. 접시를 깬다, 실수였다, 앞니마저 깨진다. 분별이 무서워서 분별을 멀리했다. 짧은 황혼 속에서 빛이 희박해지면 나무는 어둠 속에서 목발을 짚고 일어선다. 누군가 허둥거리고 물이 얼자 인도네시아에서 온 원숭이들이 웅크린 채 잠든다. 우리가 하지 않은 연애는 슬프거나 치졸했다. 이별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여름과 겨울이 열 번씩 지나갔다. 날씨는 늘 나쁘거나 좋았다. 영혼은 무른 부분에서 부패를 시작한다. 나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헤어..
모든 게 네 탓 세상은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번번이 우리에게 혼란과 실망, 좌절과 상처를 안긴다. 세상은 우리를 지체시키고, 창의적인 시도에 퇴짜를 놓고, 우리를 승진에서 제외시키고, 얼간이들에게 보상을 주고, 우리의 포부는 그 암울하고 무자비함에 산산이 부서진다. 그래도 우리는 거의 언제나 불평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책임 있는 사람을 알아내기가 너무 어렵고, 누구 책임인지를 확실히 알 때에도 항의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해고를 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
욕심 내려놓기 - 법륜스님 욕심 내려놓기 - 법륜스님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게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 중에서 여기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는데, 이걸 집고서 '어떻게 하면 놓습니까?' 하고 묻는 것하고 똑같습니다. “뜨거워 죽겠어요, 어떻게 놔요?” 답은 “그냥 놔라”. 우리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물건을 집었다가 “앗! 뜨거워!” 이러면서 그냥 내려놓잖아요. 근데 이걸 쥐고 뜨겁다 고함치면서도 어떻게 놓느냐고 자꾸 묻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덜 뜨거워 아직 쥐고 있을 만하든지. 또 하나는 뜨겁지만 갖고 싶든지. 그러니까 첫 번째는 덜 뜨거우면 좀 더 뜨거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두 번째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