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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현 대통령 측근 인사의 대통령기록관 관장 임명을 철회하라

지구빵집 2010. 3. 2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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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대통령기록관 관장으로 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인물을 임명한 것에 대하여 기록학계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의 철회를 요구한다.

역대 대통령 기록을 관리하는 대통령기록관장은 직급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그 보좌, 자문기관이 생산한 기록은 가장 중요한 국정기록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기록 가운데는 국가 안보와 중요한 경제정책에 관한 내용을 비롯하여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담은 것이 적지 않다. 따라서 역대 대통령들은 기록을 남기기를 주저하였으며, 지금 남아 있는 대통령 기록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귀중한 국민의 자산인 대통령 기록을 잘 생산하고 관리하여 후대에 국정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한 정신에 따라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대통령기록관을 설치하였다. 그 법률에서는 대통령 기록을 온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지정기록물제도와 대통령기록관장의 임기제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선진적인 법과 제도에 힘입어 지난 정부에서는 무려 8백 만 건이 넘는 대통령 기록을 온전히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정부는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기록관장을 작년 12월 직권 면직시켰다. 대통령기록물 유출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였지만,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기회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면직시킨 것은 현 대통령의 측근을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명하여 대통령기록관을 장악하려는 사전조치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측근을 관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지정기록물제도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지정기록물제도는 공개될 경우 국가 안보의 위기, 경제 혼란, 정쟁 발생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기록을 퇴임하는 대통령이 15년 이내에서 공개하지 않도록 유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단기적으로는 대통령기록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대통령 기록이 충실하게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지정기록물을 포함한 모든 대통령기록을 관리하는 관장에 현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임명한 것은 지정기록물의 보호를 사실상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기록학계는 정부의 이번 대통령기록관장 임명이 대통령기록이 제대로 생산, 관리되어 국가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파괴하는 조치라고 판단한다. 현 정부가 전임 대통령의 기록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느 정부가 대통령 기록을 제대로 남기려 하겠는가? 지금 정부는 대통령기록을 제대로 남길 의사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기록 관리 제도를 파괴하고 설립의 본래 취지를 왜곡하는 행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퇴행적 행태이며,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이다. 우리는 정부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통령기록관장 인사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면직시킨 대통령기록관장을 복귀시키거나 중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새로 임명할 것을 촉구한다.


2010년 3월 22일

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남권희 (경북대학교 교수)
한국기록학회 회장 안병우(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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