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오상의 성 비오~~ 뜻을 몰라서 찾아본 글

지구빵집 2010. 4. 26. 13:06
반응형
출처 : cafe.daum.net/Dominicanis

처음에는 오상이란 뜻을 모르고 "아 이런 성인도 있구나"하는 생각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책을 읽으면서 비오 신부님도 "아르스의 성자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처럼 고해의 사제 였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오상이란?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입은 양손과양발,그리고 옆구리의 다섯 상처를 말한다.

고해사제로 알아서 나는 비안네 신부님의 생애와 같은 줄 알고 꽤나 지겨웠지만 책을 한장 한장씩 넘기면서 나의 예상은 전혀 반대로 가고 있었다.

나는 오상의 비오신부님을 뵈어보지는 못했지만 비안네 신부님처럼 고해의 사제로 유명했다고 하지만 20세기의 성인으로써 더 유명했을지도 모른다.

비오 신부는 1887년 5월 25일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나셨다. 너무 가난한 양친이었기에 비오 신부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번이나 다른사람들처럼 미국에가서 돈벌이를 하셨다.

출생 후 몇 일 뒤 지금도 있는 마을의 작은 성당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책에서 보면 비오 신부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1902년 10월의 어느날 어린 비오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베내밴토 주의 모르코네에 있는 카푸친회(프란츠스코회)수도원에 가서 입회를 지원했다.

비안네 신부님은 성저이 안좋아서 사제가 되기 힘이 들었지만 비오 신부는 허약한 건강이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성인이라도 장정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도 사람이기에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오 신부는 건강도 안좋았지만 금욕생활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밤에는 마귀와의 치열한 싸움에도 시달렸다. 마치 비안네 신부님이 "나쁜 원수(마귀)라는 것은 하느님의 신하들 밖에 모르는 것일까?"밤마다 비오 신부는 애먹고 있는 것을 보면 읽고 있는 나로써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마귀도 하나의 유혹이기에 이것을 뿌리치고 나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힘든 수도서원을 마치고 1910년 5월 10일 베네벤토의 주교자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으셨다.

그 이후 전쟁이라는 이유로 군대를 가시게 되었는데 몸의 허약한 비오 신부는 거의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여기서 저자는 "아르스의 성인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도 근복무를 했지만 피에트렐치나의 비오신부보다 나은 편이 아니었다"고 호소한다.

책에서는 오상을 1918년에 받았다고 하지만 그전에 오상을 받았는지도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오상을 받게된 비오신부는 병리학정 대상이 되는데 의사들도 상처를 보고 기절을 한다.

피가 흘러내리지만 응고가 되지 않고 피의 냄새는 커녕 향기만 나는 이 비오신부의 상처가 내가 그 시대의 의사라도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 향기는 제대 꽃보다 더 향이 좋아 비오신부가 미사를 하실 때에 제대에 꽃이 없었다고 한다.

비오 신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상이라는 '휘장'을 받아 누구는 일으켜세우고 누구에게는 분통을 선사했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비오신부는 죽는 날까지 죄악과 부자는 결코 손들어 항복하는 일이 없고 역사의 뒤안 길에서는 언제나 그것을 부추기는 자가 바로 오상의 비오 신부였다.

나는 이런 비오 신부를 보면서 오상을 받았지만 고통으로 사는 것 보다 더 기쁘게 사는 방법을 알았으며 자신의 몸이 고통에 있을 때도 자신에게 고해성사를 보시러 오시는 많은 외국인 및 등등 을 위해 고해성사를 봐주시는 비오 신부의 이런점을 본 받고 싶다.

그리고 매일 자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과 외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기도를 하시는 비오 신부를 볼 수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 비오 신부는 남녀 25.000명에게 고해성사를 주셨으며 기도 모임은 그때 당시 회원수만 65.000명이였다고 한다.

비오신부는 예언가이면서 고해사제였다.

돌아가시기 한달 전에 영적자녀와 만나서 한 달 뒤에 죽을 터이니 아무에게도 말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 후 한달 뒤인 1968년 9월 23일에 돌아기신다...

수도회의 장상들과 동료 신부님들은 장례미사를 하시기전에 비오 신부를 관으로 옮기시는데 비오 신부의 오상의 상처는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수 없었으며 상처가 있는 곳에는 갓난아이의 피부로 변해져 있어 돌아가시긴 하였지만 너무나도 놀라는 일이였다.

1999년 5월 2일에 시복되었으며 2000년 6월 16일에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께 시복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말로써 신부가 된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신부가 되어야 겠다는 믿음 뿐 확고한 믿음이 없었는거 같았다. 확실히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왜 신부가 되어야 하는지 또 신부가 되어서 나는 무엇을 할건지...제대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거 같다. 먼저 말로써만 앞선거 같아 눈물이 나온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것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왠지 모르게 비오 신부의 삷과 영성을 읽고 나도 한 때 고해의 사제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시대가 다르지만 한 번 쯤은 해보고 싶다.

성서에서 보면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언제나 진실이 있을 따름입니다.(2고린 1,19)

나도 이랬다 저랬다는 하기 싫다.. 신부가 되고 안돼고는 내 자신의 믿음이 확고해져야 선택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