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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슐린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입니다. 프레더릭 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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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의 정형외과 의사 프레더릭 밴팅은 사실상 실패한 인생이었다.

개업한 병원에는 환자가 오지 않았고 빚만 쌓여갔다.

그는 의학 저널을 읽다가 췌장과 당뇨병에 관한 논문에 꽂혔다.

1921년 당시만 해도 당뇨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환자들은 서서히 말라가며 죽어갔다.

밴팅은 무모한 아이디어를 들고 토론토 대학 생리학과 교수 존 맥레오드를 찾아갔다.

그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췌장의 소화액 분비관을 묶어 위축시키면 인슐린을 만드는 세포만 온전히 남겨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맥레오드 교수는 회의적이었지만 여름 방학 동안 낡은 실험실과 개 몇 마리 그리고 조교 한 명을 내줬다.

그 조교가 22세의 생리학 전공 학생 찰스 베스트였다.

두 사람은 극명하게 달랐다.

정형외과 의사 밴팅은 불같은 성격에 집착적이었고, 조교인 베스트는 차분하고 세심했다.

40도가 넘는 찜통 같은 실험실에서 그들은 개의 췌장을 묶어 위축시킨 뒤 추출물을 만들었다.

수십 번의 실패 속에 개들은 죽어갔고 추출물은 독성을 일으켰다.

결국 자금은 바닥났고 맥레오드 교수는 실험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1921년 7월 27일, 운명의 날이 왔다.

당뇨병에 걸린 개에게 췌장 추출물을 주사하자 개의 혈당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죽어가던 개가 다시 꼬리를 흔들었다.

벤팅과 베스트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

하지만 추출물은 여전히 불순했고 대량 생산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 생화학자 제임스 콜립이 합류하면서 전환점이 왔다.

그는 소의 췌장에서 더 순수한 추출물을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1922년 1월 11일, 14세 소년 레너드 톰슨이 첫 인간 실험 대상이 됐다.

29킬로그램으로 마른 그는 며칠 안에 죽을 상황이었다.

첫 주사는 실패했다.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12일 후 정제된 추출물을 다시 주사했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소년의 혈당이 정상화됐다.

소년은 13년을 더 살다가 27세에 폐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뉴스가 퍼지자 전 세계에서 절망적인 편지가 쏟아졌다.

병원 복도에는 죽어가는 당뇨병 환자들이 넘쳐났다.

5세 소녀는 뼈와 가죽만 남았지만 인슐린 주사 후 3개월 만에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혼수상태의 환자들도 인슐린 주사 후 다시 눈을 떴다.

인류 역사상 이런 극적인 치료제는 없었다.

1923년 정형외과 의사 밴팅과 맥레오드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밴팅은 분노로 떨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조교 베스트가 수상자에서 빠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금 절반을 베스트에게 나눠줬다.

맥레오드 교수도 생화학자 콜립에게 상금을 나눴다.

하지만 더욱 극적인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특허 등록 시점이었다.

인슐린은 즉시 수백억 달러의 가치가 되는 물질이었다.

하지만 1923년 1월 23일 밴팅, 베스트, 콜립 세 사람은 인슐린 특허권을 각각 1달러에 토론토 대학에 양도했다.

“인슐린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입니다.”

의학 역사상 가장 고귀한 결정이었다.

만약 그들이 특허를 가졌다면 역사상 최대 부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덕분에 인슐린은 빠르게 대량 생산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정형외과 의사 밴팅은 1941년 군 의무대로 복무하다 비행기 추락으로 49세에 사망했다.

조교 베스트는 토론토 대학에 남아 연구를 이어갔다.

그들의 선택이 놀라운 이유는 단순히 돈을 포기해서가 아니다.

생명을 구하는 발견이 소수의 부자만 접근할 수 있는 미래사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이 인류 전체를 위한 것임을 증명했다.

오늘날 4억 명 이상의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덕분에 살아간다.

그 시작은 무더운 여름날, 낡은 실험실에서 개를 돌보던 두 청년의 집념과 그들이 내린 한 번의 위대한 결정이었다.

(*참조 문헌 출처)

 

 

 

 

 

프레더릭 밴팅 프레더릭 밴팅은 인슐린의 공동 개발자이며 캐나다 최초의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작품: 이르마 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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