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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급진적

세계 지성인들의 기독교 비평


세계 지성인들의 기독교비평

 

▷ 토인비 : "나는 신의 본질에 대해서 유태의 개념(구약의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더러 그다지 존경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토인비 저, 최혁순 역 <미래를 산다> p63 ] 

"신의 전능함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악마도 신이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어, 그러면서도 신은 자기가 만든 악마의 행위에는 책임이 없다는 거야" [ 같은 책, p149 ] 

"동물은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용케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 이 교의를,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같은 책, p150 ] 

"우주와 그 배후에 더 높은 존재가 있다고 믿습니다. ‥‥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높은 존재에 대한 동부 아시아나 인도적인 견해입니다." [ G.G.어반 저 <미래에의 좌표> P152 ] 

▷ 간디 :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왜 당신들이 믿는 신은 이웃사랑을 가르치는데 당신들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그 나라 백성을 괴롭히는가?" 

▷ 아인쉬타인 :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열정적인 자유 사상가가 되었고, 국가는 고의로 젊은이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 이 태도는 근본적으로 내 일생을 통해 지속되었다." [ 제리미 번스틴著, 장회익 편역 <아인슈타인> p18 ] 

" 나는 그의 창조물인 인간을 상벌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B.러셀 外 著, 한영순 譯 <나는 이렇게 믿는다> p48 ] 

▷ 슈바이처 : "예수는 머지않아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가 곧 출현하리라고 전했지만, 이 나라는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서의 예수는 오류를 범했다고 할 수 있다."[注1] 

"그리스 스토아 철학과 노자의 도덕경 사상을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고, 이들을 진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종교단체(기독교)는 개인이 자신의 사색을 통해 신념을 얻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들이 미리 준비해둔 신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역사적 진리를 긍정하기는 커녕, 역사의 진리와 어긋날 때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거나 은폐하면서 그것을 얼버무리고 있다. 

현대 기독교는 그 정신적 또는 윤리적 본질상 일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 같은 책, p223~240 ] 

▷ 볼테르 :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 B.베리 著, 양병우 譯 <사상과 자유의 역사> p127 ] 

"기독교는 틀림없이 신성하다. 악행과 넌센스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1,7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윌 듀란트 著, 황문수 譯 <철학 이야기> p188~200 ] 

▷ 톨스토이 : "기독교인들은 야만적인 최면술과 기만 속에 있으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진실한 종교의 파악자라고 자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의 기만적인 최면술에 사로잡힌 결과, 자기들에게 주입된 사이비종교를 진실하고 유일한 종교로 생각하고, 그밖에는 어떤 종교도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대다수의 민중" 

"대다수를 점하는 일반 대중은 자기들에게 작용하는 이 최면술적 암시와 싸울 힘도,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듯이 인간의 지고지순한 행복 - 인생의 진지한 종교적 각성 -을 결여한 채 헛되게 살다 헛되게 죽는다." [ 톨스토이 著, 김학수 譯 <종교론> p 50~92 ] 

▷ 루소 : "구원받기 위해서 신을 믿어야 한다. 이 그릇된 교리는 잔인한 불관용의 원리이다." 

"만약 지상에 단 하나의 종교가 있어서,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고통만 있다면, 그런 종교의 신은 가장 부정(不正)한, 또 가장 잔인한 폭군일 것이네." 

"나는 스위스에서 아들에게 종교(기독교)를 가르치지 않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 까닭은 이 조잡한 가르침에 만족해 버리고 이성에 깃들 나이에 이르렀을 때 보다 나은 가르침을 경멸하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소르본느에서 메시아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결부되어 있음은 대낮에 해를 보듯이 명백하네. 그러나 암스테르담의 유대교 율법교사들 사이에서는 같은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하네." [ 루소著, 정봉구 역 <에밀> p348~411 ] 

▷ 존 스튜어트 밀 : "지옥을 만들어 내는 존재를 생각해 보라. 인류의 대다수가 끔찍스러운 영겁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분명히 알면서, 따라서 그렇게 할 의도를 가지고서 인류를 창조한 존재를 생각해 보라 ‥‥ 도덕적 선악을 조금이라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내 아버지만큼 분하게 여기면서 바라보게 될 시대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J.S.밀 저 <자유에의 증언> P56 ] 

▷ 니체 : 기독교는 피정복자와 피압박자의 본능이 전면에 나타난다, 기독교에서 구원을 얻으려는 무리들은 최하층의 저급계층의 사람들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 불리는 권력자에 대한 감동이 늘 생생하게 살아난다. 여기서는 육신이 경멸되고 위생은 육신을 위하는 것이라 하여 경멸되며 거부당한다. 교회는 청결을 거부하는 것이다. 무어인들을 추방한 후 기독교인들이 취한 최초의 조치는 코르도바에만 270 개소나 있었던 공중 목욕탕을 폐쇄한 일이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금욕주의의 탈을 쓴 잔인성 이것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 복수심 , 암울하고 선동적인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 기독교 내에서의 갈등 그 또한 기독교적인 것이다. 정신 , 긍지 , 용기 , 자유에 대한 증오 , 정신적인 사상가에 대한 증오가 기독교적인 것이다. 관능에 대한 증오, 육체에 대한 경멸 , 즐거움과 관능 일반에 대한 증오가 기독교적인 것이다. 기독교는 야만적인 개념과 가치로 중무장하고 필요하다면 주위의 민족을 야만인이라 단정하고 정복하는 것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선동한다. 첫 자식을 재물로 바치는 것 , 성찬식에서 피를 마시는 것, 이성과 지혜에 대한 경멸 , 육체적 , 비육체적인 것을 막론하고 온갖 종류의 고문 등등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적인 것이다. 아직 유럽은 불교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 불교는 문명의 종말과 피곤함 때문에 생긴 종교이지만 , 기독교는 문명의 맹아도 아직 보지 못했다. 기독교는 필요하다면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다. [반그리스도 중에서] 

" 나는 기독교의 똑바른 역사를 말하겠다. 기독교란 말부터가 하나의 오해다. 근본적으로 기독교인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리고 복음도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 순간 이래로 복음(福音)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은 벌써 그가 몸소 생활한 바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것이야말로 나쁜 소식, 즉 화음(禍音,Dysangelium)이었다." 

예수의 이런 복음을 화음으로 바꾼 장본인은 바울이다. 니체에 의하면, 바울은 증오의 화신이요 환각의 천재다. 예수는 신과 인간의 간격을 제거하고 신인 합일의 내면적 생을 자신의 복음으로서 최후까지 실천하였는데, 바울은 십자가 위의 희생이란 관념을 삽입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간격을 넓히고 그 중간에다가 원죄, 심판, 부활 그리고 신앙에 의한 구원 등등의 여러 가지 환상을 개입시켰다. 이리하여 바울은 생의 의미를 사후로, 피안으로, 배후세계로 옮겨 놓았다. 예수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현실의 내면적 생의 긍정 대신에, 피안을 신앙하는 자학의 체계가 등장한다. 생의 중심이 생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안의 무(無) 속에 놓이게 된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에 의하면 바울은 "최초의 기독교도", 혹은 "기독교의 발명자"가 된 것이다. 

▷ 쇼펜하우어 : 인도의 「우파니샤드」를 읽고 나서 한 말 

"아 이렇게 내 마음에 붙어 있던 유대인의 미신을 깨끗이 씻어 줄 수 있는가!"[ 라다 크리슈난 <석가와 예수의 대화> P173 ] 

▷ 버트란트 러셀 : "우리가 기독교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 다 악한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기독교를 지켜온 사람들이 대개 매우 악했습니다. ..... 저는 많은 교회로 조직된 기독교도의 종교가 세계의 도덕적 진보의 으뜸가는 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신중히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 Bertrand Russell, 이재황譯, p31 ] 

"기독교의 근본 교리는 수많은 윤리적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같은 책, p39∼40]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은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기독교의 덕분이 아니다. 이는 여러 세대를 겪어온 자유사상가들의 덕택이며, 이들은 르네상스로부터 오늘날까지 기독교도들로 하여금 수많은 그들의 전통적 신념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도가, 기독교가 얼마나 온유하며 이성적인가를 보이려고 하면서도 그 온유함과 이성적인 것이 당시의 모든 정통 기독교도들에게 박해를 받던 사람들의 덕분임을 무시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오늘날에는 아무도 이 세계가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를 의심한다는 것은 엄청난 죄악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교리가 차차 부드러워진 것은 줄기찬 저항을 받았기 때문이며, 오직 자유사상가들이 취한 공격의 결과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같은 책, p45∼47 ] 

▷ 라즈니쉬 : "이제 기독교 신학자들조차도, 기독교 복음서가 사도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복음서에 서술된 산들은 실제 지명과 같지 않다. 강들과 호수들도 역시 실제지명과 같지 않다. 모든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라즈니쉬 <기독교와 선> p200] 

▷ 조찬선 : "만일 과거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예수의 그 위대한 희생정신과 참다운 사랑을 알고 실천하였더라면 기독교는 그러한 살인적인 종교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또 잔인한 종교집단으로 타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가 또다시 그러한 과오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국의 토인비의 저서가 지적한 것과 같이 기독교는 국가와 경쟁하게 되고 인류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조찬선 <기독교죄악사下> p248 ] 

▷ 김용옥 : "성령의 광기 속에 은총의 강림을 외치며 연보돈과 십일조를 강요하고, 장대한 성전이나 지으려 하고, 목사의 직위마저 세습시키려고 하는 오늘의 우리 나라 교계의 작태는 바로 공자가 목격한 소인유(小人儒)의 세계였던 것이다." [ 김용옥 <도올논어> p120 ] 

"오늘 우리 20세기를 회고해볼 때, 우리 20세기의 최대의 죄악은 바로 악마와 천사라고 하는 얄팍한 기독교적 사유 속에서 세상을 보았던 윤리적 이원성(二元性)이다.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 그래서 죄는 너의 것이다. 이 사회의 죄악은 모두 너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나는 그 죄악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저주하노라! 그 저주를 받지 않으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과연 우리 민족은 구원을 얻었는가? 20세기 기독교선교사의 결론은 무엇인가? 거대한 교회건물, 기도원에까지 수천만원짜리 코트를 입고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어리석은 여인들! 그것이 우리 20세기 기독교선교사, 순교사의 총결론이었던가?" [ 김용옥 <노자와 21세기(중)> p185 ] 

"기독교는 교리에 문제가 있다. 그 교리가 저급하게 유치하고 모순투성이며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유치성과 모순성, 배타성 때문에, 그러한 허약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p223~224 ] 

"신·구약(新·舊約) 만 근이 『대장경(大藏經)』한 근에 미칠 수 없고, 『대장경』만 근이 『중용(中庸)』한 근에 미칠 수 없다." [ 김용옥 <의산문답(醫山問答)> p83 ] 

"예수의 경우는 不同한 기자들이 예수에 대한 不同한 기록을 남겨 놓았지만, 라오쯔(老子)의 경우는 동일한 기자가 不同한 기록을 같이 남겨 놓았다." [ 김용옥<老子철학 이것이다> p138 ]

 

 

2천년전 죽은 예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피를 말리고 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12488


영화 splice(스플라이스),2009(개봉은 2010),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