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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오, 나여! 오, 삶이여!

지구빵집 2018. 5. 1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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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오, 나여! 오, 삶이여! 


오, 나여! 오, 삶이여!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들

믿음 없는 자들의 끝없는 행렬에 대해

어리석은 자들로 가득 찬 도시들에 대해

나 자신을 영원히 자책하는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어리석고, 나보다 더 믿음 없는 자 누구인가?)

헛되이 빛을 갈망하는 눈들에 대해

사물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투쟁에 대해

형편없는 모든 결말들에 대해

발을 끌며 걷는 내 주위의 추한 군중에 대해

공허하고 쓸모없는 남은 생에 대해

나를 얽어매는 그 남은 시간들에 대해

오, 나여! 반복되는 너무 슬픈 질문

이것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오, 나여, 오, 삶이여!


답은 바로 이것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

삶이 존재하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장엄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


- 월트 휘트먼 <오, 나여! 오, 삶이여!> (류시화 옮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낭송되어 애플 제품 광고에도 인용된 시이다. 영화 속 존 키팅 선생 역의 로빈 윌리엄스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시가 예쁘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이런 것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숭고한 추구이다. 그러나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들이다." 

그러고 나서 휘트먼의 이 시를 인용한다.


그렇다, 우리는 자주 "오, 나여! 오, 삶이여!" 하고 자신을, 자신의 삶을 호출해야 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시의 구절을 써 나가고 있는가 자문해야 한다. 때로는 삶이 하찮고 남은 시간들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책 속에 마땅한 결론조차 없다. 주위 사람들은 반복되는 투쟁 속에 볼품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연극은 계속 펼쳐지리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한 편의 시를 써 나가고 있으며, 그 시를 세상과 공유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월트 휘트먼(1819-1892)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가난한 퀘이커 교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1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 사환, 신문사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이를 계기로 문학의 문을 두드렸다. 도서관과 토론회 등을 통해 독학으로 지식을 쌓고 십대 후반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문사를 차려 발행, 편집, 인쇄, 배달을 혼자 담당했다. 이후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혼을 집대성한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을 자비출판하고 평생동안 수정을 거듭했다. 형식과 전통을 과감히 깬 이 시집으로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비'를 '지구의 시'로 표현하는 등 모든 창조물에 존재하는 생명력을 주제로 한 휘트먼의 시는 현대 영미시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같은 비트 세대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이며,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도 휘트먼의 시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삶이 곧 한 편의 시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장엄한 연극에 참여하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시의 한 구절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시와 나쁜 시는 없다. 자신의 시인가, 남의 시인가가 있을 뿐이다. '나 없는 내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박제화되어 가는 우리의 감수성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로빈 윌리엄스, 영화 속에서 "카르페 디엠! 오늘을 잡아라!"라고 외치던 그가 오랜 우울증과 싸우다가 며칠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부재로 세상은 조금 어두워졌고 따뜻한 웃음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것을 다시 채우는 것은 우리의 할일이다. 영화 속 로빈 윌리엄스는 휘트먼의 시를 낭송하고 나서 마지막에 묻는다.


"What will your verse be? 너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 류시화 -



painting_Brian Kershisn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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