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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과학 - 이민하

지구빵집 2018. 6. 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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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과학

이민하

당신을 만나려고 나는 직립을 한다. 당신과 악수하려고 앞다리를 일으켰다. 당신에게 인사하려고 거울 속에서 표정을 익혔다. 당신에게 고백하려고 자음과 모음을 연마했다. 꼬리 대신 각주가 매달려 있다. 당신을 부르려고 밥상 위에 꽃을 피운다. 두 개의 손이 모자라 그림자를 만든다. 당신에게 밟히려고 낡고 지루한 계단을 시시詩詩때때로 리폼한다.

당신이 보지 않으면 나는 아무 곳에도 숨지 않는다. 당신이 듣지 않으면 수음도 하지 않는다. 당신과 시작할 때까지 나는 잠들지 않는다. 당신이 웃는다. 그래서 좋아, 웃다가 기절했으면, 당신과 끝낼 때까지 나는 깨지도 않는다. 당신이 눈을 흘긴다. 그래도 좋아. 눈이 빠지도록 폭발했으면. 당신이 발생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실험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발표되지 않으면 이별의 가설도 쓰지 않는다.

당신은 어둠의 횃대에 올라 새벽을 복제한다. 마음이 스칠 때마다 센서가 물결치는 불야성의 트랙. 나는 줄지어 뒤뚱뒤뚱 행진한다. 날개 대신 후렴이 매달려 있다. 아침마다 빼앗기는 꿈을 다섯 알씩 낳는다. 한 마리씩 목을 비틀고 기름 속으로 뛰어들어가 귀갓길 당신의 취기를 타고 입속으로 사라진다. 반복해서 씹혀주는 추억의 부검. 당신의 혀가 닿지 않으면 나는 죽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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