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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지구빵집 2018. 10. 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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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딸린 방 한 칸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된다 돈 한푼 없이 대낮에 귀가할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안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 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씨 

홍등 유리방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같은 명순씨가 지저 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 할 때 

우린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갱쾌하게 말 못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 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지 몇년 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일부러 

날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 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발려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정정은 아니고 없는 적을 만들어 창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돌아서는 길목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 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존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안동김가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공원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지인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이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 데 철로의 영끝은 흙속에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닺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를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겉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서햐가 있고 

더 멀리가면 중국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인도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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