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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의 심리를 해부한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지구빵집 2011. 10. 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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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볼라고~~ ㅋ

황빠, 노빠, ○빠…대한민국은 '광신자'가 지배한다!?

[광신자의 심리를 해부한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21세기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열쇳말 중 하나는 이른바 '○빠' 현상이라고 불리는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일단 "끌리고 쏠리고 들끓기" 시작하면 합리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그 폐해가 수차례에 걸쳐서 드러났음에도 심지어 언론, 지식인, 정치인이 나서서 이런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현상을 부추기고 대중은 이에 반응한다.

'프레시안 books'는 파시즘, 매카시즘 등 전체주의의 광기가 세계를 옥죄던 1951년 대중의 쏠림 현상의 위험을 경고한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이민아 옮김, 궁리 펴냄)에 주목했다. 열정과 연대에 기반을 둔 대중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지만, 맹신에 빠진 대중은 공동체는 물론이고 자기 파괴도 서슴지 않는다.

반세기 전에 나온 <맹신자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심리학자 김태형 씨,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가 다른 관점에서 안내자로 나섰다. (☞관련 기사 :
황빠, 노빠, ○빠…맹신자를 만드는 진짜 동력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절대다수의 서구 지성인은 서유럽을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된 모델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월감과 자부심은 히틀러의 등장과 그에 의해 저질러진 전대미문의 잔악 행위로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서구의 지성인들은 '가장 발전된 서유럽에서 어떻게 히틀러 같은 괴물이 등장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제시해야만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히틀러 같은 인물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던 이유를 규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런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길을 보여줄 것이기에 서구의 지성인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히틀러 같은 병적인 인물은 어느 시기, 어느 곳에나 존재할 수 있어서 그를 심리학적으로 해부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의문의 초점은 어떻게 그런 괴물이 대중한테 열렬한 환영을 받아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고, 나아가 평범한 사람들을 부도덕한 행위로까지 내몰 수 있었는지에 모아진다.

다시 말해 '히틀러를 보고 만세를 부르는 대중들의 심리'가 과연 무엇인지가 핵심적인 의문으로 제기된다는 것이다. 이 주제를 붙들고 씨름한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은 에리히 프롬이다. 그는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개인적 자유를 얻게 된 서구인들이 한편으로는 자유를 반기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그 자유가 부과하는 무거운 짐―개인적 고립 등―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의존과 복종의 대상을 찾으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대중 심리가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등장하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 <맹신자들>(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궁리 펴냄).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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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를 일약 유명하게 해준 1951년에 나온 <맹신자들>(이민아 옮김, 궁리 펴냄)은 사회 현상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요인에 주목하고 그것을 규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프롬의 사회 심리학적 작업과 하나로 잇닿아 있다. 그러나 호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에 입각하고 있는 프롬의 시도와는 달리 사회심리학적인 분석 쪽에 더 강하게 방점을 찍고 있다.

나아가 그는 단지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 운동만이 아니라 대중운동 전반에 작용하는 사회 심리적 요인들의 역할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즉, 종교 운동이 되었건 사회 혁명이 되었건 민족 운동이 되었건 모든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특성과 법칙을 규명하려 했던 것이다.

대중의 '단결된 행동과 자기희생'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대중운동은 변화를 향한 대중적 갈망에 기초해 발생·발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주의 전통에서는 대중운동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를 '이상이나 강령'으로 본다. 즉,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대중적 욕구 혹은 갈망에 부합되는 적절한 이상이나 강령이 대중운동을 유발하고 이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호퍼는 "대중운동은 이상이나 강령과 무관"하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합리주의적 견해에 반대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뛰어드는 것은 이상이나 강령에 공감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심리 상태가 대중운동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호퍼는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가난한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사회 개혁이나 변화를 절실히 원할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보수적이어서 대중운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일으키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 그래서 "주위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처한 상태가 아무리 비참할지라도 변화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삶의 환경을 제어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익숙한 것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근거해 호퍼는 "빈민층의 보수성은 특권층의 보수성만큼이나 뿌리 깊으며, 전자는 후자만큼이나 사회질서를 영속하는 데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이상이나 강령에 환호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회 개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난한 사람도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대중운동에 과감히 뛰어들고 그것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 자신과 현실을 혐오"하는 동시에 그것이 종교이건 마르크스주의이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과장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중운동을 절실히 원하며 그것을 낳고 키우는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호퍼에 의하면 부흥기 혹은 역동기의 대중운동에서는 항상 맹신자―숭고한 대의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광신적 신념자―가 위세를 떨치게 된다. 맹신자란 한 마디로 좌절한 사람을 말한다. 자기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이 실패했다거나 망가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허무감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되는데, 바로 이 욕구가 결속력 높은 집단에 소속되려는 '단결' 성향과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자기희생' 성향으로 표출된다.

이것은 사실상 "자기 문제는 회피하면서 이웃의 어깨에 매달리든 목을 조르려고 덤벼들든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좌절한 사람들에게 대중운동은 자기의 삶을 통째로 대체하는 무언가, 혹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도피처가 된다. 그러므로 맹신자란 결국 자기로부터 도피하는 그리고 현실(혹은 현재)로부터 도피하는, 도피자인 셈이다. 맹신자가 가지고 있는 병적인 심리 중에서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① 변절 심리 : 맹신자는 어떤 이상이나 강령을 지지해서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혐오스런 자기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대중운동에 참여한다. 이것은 결국 맹신자가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집착하는 개인이기주의자임을 의미한다. 이렇듯 맹신자는 개인이기주의자인데다가 이상과 강령에 대한 충성심이 없으므로, 적당한 기회만 오면 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말을 갈아타듯이 다른 대중운동으로 쉽게 갈아탄다.

② 극단주의 : 맹신자는 열등감, 무력감, 자기혐오 따위에 물들어 있어서 광적, 극단적 경향을 드러낸다. 그는 초혁명적인 언사를 남발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며, 적정 수위를 넘어서는 과격 행동이나 폭력 행동을 일삼는다.

과대망상 : "자기경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부정하고 터무니없는 죄악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병적인 동기나 감정은 맹신자의 이성적 사고 능력을 크게 손상시킨다. 그 결과 맹신자는 자신이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광적인 신념이나 전능하다는 느낌으로 무장하게 되고, 그것을 고수하기 위해 외부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맹신자의 심리에 관한 호퍼의 이론은 시대를 초월하여 각종 대중운동에 끼어들어 말썽을 부리는 병적인 사람들이나 극단적인 테러리스트, 자살 폭탄,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추종하는 광적인 팬, 종교적 광신도 등의 심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광신은 어떤 대상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면서 오직 그것에만 자신의 모든 심리적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심리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어떤 대상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현상에는 호퍼가 말하는 자기혐오 심리가 반드시 전제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기를 혐오하지 않는 사람, 즉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주체성, 합리성, 개방성 등을 상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직 스스로를 혐오하는 사람만이 자기를 잊기 위해, 자기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어떤 대상에 광적으로 매달릴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광적으로 매달리는 대상을 상실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 대상이 곧 자기-자기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그 대상으로 대치-이므로 대상을 상실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어떤 신념이든, 정당이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이든 간에 광신자는 본질적으로 자기혐오자라고 할 수 있다.

호퍼에 따르면 대중운동이 가지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그것이 반드시 맹신자를 필요로 하고 맹신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맹신자의 병적인 심리야말로 대중운동의 여러 결함들을 파생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정신 건강을 기준으로 볼 때, '맹신자'는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심각하게 마음이 병든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맹신자들이 대중운동의 주인공이니, 대중운동은 당연히 나쁜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대중운동, 특히 역동기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그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대중운동에 관한 호퍼의 이론에는 간과할 수 없는 한계들이 있다.

첫째, 대중운동에서 차지하는 맹신자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대중운동 중에는 건전한 대중운동도 있고 광적인(혹은 병적인) 대중운동도 있다. 호퍼는 양자 모두에 맹신자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이 두 가지 대중운동은 본질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맹신자들은 건전한 대중운동에도 이러저러하게 끼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건전한 대중운동의 경우 맹신자들이 그 운동에서 항상 주역을 맡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전개된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만 하더라도, 그 운동의 역동기를 이끈 주역이었던 선구적인 학생들은 맹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고 느끼기는 힘든, 소위 앞날이 창창하게 보장된 명문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 당시 학생 운동가의 고민은 불의한 현실을 외면하고 얌전하게 대학을 졸업해 출세를 하느냐 아니면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교수대나 고문실로 가게 될지도 모르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느냐에 집중되었다.

이 외에도 김구나 안중근처럼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 운동에 투신했던 애국자들 역시 자기를 혐오하는 맹신자가 아니었다. 이렇게 올바른 목표를 지향하는 건전한 대중운동은 맹신자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능히 개척되고 성장해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비록 건강하고 성숙한 지도자나 선구자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으나, 대중운동의 역동기를 이끄는 주역이 주로 맹신자라는 호퍼의 주장은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둘째, 대중운동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위로부터의 대중운동과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은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위로부터의 대중운동이란 히틀러의 나치즘 운동처럼 해당 사회의 지배 세력이 엄호하고 지원해주는 관제적인 성격을 가지는 대중운동을 말한다. 히틀러가 승승장구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 독점 자본가를 포함하는 독일의 지배 계급이 그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이다. 즉, 히틀러는 기존 권력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기는커녕 그 지원과 엄호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대중운동이 전개되는 이러한 특이한 조건은 맹신자를 비롯한 정신적으로 하자가 있는 인물들이 대중운동에 뛰어들거나 그것을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또한 그것은 관제적인 대중운동 혹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대중운동에 맹신자가 유독 많이 꼬여드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반면에 맨주먹으로 기존의 권력에 저항해야 하는 사회 혁명이나 민족 해방 운동 같은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은 해당 사회의 지배 세력이 가하는 어마어마한 방해와 탄압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은 민중의 이익과 요구를 올바로 대변하는 이상과 강령이 있어야 하며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정책, 뛰어난 전략 전술이 있어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대체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은 호퍼 역시 인정하고 있다.

이상과 강령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서 변절에 능하며, 극단주의적이고 과대망상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 맹신자는 기존 권력에 항거하고 나아가 그것을 전복하는 일을 성과적으로 해낼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은 맹신자가 주도하기 어려우며,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그런 대중운동은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대중운동에 관한 호퍼의 주장은 위로부터의 대중운동에서나 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개인과 집단을 대립적인 관계로만 이해하고 있다. 호퍼는 그것이 어떤 대중운동이건 간에 대중운동은 모두 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고 말했다.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내걸고 일어난 대중운동이라도 굴러가기 시작하면 개인의 자유는 실현하지 못한다."

그의 말처럼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대중운동은 개인의 자유나 개성을 박탈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침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과 집단이 항상 적대적일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주로 지배 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데올로기인 전체주의가 실제로는 소수 독점 자본가 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어서라는 데 그 주요한 원인이 있다.

어떤 집단이 그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자유와 이익을 침해하는가 아니면 실현해주는가 하는 것은 그 집단이 다수 구성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다수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나 집단은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본가와의 관계에서 약자일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각개로 자본가와 임금 협상을 하게 되면, 임금을 올리기가 힘들 것이므로 그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나 이익을 실현할 수 없게 한다. 반면에 노동자들이 노동 운동을 통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체로 자본가와 임금 협상을 하게 되면, 임금을 올릴 개연성이 더 높아진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이익을 올바로 대변하는 대중운동은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건전한 대중운동과 개인, 건전한 집단과 개인 간의 관계를 자각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대중운동이나 집단에 충성을 바치고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나라, 민족, 계급과 같은 집단이 없이는 나를 비롯한 동포 형제들의 자유와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자각이야말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호퍼가 말하는 것과는 달리 자기희생은 충분히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닐 수 있으며, 맹신자의 심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과 집단을 대립적 관계로만 보는 호퍼는 개인의 육체적 생명이 최고의 가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개인의 육체적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치부하는, 좀 심하게 말하면 개인적 생존에만 연연하게 만드는 개인주의는 사람들을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짓밟는 불의에 저항할 수 없는 나약하고 겁 많은 존재로 만듦으로써, 모든 개인들의 자유과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중운동이나 집단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저어하는 개인주의는 얼핏 보면 개인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실제적으로는 개인들의 자유와 행복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파쇼적인, 광신적인, 전체주의적인 대중운동 따위는 마땅히 배격해야 하지만, 다수 대중의 자유와 이익을 대변하는 건전한 대중운동이나 집단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개인적인 자유와 행복을 지키고 확대해나갈 수 있다.

넷째, 반동 형성이라는 심리 기제를 남용하고 있다. 반동 형성은 프로이트 이론에서 말하는 방어 기제 중의 하나인데, 그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그것을 포장하거나 보상하기 위해서 착한 행동을 하는 현상 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반동 형성이라는 심리 기제를 신중하게 적용하지 않고 과도하게 일반화하면 세상만사를 비뚤어진 시각으로 볼 위험이 커진다. 즉,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다 악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라고 보는 식으로 흑백을 가려보지 못하고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를 큰 소리로 부르짖는 사람일수록 자유로운 사회에서 가장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평범한 일상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위장하는 장치다"라는 말들이 보여주듯, 호퍼는 반동 형성이라는 심리 기제에 입각한 설명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건전한 대중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자기를 혐오하는 맹신자일 거라는 잘못된 추측은 이러한 시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도 자유를 큰 소리로 부르짖을 수 있고 일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도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수 있듯이, 대중운동에는 맹신자 외에도 자기 삶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호퍼가 대중운동 백해무익론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는 대중운동이 "정체된 사회를 각성시키고 혁신하는 요인이 되곤" 하기 때문에 "사회 집단에 성숙한 대중운동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호퍼는 유익한 대중운동의 예로 "종교 개혁, 청교도 혁명, 프랑스와 미국 혁명, 지난 100년간의 다양한 민족 운동"을 들기도 했다.

(아래로부터의) 건전한 대중운동은 사회 발전의 강력한 수단이다. 대중운동이 주는 선물인 열정은 "생기 없고 타성에 빠진 사람들을 투사건설가로 변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건전한 대중운동이 벌어지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더 빨리 발전한다.

이 책이 광신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행간에서 충분히 답을 구할 수는 있다. 그중 하나는 개인과 사회의 변혁을 균형감 있게 동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대중운동의 참가자나 선구자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세상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며, 세상만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까지 메스를 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무지하거나 그것을 회피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맹신자가 되어 자기 자신과 세상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공동체는 사회 개혁 활동과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삶을 보듬어주는 활동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사회 개혁을 위한 정치 투쟁에 치우쳐서 구성원들의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그런 공동체는 다수 대중을 끌어안을 수 없다. 반면에 마음 수련에만 몰두하면서 사회 개혁을 외면하면 그런 공동체는 외부 세계에 대한 폐쇄성과 배타성이 심화되어 현실도피자, 비겁자, 광신자의 소굴로 전락할 수 있다.

독일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에릭 호퍼(1902년 7월 25일~1983년 5월 21일)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집안은 가난했고 어려서는 어머니를, 18세에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설상가상으로 7세 때(글자를 익힌 뒤였음) 시력을 잃어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다행히 15세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하게 되자 호퍼는 부두 노동자, 행상, 웨이터, 금 시굴자 등을 전전하면서도 많은 책들을 읽었고 부지런히 집필 활동을 했다. 이론적 타당성은 차치하고라도 호퍼의 글은 무엇보다 난해하거나 사변적이지 않아 읽기가 쉽고 표현이 명쾌하다. 또한 거기에는 사람의 내면이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데, 이것들은 독학의 영향 그리고 밑바닥 사람들과 부대낀 인생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비록 하류층에서 생활하면서 일반 대중을 많이 접했던 노동자 계급 출신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기는 하지만, 민중, 대중에 대한 호퍼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히틀러의 나치즘에 독일인들이 열광한 이유를 해명하려고 했던 에리히 프롬이나 에릭 호퍼는 모두 독일계 미국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동포인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용인함으로써 인류에게 끼친 죗값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야 한다는 부채 의식 혹은 의무감 같은 걸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인해, 모든 대중운동에 공통되는 특징이나 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호퍼의 무의식에는 히틀러에 열광하는 독일인들의 영상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민중, 대중에 대한 그의 시각을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인 것 같다.

호퍼는 또한 1982년에 미국 시민의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천성적으로 미국인이어서 미국적 가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을 가장 훌륭한 나라로, 전형적인 미국적 가치인 개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훌륭한 이념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맹신자들>은 대중운동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한계를 지니고는 있으나, 대중운동 연구사에서 나름대로 큰 획을 긋고 있는 중요한 저작이다. 나아가 인간 심리, 집단 행동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는 사회 철학서다.

특히 증오(정당한 증오가 아닌 자기 경멸에서 비롯되는 증오가 훨씬 더 광적이고 잔인하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증오는 반드시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다), 지식인(지식인은 대중운동이 일어나기 위한 기반을 닦는 선구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식인은 명예욕이 심해 권력과 변절에 취약하며 광신자가 될 가능성도 제일 크다), 이상 사회(이상 사회는 단일 인구 집단으로 구성된 소국에서 더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추측) 등에 관한 호퍼의 주장들은 매우 흥미로우며, 시사해주는 바가 많으므로 앞으로 더욱 진전된 연구가 나왔으면 한다.

<맹신자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읽어내는 것은 대중운동과 인간 행동을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걸음을 떼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프레시안(손문상)


/김태형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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