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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혼불' 상여 소리

지구빵집 2021. 1. 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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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혼불' 상여 소리

 

상여 네 기둥에 청·홍 갑사 등롱을 달아 저승의 밤길에 불을 비추라 하고, 둥그런 상여 지붕 정수리에는 꽃봉오리를 단 위에, 앙장이 천정(天井)처럼 펼쳐 드리워져 있다.

 

망인을 생시에 대하듯 정성을 다하여 꾸미고 치장한, 그 무엇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않은 상여는 운각(雲刻)의 구름을 타고 덩실하니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여를 운궁(雲宮)이라 하는가.

 

그러나, 돌아올 길 다시 없는 이 걸음에 이만한 호사가 무슨 위로가 되리오. 오히려, 어서 가라, 어서 가라, 재촉하는 것이 아니랴.

 

땡그라앙 땡그랑 땡그라아앙

 

어어허어노 어어허어노

못 가아겄네 못 가아겄네

차마 서러워 내 못 가겄네에

 

오늘 해도 다 져간디

어서 빨리 가야겄군

어어노 어허노오

어러리 넘차 너와넘

 

돌아가신 망인은 서럼다고 허는디

뜻도 모르는 명정 공포는 

우줄 우줄 춤을 추네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어 어하노오

 

땡그라앙 땡그랑 땡그라아앙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어 어하노오 

어이가리 넘차 너와너엄

 

가네 가네 나는 가네 멀고 먼 길 황천 길로

일락 서산 해 저문다 어서 가자 채촉하네

 

엊저녁에는 우리집서 잤드니

오늘 저녁으은 어디서 자고 갈꼬

 

산토로 집을 짓고 송죽으로 울을 삼아

두견이 접동새로 벗을 삼네

 

어쩔끄나 어쩌를 헐끄나

이 노릇을 어쩔끄나

참으로 갔네 그려 보고 싶어 어찌 살꼬오

 

놀다 가세 놀다를 가세 이 해 지지드락만 놀다를 가세

갈 거(去)짜야 설위를 마라 보낼 송(送)짜 나도 있네

오늘 해도 다 되얐는디 골골마닥 연기나네

 

하적이야 하적이야 오늘날로 하적이로세

가자 가자 어서 가자 황천길로 어서 가자

인제 가면 언제나 올끄나 오실 날도 창망(蒼茫)없네

황천이 멀고 멀다드니 앞 냇물이 황천이로구나

북망산이 머다드니 비개 밑이 북망이로세

 

잠이 와야 꿈을 꾸고서 꿈을 꾸어야 임을 보재

꿈에 와서 보인 님은 신(信)이 없다고 일렀건만

아예 무정하고 야속헌 사람아 어디를 가고서 못 오신가

둘이 비자고 만든 비개를 나 혼자 비는 이 신세야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영장지지(永塟之地)로 어서 가세

못 가겄네 못 가겄네 눈물 지워서 못 가겄네에

내 집 두고 못 가겄네 친구 두고는 못 가겄네

 

명사 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에 춘삼월 봄날이 돌아오면

그 꽃은 다시 환생을 하고

해도 졌다 다시 뜨고 달도 졌다 다시 뜨는디

 

우리네 인생은 한 번을 가며언

다시는 못 오네 환생을 못 허네에

내가 살전 이 땅을 밝기를 몇 십 년이나 밟었던 길

발자죽이 남었을 것이니 날 생각고 밟어도라아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오 어하아노오

 

땡그라앙 땡그랑 땡그라앙

가네 가네 어데로 갈까

이 땅을 벗어지면은 어데로 갈까

 

하적이로고나 하적이로고나 오늘날로 하적이로구나

어이를 갈거나 어이를 갈거나 심산 험로를 어이를 갈거나

날짐생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북망 산천을 어이 갈꼬

 

춘초는 연년록인디 왕손은 귀불귀네 그려

어와 세상사가 허망허다

젊어 청춘 소년들아 백발 보고서 웃지 마라

우리 같은 젊은 사람도 늙을 때가 있드란다

비단같이 곱던 얼굴 고목으로 변해 간다네

 

어어이노오 어어허와너

어너리 너어화 어어화너어


나는 가네 나는 가네

구사당에 하적하고 영결 종천에 나는 가네

먹더언 밥을 개(蓋) 덮어 놓고오

들던 수저가 상녹이 나겄네 그려

날 간다고 설워 마라 죽어서 가는 나도 있다

공수래 공수거 허니 초로 인생이로고나 그려

 

무정허다 무정허요 못 가시리오 못 가시리요

산 첩첩 적막한 곳에 혼자 누워 계시게 되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魂)은 어디로 행하실까

 

나는 가네 나는 가네

명정 공포 운아삽이 어서 가자고 재촉을 허니

동네 어르신 우리 일가 친척이든지 우리 자녀들 남은 친구들

날 간다고 설워어 말어라아

 

가도 가도 내 못 가는 길

길이 달러서 나는 영원히 가네에

이승의 애기로 탄생하여 또 다시 찾어를 오실라요오

 

땡그라아 땡그랑 땡그라아앙

어어노 어허노오

어어노어 어하노오

어이가리 넘차 너와너엄

 

- 최명희 '혼불' pp.204-208

-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일어나기 전과 같을 수는 없어.

 

상여가 묘지로 향할 때 맨 앞에 명정(銘旌)이 서고 다음에 공포(功布), 그리고 요여와 상여순으로 행렬이 이루어지는데, 최근에는 민간에서 요여 속에 혼백 또는 영정이나 사진을 모시고, 그밖에 죽은 사람의 옷과 담뱃대·신발 등을 넣어가기도 하며, 묘역이 끝나면 혼백 또는 사진을 모시고 온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요여(腰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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