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주역계사 강의 남회근 저

지구빵집 2021. 5. 2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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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을 닦는 일. 남회근, 주역계사 강의 

 

계사전(繫辭傳)은 공자가 역경(易經)을 연구하여 얻은 바를 소개한 보고서로, 역을 배우기 위한 입문서이자 지침서이다. 열두 편의 계사전 문장은 평이하고 이해하기 쉬우나 뜻이 깊어 이미 그 자체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중국인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남회근 선생은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쓰듯 계사전을 자유자재로 엮어 독자들에게 공자의 사상을 쉽게 전달한다.

 

정진배(연대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계사전(繫辭傳)은 주역(周易) 십익(十翼) 중 하나로, 주역 사상의 난해한 내용을 체계적이고 철학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계사’는 글자 그대로 ‘말을 매단다’는 뜻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주역의 괘사와 효사를 총괄하여 해설한 글이다. 계사전의 저자와 관련해서는 여러 이설이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공자가 십익을 지었다고 하나, 송 대(宋代) 이후 학자들 간에 그 진위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중에는 계사전이 전국 말에서 한 초에 걸쳐 여러 학인들의 손을 거쳐 쓰인 것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원저자와 관련된 고증적인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계사전이 담고 있는 사상의 폭과 깊이를 살펴보건대, 이 글은 (지은이가 누구든) 방대한 학식과 통찰력을 두루 갖춘 성현이 집필한 문장임이 분명하다.

 

중국의 경학 전통에서 전(傳)은 경전에 대한 주석(commentary)에 해당한다. 그러나 계사전의 경우 고대 중국 사회에서 일종의 점서(占書)적 기능을 수행해 온 주역이 의리(義理)적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렇게 보자면 계사전은 주역의 난해하고 심원한 세계로 학인들을 이끌어줄 철학적이며 총론적인 성격의 글이 되는 셈이다. 계사전은 구성상 계사상전과 계사하전으로 나뉘는데,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체용(體用)적 사유에 의거한 것이다. 즉 계사상전(체)이 형이상적이고 본체론적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면, 계사하전(용)은 형이하적이며 인사적인 내용을 많이 포괄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원칙적 차원에서의 구분이며, 모든 장의 서술 내용이 전술한 기준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계사전에서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글의 서술 방식이 저자의 특정한 사상적 관점에 입각하여 수미일관 하게 기술되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계사전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역(易)의 사상적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일견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체계를 세운다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변화의 도’를 체(體)로 삼는 주역의 근본 종지에 위배되는 일이다. 오늘날 계사전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삼가 경계할 지점이다.

 

결국 역경은 변화의 법칙이며, 우주에는 변하지 않는 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변하지 않는 사물이 없다는 것, 즉, 블변하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설파한다. 어떤 사람이든 영원히 좋거나 영원히 나쁠 수는 없습니다.

 

삶의 이치든 전체의 이치든 모두 마찬가지라는 '무왕불복, 무평불파', 사람이 차면 말이 없고, 물이 차면 흐르지 않는다'라는 이치의 회광반조, 묵묵히 이루고 말없이 믿게 하는 것이 덕행이 근본이며 이것이 계사전 상편의 결론이 마음에 남는다.

 

또한 그는 어느 친구 집에서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집 거실에는 자식을 위해 걸어 놓은 글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강한 날에는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사서를 읽는다(剛日讀經 柔日讀史)”라고 쓰여 있었다. 다들 그 글을 보고 글씨가 좋다고 했지만 강한 날이 어떤 것이고 부드러운 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양일(陽日)을 강이라 하고 음일(陰日)을 유라고 풀이하며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사회든 정치든 어떤 방면이든 거기에 대해 불만이 있을 때,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이런 때는 독서를 하십시오. 역경이나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어 보십시오.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를 읽어 보십시오. 무료하거나 침울할 때, 또는 졸릴 때는 역사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투지와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때문에 강한 날에는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사서(史書)를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강유의 이치를 말하고 있습니다.”라는 탁월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남회근 선생은 '12년 9월 29일,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시 타이후(太湖)대학교에서 서거했다. 향년 95세. 그는 불교를 심(心)으로 삼고, 도교를 골격(骨)으로, 유교를 모범(表)으로 삼을 정도로 유불선(儒彿仙) 3교에 통달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8년 3월 18일, 저장(浙江)성 러칭류(樂淸柳)시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제자백가(諸子百家)를 공부해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한학의 대가로 평가받아왔다. 본 서는 주역을 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쉽게 썼다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하여 이해 못한 부분이 많다. 다시 한번 기회가 된다면 읽어야 할 책이다 

 

ㅇ 폭포는 불규칙적이어야 아름답습니다. 자연은 불규칙한 속에서도 대단히 엄격한 규칙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이것이 바로 '動靜有常동정유상'의 이치입니다.

 

ㅇ 즉, 세상에서 제일 깊은 학문이 제일 평범하며, 제일 평범해야만 비로소 제일 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ㅇ '列貴賤者存乎位열귀천자존호위'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할까요? 어떤 것을 운이 좋다고 하고 어떤 것을 운이 나쁜다고 할까요? 핵심은 바로 '위(位)'자에 있습니다. 정당한 위치에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ㅇ 산봉우리의 모양을 일반적으로 용(龍)이라 하는데, 풍수란 용맥을 보는 것입니다. 용이란 형용하는 말로서, 진짜 용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산봉우리의 모양은 오행과 서로 결합됩니다

 

ㅇ 한곳에 오래 머물면 그곳에 대한 감정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미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ㅇ 역은 무엇을 본체로 삼을까요? 역은 용(用)을 체(體)로 삼습니다. 따라서 본체는 용 속에 있습니다. 용이 없으면 체가 없습니다. 단지 용 속에서 체의 작용을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이 때문에 신은 존재하는 곳도 존재하지 않는 곳도 없으며, 역은 고정된 본체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ㅇ 진정으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린다. 이렇게 되어야만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부는 자기에게 갖춰져 있는 법을 스스로는 알지 못하며, 성인 역시 자기가 갖추고 있는 도에 절대 집착하지 않는다. 성인이 자신의 득도에 집착한다면 그는 곧 범부일 뿐이다. 그리고 보통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를 명백히 이해하기만 한다면 곧 성인이 될 수 있다

 

ㅇ '좋은 꿈에서는 쉽게 깨어난다'라는 것은 역사의 정칙입니다

 

ㅇ 장자에 '交臂非故교비비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교비',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두 손을 모아 읍을 하는 그 짧은 순간에 '비고', 이미 두 사람은 이전의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 천지간의 사람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ㅇ '역경'에서는, '가면 돌아오고 평지가 있으면 언덕이 있다[无往不復무왕불복, 无平不陂무평불파]'라고 합니다. 지구는 둥글기에 가 버려도 반드시 되돌아옵니다. '무평불파', 평지도 영원히 평지 그대로일 수는 없습니다. 조금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생의 이치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ㅇ 말을 바꾸면 미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知以藏往지이장왕'입니다. 마음속과 머릿속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만 비로소 최고의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최후에는 백지장처럼 말끔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곧 성인의 경지입니다

 

ㅇ 어떤 물체를 무리하게 직접 미는 데 백 근의 힘이 필요하다면, 방법을 바꿔 힘에 따라 자연스럽게 밀면 한 손가락으로도 밀 수 있습니다. 한 손으로 천 근의 무게를 들 수 있다고 하는 이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가운데 오묘한 이치가 있습니다

 

ㅇ 역경의 정치 철학은, 첫째로 재정을 관리하여 충실한 경제적 토대를 갖추고, 둘째로 최고의 정신문명을 갖추고, 셋째로 백성이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이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ㅇ 위험은 언제 어디서라도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위험이 무엇입니까? '安基位者也안기위자야'입니다. 자신의 오늘의 위치, 오늘의 성취에 스스로 만족하여 자기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위험은 위험하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참고 자료

독후감 - 주역계사 강의

 

 

다시 읽어보는 주역계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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