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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 성 밖 사람 어떻게 할 것인가? -

지구빵집 2012. 12. 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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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 성 밖 사람 어떻게 할 것인가? -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소장)


1987년 이후 6번째 맞는 대선 다음날 아침이다. 이 날은 항상  ‘질수도 없고, 져서도 안되는 싸움’에서 충격적 패배를 당한 수백만 명의 가슴이 뻥 뚫리고, 역사적 승리를 맛본 수백만 명의 가슴은 기대와 환호로 부푼다. 승리한 쪽은 불가역적인 변화가 시작됐다고 믿는다.  적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1~2년 지나면 대통령을 안찍은 쪽이 ‘거 봐라’ 하면서 기세등등해지고, 찍은 쪽은 침묵한다. 3~4년 지나면 ‘찍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부지기수가 된다. 나도 20대에는 두 번(1987년, 1992년)에 걸쳐 패배의 충격을 맛봤고, 30대에는 두 번(1997년, 2002년)에 걸쳐 승리의  감격을 맛봤다. 무엇에 잘 홀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못 미쳐서인지, 대선에 역사적 의미를 잔뜩 우겨 넣어서 인지 승리를 맛봤을 때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패배를 맛봤을 때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비탄에 잠겼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군부독재, 공안통치가 부활하고, 수구냉전, 기회주의 세력이 기승을 부려, 툭하면 잡혀가고, 얻어맞고, 도망다니고, 쫓겨나는 세월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대한민국도 내 인생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글 출처 : 참여네트워크 http://www.chamyeo.net/bbs/board_view.php?num=1024

그림출처 :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그림출처 : 반짝반짝 연애통신(www.yonae.com )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날(2월25일) 위장취업 혐의로 구속되어 성동구치소에서 초여름까지 있었는데, 무쇠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스물 다섯의 시퍼런 청춘이었지만 그런 암울한 생각에 눌려 지내다 보니 각종 병마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로 미루어 대선 투쟁 노선을 주도적으로 입안하고 실행한 선배들은 책임만큼 충격이 커서 나 보다 훨씬 심각한 병마가 찾아왔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충격때문인지 병으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여럿 있었다.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가는 9부 능선에서 뒤돌아보니, 1987년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관한 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불가역적 흐름을 타고 있었다. 의석수, 득표차, 재계, 종교계, 언론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1987년 이후 최강의 대통령이 이명박이었지만, 결코 무소불위가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정 선거는 흔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아랍 국가들을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투개표 부정도, 공무원 조직 전체를 동원하는 관권선거도, 돈 봉투가 난무하는 금권선거도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미네르바 사건 등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한국 국민들은 대통령과 정부 비판에 관한 한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의 편파왜곡 보도는 좀 있지만, SNS기세에 눌려 맥을 못추고 있다. 적어도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체제는 독재 방지에는 매우 성공한 체제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양극화 해소 관점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체제는 세계화, 자유화, 중국의 부상, 지식정보화 등과 맞물려, 혁신 능력이 있는 기업이거나, 지식정보가 있거나, 단결력이나 로비력이 있거나, 권력(규제, 단속, 처벌, 재정할당권)이 있는 존재들에게 부와 기회를 과도하게 쏠리게 하였다.

경제활동인구의 20%를 넘지 않는 해외(수출) 부문과 국가(규제) 부문에 부와 기회가 집중되도록 하였다.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경제활동인구의 20%를 넘지 않는 해외(수출) 부문과 국가(규제) 부문에 부와 기회가 집중되어 있고, 점점 쏠림이 심해지고 있다. 전자의 수혜자는 재벌대기업 및 협력업체와 제조업과 울산, 거제, 포항, 창원 등 수출·대기업 도시다. 후자의 수혜자는 공무원, 교사, 공기업과 국가가 수량과 업역을 정하는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산업과 수도권 등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자와 노조는 주로 이 두 부문・지역에 올라타 있다. 국가부문은 학위・시험 사다리 외에는 진입 방법이 별로 없다. 당연히 그 아래서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한때는 한국 경제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교육이었지만, 지금은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이 되었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국가라는 성벽(보호막)을 가진 20%의 성안 사람(대출 금리 10%이하)과 시장경쟁에 완전히 노출된 80% 성밖 사람(대출금리 20%이상)으로 양분되어 있다. 노동시장에 늦게 진입한 20~30대는 주로 성밖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치는 잘 조직된 성안 사람의 이해와 요구를 주로 반영하였다. 공공부문 및 대기업의 비정규직 일부와 학위・시험 사다리의 승자를 성안에 조금 넣어주는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민주진보는 몽둥이를 들고 독재, 수구냉전 세력 혹은 신자유주의가 쳐들어 오지 않을까 눈 부라리고 있었다.  보수는 친북좌파가 쳐들어 오지 않을까 눈부라리고 있었다. 각자 엉뚱한 문을 지키면서 자신의 권리, 이익을 끊임없이 높였다. 성벽도 높이 쌓았다. 그런데 양극화, 억울함, 불안함, 고단함으로 집약되는 성 밖 사람의 눈물, 한숨, 분노는 진보와 보수가 눈부라리고 지키고 있는 문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은밀히 쓰나미처럼 몰려와서 집권 세력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 

이것이 대선 승리의 기대와 환호가 얼마 안가서 비난과 비탄으로 바뀐 이유다. 집권 세력의 죽음(폐족)과 부활의 주기가 점점 짧아진 이유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넘어 "미치겠다. 못 믿겠다. 확 엎어버리자"는 민심의 뿌리이자, 안철수 현상의 뿌리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대선판도 1987년 이후 점점 심화되어 온 이 질긴 모순부조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당연히 이를 해소할 비전과 정책이 나올 리가 있나?? 

그래서 오늘은 1987년 이후 지겹게 보아온 다람쥐 쳇바퀴의 6번째 주기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집권세력의 과도한 자신감과 오만은 이를 더 단축시킬 것이다.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역사에 남을 대통령과 정부가 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였다. 하지만 공히 말년은 좋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양극화, 일자리, 억울함, 불안함, 고단함은 정말로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집권세력의 도살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가역적인 변화가 분명하지만, 정권의 정치적 수명은 의외로 짧다고 보아야 한다.  12.19의 실망 또는 환호는 일주일이면 족하다. “성 밖 사람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화두로 부여잡고 해법을 내 놓는 세력이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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