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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억지로 안 하는 것도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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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김주대 시인의 페북에서 본 글이다. 하고 싶은 것을 발버둥 치며 해내는 것을 욕심아라 알았다. 그런 사람에게 "너무 욕심부리지 마라."라는 말을 하지 않던가? 이 글은 전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 것도 욕심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얼마나 큰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알았다.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옮긴다.

 

 

<억지로 안 하는 것도 욕심> 김주대

 

-엄마, 어제 엄마가 혼자 “내가 많다. 내가 많다.”하고 중얼거린 걸 나는 “나이가 많다. 나이가 많다.”로 잘못 들었어. 아까 창 밖 보면서 또 “내가 많다.”고 했지?

 

-그래 내가 많다. 여게 저게 다 내가 있다.

 

-아, 내가 오늘은 제대로 들었네. 내가 많다는 게 무슨 말이야? 여기저기 다 있다는 건 또 무슨 말이지?

 

-너 아버지 초상화를 왜 치운동 아나?

 

-맞아, 맞아, 문갑 위에 항상 아버지 초상화가 있었는데 언젠가 보니까 없어졌더라고. 왜 치웠어?

 

-가마이 너 아버지 얼굴을 쳐다보만 너 아버지 눈이 내 눈으로 보이. 내가 날 쳐다보는 기 싫어서 치왔다.

 

-잉? 왜 아버지 눈이 엄마 눈으로 보였을까? 무슨 말인지 어렵네.

 

-내 맘으로 보이 그렇지. 너 아버지 초상화 물휴지로 맨날 닦을 때도 맨날 내 욕심으로 닦았다. 너 아버지 죽었으이 천국 가라고 빌어조야 될 낀데 그건 안 빌고, 맨날 우리들 잘 되게 해달라고만 빌었다. 그기 다 내 맘이지, 너 아버지 맘은 아이잖나. 그러이 너 아버지가 날 쳐다보는 기 아이고 내 욕심이 날 쳐다본 기지. 내가 날 쳐다보이 살아온 기 부끄럽더라.

 

-아이고, 그랬구나. 참 엄마는 너무 생각이 깊어. 그냥 편하게 생각해. 부끄럽긴 뭐가 부끄럽다고 그래. 자식들 키우느라고 고생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30년 사느라고 고독하게 고생했고, 부끄러울 거 하나도 없어. 이제 자꾸 걷고 의사 선생님 시키는 대로 약 잘 먹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어. 근데, 참 엄마는 신기해. 아버지 눈이 엄마 눈으로 보이니 그게 보통 맘이 아니야. 엄마, 혹시 아버지 눈에 말고도 엄마가 어디 더 있는 데가 있는가? 여기저기 다 있다고 했잖아.

 

-지금 고향에 할마이들이 마까(전부) 모이가이고 내 얘기 할 끼다. 이번엔 살아서 돌아오나 죽어서 돌아오나 그카민서 살아돌아오만 또 같이 합토(화투)치기도 하자고 그카고 내 말을 하고 있을 끼다. 할아미들 말 속에도 내가 있지. 내가 걸어댕기던 차메(청암서원이 있는 청암. 아버지와 방앗간을 했던 장소. 어머니는 아침마다 청암까지 운동삼아 걸어서 다녀오심) 발자국발자국 내가 있을 끼다. 니 그림 속에도 있고, 니 책에도 내가 있잖나. 내가 가도 그건 안 죽는다. 그것도 욕심이다.

 

-아,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엄마는 욕심이 아니고 영원불멸이야. 히히히.

 

-내가 맘 잘 쓰고 순리대로 선하기 그래 살다 가야하는데 아직도 욕심이 많다.

 

-엄마, 그런 욕심은 욕심도 아니라. 세상에 욕심쟁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 욕심 정도는 얼마든지 더 부려도 돼. 여기저기 다 있다는 그 엄마들도 다 엄마를 이해하고 좋아할 거야. 엄마가 엄마를 좋아하는 거지. 엄마가 자기 자신이 제일 훌륭하다고 했잖아. 엄마가 제일 훌륭해.

 

-넌 하고 싶은 걸 맘대로 다 하거라.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안 하는 것도 욕심이다.

 

-우와, 하고 싶은 걸 안 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진짜 완전 역설이네. 내가 맨날 반대로 거꾸로 생각하는데 엄마 닮았네.

 

-뭐든 억지로 하는 건 다 욕심잉께 억지로 안 하는 것도 욕심이지.

 

-엄마 말 잘했네. 그냥 엄마 말대로 순리대로 살자, 부끄럽다 그런 거 억지로 생각하지 마. 뭐가 부끄러워, 사람들이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엄마가 철학자래.

 

-널 좋아해야 니 책이 잘 팔리지 날 좋아하만 머하노.

 

-그것도 욕심이네. 사람들이 엄마를 좋아하면 난 덤으로 팔리니까 걱정도 하지 마.

 

-그러까?

 

-그래.

 

 

김주대 산문집 방방곡곡 사람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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