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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한국어와 영어의 욕구 표현의 방식, 다음은 동기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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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관심있는 글입니다. 언어, 말에 대한 표현과 어원들에 관심있고, 아름다운 글, 수 없이 많은 동의어, 유사어, 형용사, 동사 표현을 좋아합니다. 

 

고등과학원 박만규(아주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쓴 이 글도 역시 아름답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제 사용성을 분석하여 내린 연구는 차지하고라도 첫 네 문단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언어 자체에 관한 글입니다. "자신이 표현하는 단어가 자신의 세계다"라는 말은 단편적인 발언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는 그 부분만 옮기고 나머지는 원문 기사를 참고하세요.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 언어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손목이 부러졌어요.’를 영어에서는 ‘I’ve broken my wrist.’라고 표현한다. 즉 ‘나는 내 손목을 부러뜨렸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어 화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방식이다. 내가 일부러 부러뜨린 것이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아마 영어 원어민이라면 이렇게 답변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럼 자기가 그랬지 남이 그랬나? 이처럼 언어마다 표현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 언어에 녹아 있는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 언어마다 고유한 표현 방식이 있고 이는 사고 방식에 원인이 있다.

 

언어가 사고와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언어학, 심리학, 인류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주제였다. 이 중에서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구조화되고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하는 이론을 ‘언어 상대성linguistic relativism 가설’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지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틀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류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 1884–1939와 그의 제자 벤자민 워프Benjamin Lee Whorf, 1897–1941에 의해 주창되었기에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라고도 부르는데, 한 마디로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할 수 있는 범위가 절대적으로 한정된다는 주장으로, 궁극적으로는 언어가 없으면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언어가 인간의 인식을 결정한다고 하여 언어 결정론linguistic determinism으로도 불린다.

 

–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구조화된다. (언어 상대성 가설)

 

그런데 1950~1960년대에 이르러 행동주의Behaviorism 심리학이 대두하면서 사피어-워프의 이론은 비판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언어 보편주의 이론이 영향력이 커지면서 워프 이론에 대한 비판은 더욱 커졌다. 언어 상대주의는 언어 간의 차이가 중요하고 그 차이 때문에 사고와 세계관이 다르다고 보지만, 언어 보편주의는 언어가 표면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같기 때문에 사고와 세계관의 차이는 언어가 아니라 단지 문화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이처럼 언어결정론은 지나치게 강하고 극단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퇴조하고, 언어 상대성 가설은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되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다소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즉 다양한 언어 구조는 인식과 사고 방식에 차이를 만들어 낼 뿐, 언어적 차이가 사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러나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되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정론이다.

 

1990년대 이후,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과 심리언어학psycholinguistics이 발전하면서 언어가 사고와 인식에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식의 약한 상대성 가설에 힘이 더욱 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언어가 사고의 경향성과 인식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관점이 실험적, 학제적 연구를 통해 학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예컨대 언어심리학자 레라 보로디츠키Lera Boroditsky는 언어가 시간, 공간, 수 개념 등 인지 범주에 대해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를 해 오고 있으며, 스티븐 레빈슨Stephen C. Levinson은 언어가 공간적 사고와 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다양한 언어적·문화적 맥락에서 공간 표현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다.1 예컨대 언어에 따라서 공간을 기술하는 방식이 다른데, ‘컵이 테이블의 앞쪽에 있다’처럼 대상 간의 관계를 통해 기술할 수도 있고, ‘컵이 내 오른쪽에 있다’처럼 화자의 관점으로 기술할 수도 있지만, ‘컵이 북쪽에 있다’처럼 고정된 외적 기준을 사용하는 언어도 있다. 연구 결과, 물체의 방향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인지활동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가 사용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언어가 시간, 공간, 수 같은 인지 범주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특정한 언어가 다양한 기술 방식 가운데 특정한 표현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이, 언어마다 고유한 표현 방식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공동체, 즉 사회의 세계관이 그러한 특정한 표현법을 선호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언어와 사고의 관계는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는 상호 인과관계에 있다. 한 언어의 특정한 언어표현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그러한 공동체의 사고 구조가 그 언어에 영향을 미쳐서 언어구조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의 이 같은 상호구성mutual constitution의 원리에 따라 우리는 두 번에 걸쳐 연재되는 글에서 한국어와 영어에 나타난 욕구와 동기의 표현 방식 차이와 세계관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은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욕구와 동기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욕구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말하고,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만일 한 사회의 사고와 언어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그 언어에 나타난 욕구와 동기 표현을 알아보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말에서 욕구를 나타내는 표현법이 영어에서의 표현법과는 과연 어떠한 차이를 보일까? 이것을 알면 두 언어의 기저에 깔린 세계관과 곧바로 만나게 될 것이다. 

 

 

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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