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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4대강 할바엔 헬리콥터로 돈뿌려라"

지구빵집 2010. 9. 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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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 정책과 4대강사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은 ‘서민희망 예산’이 될 것이란다. 출범 직후 요란스럽게 내걸었던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어느 새 거둬들이고 친(親)서민으로 바꿔 달았으니 예산도 그 빛깔로 칠해야 마땅한 일일 터이다. 요즈음 정부나 대통령이 하는 말은 온통 ‘서민’이란 말로 치장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겉으로만 보면 이 정부의 서민 사랑은 정말로 유별난 것 같다. 과거의 어느 정부든 이토록 드러내 놓고 서민들에게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을까?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정치와 행정을 한다면 누가 탓하겠느냐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게 아니라 문제다. 내년에 보육, 전문계고교, 다문화가족의 서민희망 3대 핵심과제에 투입될 예산은 3조 7,209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1조원 가량 늘어난 규모라고 한다. 3백조원이 넘는 총예산에서 겨우 1조원 정도 늘어난 것을 갖고 서민희망이란 요란한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지 모르겠다. 또한 보육, 전문계고교, 다문화가족의 문제만 해결되면 서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을지도 큰 의문이다.

서민들의 삶이 눈에 띄게 향상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더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친서민 예산을 지향한다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어떤 하나의 일로 스스로의 손발을 묶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간절하게 원한다 하더라도 친서민 예산을 만들려야 만들 수 없게끔 되어 있다. 그 어떤 일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들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구태여 말하자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내년도 4대강사업 관련 예산에 얼마가 배정될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서민희망 3대 핵심과제에 투입될 예산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일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정부에게 4대강사업은 ‘신성한 소’(sacred cow)와 같으며, 따라서 여기에 배정될 예산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한다. 이렇게 단 한 가지 과제에 엄청난 예산을 미리 빼돌려 놓고 나머지 돈으로 수많은 다른 일들을 수행해야 하는 구도다. 그러니 서민들을 위해 쓸 돈은 갖고 있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친서민을 부르짖고 있는 격이다.

예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잘 알겠지만, 예산의 거의 전부가 그 규모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경직성 지출의 성격을 갖는다. 행정기관을 유지하고, 공무원들 월급 주고, 국방이나 치안업무를 위해 쓰는 돈은 크게 늘리거나 줄일 여지가 없다. 예산의 총규모가 3백조원을 넘는다 해도 정부의 재량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1조원 정도 늘리고서도 큰 돈을 퍼부은 듯 그렇게 생색을 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3년 정도의 짧은 기간내에 2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어야 하는 4대강사업은 마치 진공청소기와도 같이 모든 가용예산을 그쪽으로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총예산의 규모에 비하면 22조원이 그리 큰 금액이 아닐지 몰라도, 재량으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에 비하면 이만저만 큰 금액이 아니다. 4대강사업이란 밑 빠진 시루 때문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고작 1조원 정도의 증액도 이리 쥐어짜고 저리 쥐어짜 간신히 만들어낸 작품인지 모른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재정법은 5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경우 반드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4대강사업은 그것이 재해예방사업의 성격을 갖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그 의무에서 벗어났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 홍수가 닥칠지 모르는데 미리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니야?” 이런 순진한 생각에서 정부가 4대강사업이란 무리수를 두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공짜로 홍수 대비책을 마련해 준다면 이를 마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일들에 쓰일 돈을 빼돌려야 4대강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경제학을 가르칠 때 제일 중요하게 강조하는 점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평범한 진실이다. 22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4대강사업에 쏟아 붓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한다. 이 사업에서 몇 가지 사소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들은 결코 공짜로 굴러들어오는 이득이 아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함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가치로 비용을 따지는 개념이다. 22조원이라는 돈을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쓸 수도 있었고, 사회안전망 확충에 쓸 수도 있었고, 환경을 더 깨끗하게 만드는 데 쓸 수도 있었고, 연구개발 투자에 쓸 수도 있었다. 그 22조원이라는 돈은 우리가 포기해야만 했던 이 모든 일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4대강사업의 기회비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업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기회비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선뜻 찬성할 수 있을까?

엄밀한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보면 4대강사업에 드는 비용이 공사비 22조원에 그치지 않는다. 기회비용의 개념은 눈에 보이는 비용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함께 포함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 파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기 때문에 무시하기 쉽다. 정부도 바로 이런 잘못된 판단 때문에 4대강사업의 비용을 엄청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라 해서 무시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판단방식이 아니다.

정부가 내보이는 청사진을 보면 잘 가꿔진 공원, 테니스장, 자전거길 이런 것들만 눈에 띈다. 그러나 쓸모없이 버려진 황무지나 쓰레기 밭에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해 주던, 그리고 뭇 생명에게 삶의 터전이 되었던 강변의 습지와 모래톱을 뒤집어엎고 만든 것이다. 이런 시설들을 얻기 위해 사라진 습지와 모래톱의 가치 역시 기회비용으로서 4대강사업의 비용에 추가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성격의 기회비용까지 포함시킨다면 4대강사업에 드는 비용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것이다.

지금 정부는 4대강사업으로 스스로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기 때문에 친서민 정책을 수행하려야 할 능력이 없다. 서민희망 예산이란 단지 허울뿐이고,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쓸모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일에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나는 그 22조원이란 돈이 낭비되는 것 그 자체도 걱정이지만, 더 큰 걱정은 그 아까운 돈을 국토를 파괴하는 데 쓰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좋은 일에만 써도 모자랄 판에 그런 일에 퍼부어 넣는다는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내 눈에 정부는 돈을 뿌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같이 보인다. 경기부양을 위해, 혹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기 위해 그예 돈을 뿌려야 하겠다면 다른 방법으로 뿌리면 어떨까? 프리드만(M.Friedman)이 말한 바있는 바로 그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방법 말이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면 최소한 아까운 세금이 국토를 파괴하는 데 쓰이는 불행한 결과만은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진정한 친서민 예산을 편성하고 싶으면 무엇보다 우선 4대강사업의 족쇄를 풀어버려야 한다. 4대강사업이 재량으로 배정할 수 있는 예산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한 합리적 예산 운영도 불가능하고 친서민 예산의 편성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 예산제도의 하나로 제안된 영기준예산제도(zero-based budgeting system)은 모든 일에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하는 자세로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어떤 일도 신성한 소가 될 수 없다는 뜻인데, 이런 자세로 임하지 않는다면 4대강사업은 임기 끝까지 이 정부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현 정부는 친서민 정책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책이 좋은 성과를 거두어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면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채운 4대강사업의 족쇄 때문에 실효성 있는 친서민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데 본질적 문제가 있다. 현실적으로 친서민 정책과 4대강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방법은 없다. 둘 중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후일 역사의 평가가 달라질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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