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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외동포가 바라본 타블로와 MBC스페셜의 문제 - 아고라

지구빵집 2010. 11. 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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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고라 

http://bbs4.agora.media.daum.net/gaia/do/agora/participant/read?bbsId=C001&articleId=34029&issueArticleId=73&issueBbsId=I001



어느 해외동포가 바라본 타블로와 MBC스페셜의 문제

현재 해외 대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라를 떠나 살다보니 조국의 이름이 빛나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웠고 내 나라가 참 그리웠다. 축구도, 피겨 스케이팅도, 수영도, 역도도 잘 몰랐지만, 그냥 그들을 해외 뉴스에서 볼 때마다 먼 이국 땅에서 애국가가 들려질 때마다 기뻤다.

타진요를 알게 된 건, 올 봄 한국의 월드컵 경기를 이곳에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이었다. 네이버라는 포탈은 십 여년 전 가입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아 나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 내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네이버의 ‘카페’ 란 시스템도 처음 접속해 보았고, 덕분에 네이버 메인 기사들도 다시 읽게 되었으며, ‘타블로’라는 가수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언 3개월이 지났다.

지난 3개월간 타블로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면서 타진요 회원들만큼 순수하고 열정에 찬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스텝으로 활동하는 분들, 모두 각자의 전문업에서 바쁠텐데 검사님을 위한 검찰청 가이드북 까지 정리해 놓다니… 이분들 우리나라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리고, 오늘 다시 타진요 메인에 걸린 검찰청 가이드북을 보면서 국민을 철저히 기만하고 웃고 있을 MBC의 그림이 겹쳐졌다. 가슴이 아팠다. 진정한 선진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장려는 못할 망정 국가와 언론이 무참히 짓밟다니. 우리나라는 아직 갈길이 멀구나…

요 몇 주동안 MBC가 고의적으로 시청자를 기만한데 대한 충격의 후유증으로, 서울 경찰의 성의없고 무능한 수사 결과는 보기 안쓰러웠을 뿐 남아있는 분노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학사와 석사의 영어도 구분 못하는 경찰이 주위로부터 너무 바보 취급당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 누가 알랴. 경찰 조사 자체에 불만을 품은 한 말단 경찰의 대중을 향한 무언의 메세지일 지.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지. 하지만… 학교는 다르다. 적어도 대학의 학자에게서는 통찰력과 순수함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학계에 계신 분들마저 타진요를 악플러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가 아닌 한숨이 나왔다. 나라가 부패해도 교육만 살아있으면 다시 세울 수 있지만, 교육이 죽으면 미래는 없다.

서울대, 연세대, 기타 여러대 교수님들의 제시한 유명 심리학, 사회학 이론들 잘 배웠다. 들어보니 각 이론들은 말이 된다. 다만 타진요 케이스에 대한 그 이론들의 적용은 틀렸다. 내가 자연 과학을 전공하고 있어 깊이있는 인문학, 사회학 이론에 대한 통찰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그러나 타진요 사태의 본질은 ‘악의적인 네티즌’ 이나 ‘군중심리’ 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내가 사회학이나 심리학 교수라면 이런 황금같은 기회에 나의 이름을 딴 새로운 이론theory이나 지수index 하나 만들겠다 (예: 황 theory, 금주 theory, 타블로 index 등). 이 사건은 사회심리학적으로도 그리고 윤리학적으로도 아주 독특한 사건이니,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읽고 학문적인 성과도 이끌어내는 교수님들의 통찰력을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타블로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아래 나열해 본다.


1. 타진요는 사회 기득권에 대한 열등감으로 뭉친 집단?

교수님들은 그러한 평가를 언론에 흘리기 이전에 먼저 타진요 구성원의 특징을 파악했어야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산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옳고 그른 게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볼 때 내용의 틀린 부분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오류 상관없이 스토리에 푹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자세히 보는 사람이 있고, 나무보다는 큰 산의 윤곽을 전체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인간 관계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있고, 인간관계보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되도록 적을 만들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권위에 개의치 않고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진요의 주요 구성원 중엔 어떠한 성격의 사람들이 많을까.

내가 심리학과 교수였다면, 타진요가 신흥종교집단이니 열등감의 표출이라는 등의 해석을 내리기 전에 타진요 주요 멤버들의 특성이 어떠한 지를 먼저 조사했을 것이다. 적어도 학력, 거주지, 전공 등만이라도. 나아가 심리학계엔 다양한 성격검사 도구들이 개발되어 있지 않은가. 자연과학자인 내 머리 속에서도 타블로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연구 주제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다양한 각도에서 타진요라는 집단의 특성을 파악해 보겠다는 학자적인 호기심은 왜 없었는 지…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한 사건이나 현상의 결과 분석을 위해서는 그 집단의 특성에 대한 정보가 먼저 제시되어야 하며, 연구 대상의 특성이 제시되지 않은 결과 분석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건 정말 …. 연구의 기본이다.


2. 타진요가 악의적?

“못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 쟎아요” 는 이제 하나의 유행어가 된 듯 하다. 타진요는 정말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안 믿기로 작정한 악의적인 집단인가? 여기엔 언론에 가려져 타진요 스스로 놓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타진요는 일단 타블로 언행에 대한 자료들을 ‘믿음’ 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타진요가 애초 철저한 ‘의심’ 에서 출발했었다면 수많은 자료를 대조 분석할 필요는 없었다.

타블로를 처음부터 안 믿기로 작정했었다면 타블로의 ‘2001년 스탠포드에 석사를 했다’ 는 말과 ‘ 2002년 월드컵 이전 일 년동안 한국에서 학원 강사를 했다’는 말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민들은 타블로의 말을 믿어 왔고, 믿던 언행들 중 모순들을 발견하였으며, 발견된 모순점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일 뿐이다. ‘악의’ 란 단어는 타진요에 맞지 않다. 모순되는 사실들에 대해 진실을 요구하는 것을 ‘악의’ 로 평가하는 교수님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악의’ 란 단어의 좋은 사용 예는 다음과 같다: “악의적인 MBC 스페셜 팀” (그들은 인터뷰시 타진요 스탭들을 거짓말로 속였고, 타블로에게 불리한 자료는 고의적으로 누락시켰으며, 타블로에게 유리하도록 고의적으로 자막을 조작하였다);

“악의적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타블로” (국적을 바꾸는 것이 어디 기분에 따라 헤어스타일 바꾸는 것처럼 단순한 일인가. 나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인데). 특히 심리학 교수님들은 타진요의 글과 행동에 담긴 심리를 분석할 때 ‘악의’ 가 아닌 ‘분노’ 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했다.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아무 이익이 없는데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소비해 가며 거대한 집단으로 뭉치는 일을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이 나라를 사랑하는 열정을 지닌 국민들이 이 사회의 뿌리깊은 부정부패를 안타까워하고 이에 동조하는 언론 권력의 횡포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가?


3. 학위 증명이 왜 이리 복잡한가?

애초 타진요는 타블로의 학위가 ‘없음을 증명’ 하기 모인 집단이 아니었다. 다만 학위가 있음을 보여주는 타블로의 증거들이 서로 모순됨을 발견하고 꾸준히 사실 설명을 요구해온 것 뿐이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간단하다.

잘 알려진 한 예로, 누군가 내게 ‘여기 빈 방에 바늘이 있음과 저기 빈 방에 바늘이 없음을 증명해 보시요’ 라고 한다 치자. ‘있음’ 의 증명은 방을 입구부터 훏어가다 바늘이 발견되면 바로 증명된다. 그러나 저기 빈 방에 바늘이 ‘없음’ 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방 전체를 구석구석 빼뜨리지 않고 다 찾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타블로는 바늘을 가진 자이므로 바늘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타진요의 경우 어느 누구도 타블로가 바늘이 없음을 ‘먼저’ 주장하고 나선 적은 없었다.

다만, (증명의 부담을 가진) 타블로가 보여주는 바늘들이 괴상야릇한 모습을 하였기에 그게 정말 바늘인지 의혹을 제기한 것 뿐이었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이 ‘악의적인 네티즌들’, ‘비이성적인 군중심리’, 혹은 ‘열등감’ 이라고 해석한다면 ‘흠, 통찰력이 부족하군’ 하며 가볍게 지나칠 수 있겠지만, 지성과 상식을 지녔다고 간주되는 전공 교수님들의 머리에서 그러한 평가들이 나왔다면 이는 그냥 간과해서는 사태다. 교수님들이 그런 평가를 내렸다면 일단 그 분들이 이 사건의 본질을 잘 모른다고 간주해야 할 것이고, MBC 편집에 이용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학창 시절 ‘있음’ 과 ‘없음’ 의 증명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해 보았던 교수님이라면 타블로가 수년 간 기괴한 방법으로 대처해 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진짜 바늘이 없음을 암묵적으로 증명한다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4. 타블로의 이미 증명된 거짓말과 비윤리적인 언행들

사실 타블로 사건을 통해 받았던 첫 충격은 공영 방송과 잡지 등을 통한 거짓 사진의 유포였다. 형 사진을 거리낌 없이 자기 사진이라 제공한 타블로와, 큰 아들 사진을 보며 작은 아들이라 인터뷰하는 김국애님. 이게 정상적인 상식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리고 수십 곡의 표절 음악들을 접했을 때. 미국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의 행동인가.

나아가 타블로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말했던 ‘거기 다니는 여자애’ 라 칭한 유부녀와의 연애담. 처음 그 기사를 접했을 때 과연 누가 ‘같은과 여자애’ 를 ‘거기 다니는 여자애’ 라 부르는 지도 참 의아했었지만, 타블로의 말속에 담긴 비도덕성에 비하면 그 정도는 가볍게 지나쳐 줄만 했다. 유부녀를 사귄 것이 어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방송에 대고 떠벌이는가. 동시에,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며 주님의 뜻이라는 등의 인터뷰들을 행한 타블로와 김국애 님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들은 매우 나쁜 크리스챤의 전형이거나 기독교인을 가장한 독사같은 존재인 것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가슴아파하며, 자신의 이름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회복하기 위해 MBC 스페셜 방송이라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밝혀진 거짓말과 표절에 대해 사과하고 처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 고작 내뱉은 말들: ‘못 믿는게 아니라, 안 믿는 거다. 우리 가족이 받은 상처는 회복 불가능하다, 김국애님은 기자에게 일찌기 정정보도 요청을 하였지만 기자가 정정하지 않았다’. 스페셜 방송을 통해 확실히 알았다. 타블로라는 자는 매우 나쁜 사람이다. 기독교인이라 하는 그 안에 선한 양심은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다니… ‘독사의 자식들아’ 라는 외침이 머리 안에 맴도는 건 왜일까.


5. MBC스페셜의 비윤리성

사실 나의 분노는 타블로보다는 MBC에서 기인했다. 공영 방송이 가져야 할 윤리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보자. 만약 성폭행자 김길태가 다른 단순 절도죄를 의심받고 있다면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성폭행은 언급하지 않고 절도죄의 억울함을 변호해도 되나.

변호사라면, 부모라면 할 수 있다. 아동성폭행 죄는 밉지만 아들이 다른 죄로 억울하게 의심받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발벗고 옹호할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가능하다. 그렇다면 공영 방송은? 공영방송은 그러면 안된다. 타블로는 이미 수십 곡의 표절 및 방송 중 수많은 거짓말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공영방송이라면 음원표절 및 방송 중 수많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진 자를 옹호하기 위한 방송을 하여서는 절대 안된다. 가끔 이러한 의견에 대해 학위 위조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 본질이지 음악 표절이나 다른 거짓말 등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 본질을 흐리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그들에게 물어보겠다. 공직자를 뽑을 때 청문회에서 왜 도덕성을 엄중하게 다루는가?

얼마 전 학회에 갔는데 그 대학 발표장의 모든 컴퓨터와 프로젝터 등에Samsung마크가 보였다. 뿌듯했다. Yuna에 대한 소식도 외국인 동료로부터 종종 들었다. 들을 때마다 작은 내 나라가 자랑스러웠는데, MBC스페셜의 비윤리성, 그리고 일부 대중들의 윤리에 대한 몰이해가 한국을 다시 후진국으로 끌어내렸다.

나아가 스페셜 1탄에서의 성피디를 옹호하는 장면에서 나레이션을 맡은 성우가 궁금했다. 저렇게 고운 목소리로 저렇게 유치한 나레이션을 하다니 아나운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흔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며 성피디가 자신의 신상을 공개한 타진요에 대해 보복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함무라비 법의 이면에는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지 말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즉, 한쪽 눈을 다쳤을 땐 한쪽 눈만큼만 보복해야지 양쪽 눈을 다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당시 권력의 횡포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MBC 스폐셜 피디를 보라. 한쪽 눈을 가격당한 것에 대해 언론권력을 이용 팔다리까지 부러뜨리는 것으로 보복했다. 오른쪽 빰을 맞으면 왼 쪽 빰도 돌려대라는 가르침은 무안해서 차마 꺼내지도 못하겠다. 이는 작가가 그러한 장면을 넣자고 했어도 성기연 피디가 먼저 말렸어야 했다. 내 신상이 공개된 것에 대해 화가 나긴 하지만 공영방송을 통해 나의 사적인 보복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말렸어야 했다.

성피디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타진요 스텝들에게 거짓말 한 것을 양심이 기억한다면 더더욱 말렸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성피디님의 인격에서는 향기라는 것은 전혀 맡아볼 수가 없다. 방송국의 피디가 음원 표절 사기꾼과 동행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스페셜 1탄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양심이 없는 사람들끼리 동행하는 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요즘처럼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없다. 이렇게 한국어로 글을 길게 써 본 것도 얼마나 오랫만인지 모르겠다. 요즘 비록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프고 답답하지만 한국은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고 이곳 남의 나라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기여하고 싶은 나의 조국이다. 타진요 스텝분들께 감사드린다. 현재는 답답하고 화가 치밀겠지만 여러분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손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쯤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http://bbs4.agora.media.daum.net/gaia/do/agora/participant/read?bbsId=C001&articleId=34029&issueArticleId=73&issueBbsId=I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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