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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성은 애플을 넘어설 수 없는가? - 딴지일보

지구빵집 2010. 9. 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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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3.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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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Apple이 아이팟iPod이라는 물건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로, 애플과 음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핸드폰 사업도 그렇게 됐지만, 생전 음악과 별로 관계없던 회사가 어쩌다가 갑자기 그런 지위에 올라섰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본인이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질문은 간단하다: "왜 오래 전부터 꾸준히 음악기기를 만들어 오던 삼성은 안되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애플은 되는가?"

9월 1일(현지시각) 벌어진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는 그 미스터리에 대한 힌트를 던져줬다.


 

 

 

위에 나와 있는 이번 스페셜 이벤트 초대권의 이미지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날 행사는 애플의 아이팟 라인업을 업데이트하는 자리였다. 이 날 애플은 아이팟 셔플, 아이팟 나노, 아이팟 터치의 라인업을 업데이트 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애플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관련 미디어를 뒤져보면 될 것이다. 오히려 본인이 주목한 건 새 아이팟 라인업의 혁신성보다는 애플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키노트가 후에 등장하여 멋진 공연을 펼친 콜드플레이Coldplay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이었다.


기업의 제품 발표회장은 아티스트로서 공연을 하고 싶은 곳이 절대로 아니다. 관객들은 대체로 기업 제품 발표회에 참석한 관계자들뿐이며, 사운드공연장에 미치치 못하고, 공연의 분위기를 북돋을 만한 조명이나 스크린지원도 없으며, 시간대도 공연을 보기에는 애매한 오전 시간인데다가, 풀밴드 공연이 아닌 간단한 어쿠스틱 공연 밖에 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 콜드플레이는 지금 5집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투어나 외부활동을 거의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 마틴은 스티브 잡스를 친구처럼 대하고, 특유의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며 (실수는 몇 번 했지만) 멋진 공연을 해냈다. 그는 첫 곡으로 콜드플레이의 최초의 히트곡인 "Yellow"를 불렀고, 그 다음으로는 콜드플레이 최대의 히트곡인 "Viva La Vida"를 불렀다. 특히, "Viva La Vida"를 소개하면서 크리스는 이렇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곡이 히트싱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애플이 이 곡을 최고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줬죠. 역시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팔 수 있군요." "Viva La Vida"는 그 자체로 이미 환상적인 곡이기에 이 발언은 크리스 마틴이 과한 겸손을 떤 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기도 하다. 실제로 "Viva La Vida"가 미국차트는 물론 전세계를 정복한 슈퍼울트라 히트곡이 될 수 있었던데에는 애플 광고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Viva La Vida"가 들어간 애플의 iTunes 광고]


 

이 뿐만이 아니다. 크리스 마틴은 마지막 곡으로 이전에 한 번도 공연하지 않은 신곡 "Wedding Bells"를 불렀다. 크리스는 이 곡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이 곡은 앞으로도 발매되지 않을지 몰라요. 유일무이한 공연이 될 수도 있겠네요." 모름지기 아티스트에게 아직 발매되지 않은 곡을 부른다는 건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자기 자식과도 같은 창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선보일 때, 어느 누가 최상의 상태로 들려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떤 아티스트들은 공연장에서도 아직 발매되지 않은 곡을 연주하길 꺼린다. 그런데, 크리스 마틴은 기업 제품 발표회장에 나타나서는 떡하니 신곡을 연주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꽤나 멋진 곡을 말이다.


 


 

[Coldplay - Wedding Bells: "I always loved you and I always will"]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니컬하게 보자면, 애플과 콜드플레이의 '윈-윈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애플은 자신들의 파워를 과시하고, 콜드플레이는 수십만명의 이목이 집중된 곳에서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음악을 홍보한 것일 수 있다. 애플은 컨퍼런스를 광고할 꺼리를 하나 더 만들고, 콜드플레이는 다음에 애플로부터 광고음악 하나 더 따내는 기회를 만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시니컬한 시각이다. 이건 단순히 '자본의 힘' 혹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삼성(혹은 다른 어떤 기업이라도)이 새 MP3 플레이어를 발표하는데 크리스 마틴을 데려올 수 있을까? 대답은, '노'다. 이건 단순히 개런티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콜드플레이급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공연장이 아닌, 기업 제품 발표회장에서 연주를 하는 건 바로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백억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 마틴이 돈이 그렇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나훈아가 모 그룹 회장 생일잔치에서 노래를 하는 조건으로 거액을 제시 받았음에도 거절한 건 그가 자본에 반대하는 투철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훈아가 자존심을 가진 '아티스트'라는 걸 말해주는 거다.


그러나 정작 이 공연의 포인트는 크리스 마틴이 "Wedding Bells"를 부를 때가 아니라, 바로 그 직전, 그러니까 그가 "Viva La Vida"를 연주한 후 일어난 사건에 있다. "Viva La Vida"가 끝난 후 한참동안 박수를 받은 크리스 마틴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공연이 끝난 것 같은데, 끝내야하는지 확신이 안서네요. 스티브가 어떻게 해야할지 지시를 내려주면 좋겠는데..." 그 때 무대 옆으로 비켜있던 스티브는 화면 밖에서 큰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Keep going!(계속 해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크리스 마틴은 신곡을 연주한다.


좀 더 힌트를 얻기 위해, 조금만 더 앞으로 돌아가보자. 스티브 잡스는 크리스 마틴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처음에 아이팟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그 때보다 조금 더 성공적인 위치에 서 있지만, 그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음악제품관련 이벤트를 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상기시킵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공연을 해달고 요청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입니다."


 



[크리스 마틴을 소개하는 스티브 잡스]


 

물론, 수완 좋은 사업가의 입에 발린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의 제품 발표회장에 흔쾌히 나와서 공연을 하는 크리스 마틴과, 그의 공연을 즐기며 공연을 계속 해달라고 소리지르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보면, 그의 발언은 적어도 100% 구라는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놀라운 혁신에 동기를 부여하는 건, 그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애정이라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 삼성은 애플을 넘어설 수 없는가?"


다소 어려워 보이는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어려운 미스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번 애플의 스페셜 이벤트는 "노력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식상한 진리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뭐, 아니면 음악을 단순히 생일잔치의 흥을 돋우는 딴따라로 여기는 사람이 회장으로 앉아있는지, 아니면 아티스트를 존중할 줄 알고 음악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회장으로 앉아있는지의 차이일지도 모르고.

 




[크리스 마틴의 전 공연 영상 - 크리스 마틴이 망설이는 장면은 10분경에 나온다]
음악전문웹진<스캐터브레인>주인장 로그스 (http://www.scatterbr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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