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시즌 오픈 마라톤 하프 21.0975km 꽁꽁 언 한강변을 달리다.
2018년 1월 16일. 영하 5도. 건조한 공기. 바람 고요함. 구름 많고 흐린 날씨. 점점 햇살이 뭉텅뭉텅 내려오는 하늘.
시즌 오픈 마라톤 대회가 잠실 청소년광장에서 열린다. 아내가 당직이라 아침 일찍 식사 준비하고 물론 뛰기 전에는 먹지 않으니 굶고,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태워다 준다. 가는 길이 아침 8시가 약간 넘었는데 길은 복잡하다. 다시 차를 돌려 잠실 종합 운동장까지 간다. 날씨가 영하 5도를 가리킨다. 9시에 집결하여 10시에 출발한다. 도착하니 한산하다. 사람이 많지 않다. 모든 물품을 현장에서 배부한다. 물품을 받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보관하는 시간을 늦춰 가능한 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한다. 두 팔과 가슴, 두 다리를 쓰다듬는다. 부상에 조심하고 가슴 펴고 걷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오늘은 동호회에서 함께 달리는 사람은 3명이다. 두 분 모두 나보다 더 잘 달린다. 기록으로 그렇다. 약 4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힘찬 함성과 함께 하프, 10km, 5km 코스를 향해 출발한다. 한강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잠실대교, 잠실철교,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구리 암사대교를 넘어 고덕천교 부근까지 왕복하는 길이다. 달리는 길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강과 육지를 구분하는 인접한 경계이면서 육지와 강의 시작점을 알려주는 경계를 달린다. 경계란 없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허구로 뭉쳐 부수기 힘든 구분 선이 바로 경계다. 자금도 머리가 명령해서 달리는 게 아니다. 몸과 정신의 경계는 없다. 그 경계를 지우기 위해 부단히 달린다. 바람은 불지 않아도 공기는 매우 차갑다.
출발 후 5km까지는 천천히 달린다. 몸이 충분히 예열되지 않았고, 추위에 갑자기 속도를 높이면 부상의 위험이 있다. 1km를 6분 30초 정도로 달리다가, 5km를 넘어서면서 6분 10초 정도로 달린다. 작년 시즌 마감 마라톤 대회 때 달린 코스라서 금방 익숙해졌다. 그때 기록이 1시간 55분이었으니 더 줄여보려는 욕심도 나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한강 변을 보고 달린다. 얼핏 그 얼음 벌판 위에 하나의 세상이 생겼다. 함께 가고 싶었지만, 위험했던 세상, 언젠가는 가는데 지금은 가지 못하는 세상이 잠깐 보였다. 세상이 사라지자 지금은 가질 수 없지만 갖고 싶은 것들이 다시 떠오르다 사라졌다.
반환점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그리고 9km 지점부터 반환해서 돌아오는 12km 지점까지는 가파른 경사와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고개를 숙여 눈을 운동화 아랫부분에 고정하고 보폭을 작게 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를 내려다가도 동료가 막아준다. 반환점 돌아 오면서 높여보자고 한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시원하게 아래로 내 달린다. 중력은 러너들에게 아주 익숙한 힘이다. 멀리 보이는 길이 평평한 길처럼 보여도 뛰는 동안에 길의 높낮이가 만드는 아주 약간의 중력 차이를 러너들은 알아챈다. 표시도 나지 않는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을 몸으로 느낀다. 안정된 호흡과 두 다리에 들어가는 힘이 말해준다.
이제부터 남은 9km를 5분 30초의 속도로 뛰어간다. 5분대, 6분대를 말하는 의미는 1km를 달리는 시간을 말한다. 실력이 출중한 마라토너들은 3분대나, 4분대로 달린다. 함께 달리는 다른 동료는 4분대로 달리니 이미 한참을 앞서 달려서 보이지 않는다. 다른 동료가 엇비슷하게 달려주지만, 숨이 차고 쫓아가기 버겁다. 10m 앞서면 또 따라가고, 같이 뛰다 멀어지면 또 쫓아간다. 오늘은 나를 위해 앞에서 부지런히 달려준다. 마지막 2km가 남았다. 큰 키와 넓은 걸음으로 겅중겅중 달리는 동료가 말한다.
"어서 뛰어요! 빨리 가면 2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한다.
"같이 가지요? 여기까지 같이 왔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한편으론 기록에 신경 쓰이고, 또 함께 달려준 동료가 고마워서 방향을 잡지 못한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 얼마 차이는 나지 않을 테니 달려보겠습니다." 하고 앞으로 나간다.
전속력으로 달린다. 5분 10초대는 되겠다. 띄엄띄엄 보이는 주자들을 추월해 보지만 앞서 달리는 사람도 별로 없다. 02:00 로 인쇄된 시간을 앞뒤로 붙이고, 노란 풍선을 매단 페이스 메이커를 시작할 때 보았는데 한참 전부터 보이지 않아 걱정되었다. 2시간을 이미 넘긴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지만 동료의 말에 기대감을 걸고 바람처럼 찬 공기를 가르며 뛰어간다. 땀으로 젖은 방한 모자를 벗었다. 얼어붙은 부분을 만져본다. 드디어 출발했던 풍선으로 만든 입구가 보인다. 힘차게 넘었다. 기록 측정을 위해 신발 끈에 매단 기록 칩이 반응하여 삐이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1시간 59분 36초로 통과했다. 바로 옆에서 프린터로 출력해주는 완주증을 받았다. 동료는 2시간 9초였다.
"고마워요. 덕분에 2시간 안에 들어왔어요.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알았어요? 빨리 뛰면 시간 안에 들어온다는 걸···." 몹시 신기해하며 물었다.
"시간도 봐가면서 말했지만 마지막 질주가 대단하네요. 잘했어요. 무시무시합니다. 하하" 달리고 나면 이런 말들이 정말 기쁜 말이 된다. 물을 마시고, 완주 메달과 빵을 받아들고, 순두부 한 그릇을 먹고 아지트로 뒤풀이를 하러 간다. -見河-
마라톤 입문 후 4번 째 하프 기록
코스 | 배번 | 이름 | 성별 | 출발 | check1 | check2 | 도착 | 코스기록 | 순위 | 연령대 순위 |
---|---|---|---|---|---|---|---|---|---|---|
하프 | 2113 | 김봉조 | 남자 | 10:00:22.86 | 01:02:38.09 | 01:59:36.99 | 195 |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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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좋은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