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러너스

눈오는 거리를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뛰어간다.

지구빵집 2018. 1. 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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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거리를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뛰어간다. 나름대로 속도를 높여 달릴때도 있지만 달리는 시간을 길게 해서 오래 달린 후에는 그 좋은 기분이 며칠 동안 더 오래 간다. 길 옆의 강물을 바라보고, 구름과 많은 풀들과 꽃을 생각한다. 소박하고 아담한 구불구불한 공백 속을, 지루하면서도 정겨운 침묵속을 그저 계속 달린다. 이런 일은 누가 무어라해도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하루키 참고)


무언가에 매혹된다는 것은 매혹적인 일이다. 눈내리는 도시는 매혹적이다. 도시에서의 날씨가 매혹적인 이유는 농촌에서와 달리 날씨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고 해석해야 할 심연을 갖지 않아 매혹적이다. 과정이나 설명이 필요없이 모든 의미들을 횡단해 결론에 이르자마자 빈손으로 되돌아오는 매혹적인 사람과 같다.


오늘은 눈 내리는 거리를 뛰었다. 도심의 거리를 질주하기 위해 풍경이 보이는 거리를 달린다. 눈 내리는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뛰는 일은 재미있다. 비오는 날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진다. 눈송이가 크면 더 빨라진다. 눈은 머리와 팔과 앞으로 나가는 무릅과 발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비누방울이 터질때는 폭하고 꺼지면서 물의 장력으로 물방울이 튀면서 없어진다. 눈은 그렇지 않다. 온도가 적당히 낮고 바람만 불지 않으면 눈은 달리는 몸에 부딪히며 퍽 하고 산산히 부서진다. 펑펑 내리는 눈 속을 달리는 사람의 주위에는 몸 전체와 부딪혀 부서지는 눈으로 가득하다. 만약 하얀모자와 하얀 장갑, 하얀 옷과 하얀 신발을 신고 뛰는 사람을 본다면 마치 눈 쌓인 벌판을 하얀 곰이 뛰어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러너의 신체를 이루는 경계에서 3~5cm 거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눈이 부서진 파편들로 뒤덮혀 있다. 버프나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입주위에서는 허연 김이 쏟아진다. 바닥은 약간 녹거나 부서지지 않는 눈들이 쌓인다. 어딜 보나 시야는 가까운 거리로 한정된다. 눈 오는 거리를 달리는 일은 굉장히 매혹적인 일이다.


비오는 거리를 달릴 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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