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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아니면 입 다물고 있으라고? - 이준구

지구빵집 2010. 12. 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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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아니면 입 다물고 있으라고?   - 이준구

“4대강 문제는 토목공사 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은 아니다.”라는 한 종교 지도자의 발언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바로 그 종단 안에서도 그 발언이 나오자마자 강력하게 반박하는 성명서가 발표되는 등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위계질서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명서가 발표되었다는 것은 그 발언으로 인해 종단 안에 얼마나 깊은 골이 패이게 되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한 보수언론은 ‘4대강 문제가 인권, 정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의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니라 치수와 개발 같은 과학적, 기술적, 세속적 문제’라는 사설을 통해 그 종교 지도자의 편을 들고 나섰다.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세속의 전문가들도 어느 방향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든 터에 종교가 이런 문제에 발을 디디면 길을 잃게 된다는 점잖은 충고까지 곁들이고 있다.

종교계의 4대강사업 반대를 늘 껄끄럽게 느껴왔을 정부로서는 “이게 웬 떡이냐?”라고 쾌재를 부를 만도 하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었으니 이만저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동안 정부가 해온 말들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런 논리로 종교계의 반대를 무력화하려 했던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종교 지도자의 발언이나 그 보수언론의 사설이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이 미묘한 상황에서 명백하게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편향성을 가졌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전문가가 아니면 입을 다물라는 말은 반대하는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그 밑에 깔려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 그 방면의 전문가만이 발언할 수 있다고 하면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 99%의 국민은 언제나 입을 꼭 닫고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경제에 대해서만 발언할 수 있을 뿐, 정치에 대해 발언해도 안 되고, 교육에 관해 발언해도 안 될 뿐더러, 환경에 대해 발언해도 안 된다. 이렇게 모든 언로가 꽁꽁 막힌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주를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만약 4대강사업에 관해 전문가들이 제 몫을 다해줬다면 구태여 종교인이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사전 준비가 철저하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완벽한 계획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4대강사업처럼 불과 몇 달 동안 번개에 콩 구워 먹듯 작성된 계획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진 계획에 숱한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을 것임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른다.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자기검열의 철옹성을 쌓고 그 속에 숨어버리는 통에 정부는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고 위험한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4대강사업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이 구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정부의 일방적 독주를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4대강사업에 대해 전문가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데는 전문가가 개입할 여지를 막아버린 정부의 교묘한 책략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사업에 기술적 측면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측면 역시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22조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이만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학자인 내가 4대강사업에 대해 발언을 하면 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발언을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4대강사업을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시킨 정부의 책략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정부는 이 사업이 재해예방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5백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공공사업에 적용되는 예비타당성조사 의무에서 해방시켰다. 그 결과 변변한 비용편익분석조차 없이 단군 이래 최대라고 하는 초대형 토목공사가 시작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비용편익분석이 없으니 경제적 측면에서 이 사업에 대해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어졌고, 이에 따라 경제적 측면이 가장 중시되어야 할 사업이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되어 버렸다.

이 정부는 출범 초 한반도대운하사업에서 예상되는 편익이 비용의 2.3배나 된다는 허황된 비용편익분석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은 적이 있다. 그런 쓰라린 추억이 아예 비용편익분석 없이 공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게 만든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또한 아무리 편익을 부풀려 보았자 그 어마어마한 비용을 정당화시킬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그런 무리수를 둔 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시킴으로써 정부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은 경제적 평가가 개입할 여지를 없앴다는 데 있다. 어떤 공공사업을 실행에 옮길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는 경제적 타당성이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판정은 곧바로 그 사업을 수행할 가치가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비경제적 사업으로 둔갑한 4대강사업의 경우에는 경제적 평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따라서 사업 수행의 타당성 여부를 평가할 객관적 근거가 없어졌다.

비경제적 사업으로서의 4대강사업 관련 논의는 영혼을 팔아버린 사이비 전문가들의 무대가 되어 버렸다.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이 똑같은 오염도를 가진 물을 두 배로 늘리면 오염도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해괴망칙한 논리로 4대강사업을 두둔하고 있는 것을 본다. 보를 쌓아 가두어둔 물의 양을 늘리면 저절로 수질이 정화된다는 정부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문가라는 사람이 초등학생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전문가라는 사람이 TV에 출연해 작년에 전국적으로 제한급수의 대상이 된 가정이 무려 150만호나 된다는 통계수치를 제시한다. 그러나 제한급수의 대상이 된 지역이 4대강사업 지역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밀집해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진정성이 없는 헛된 통계수치로 국민을 현혹시키려는 사람을 어찌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사이비 전문가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 모든 전문가가 4대강사업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거나 정부 편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깨어 있는 전문가들이 그 사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지적에 대해 정부가 성의 있는 답변이나 해명을 내놓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이비 전문가들을 동원해 엉터리 논리로 물타기작전이나 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논의에 맡기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기술적 측면에 대해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그러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린지를 분별할 능력 정도는 갖고 있다. 신부님도, 목사님도, 스님도, 교무님도 모두 나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즉 4대강사업과 관련한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분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4대강사업을 반대했을 리 없다. 널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경청하고 오랜 고심 끝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분들에게 입 다물고 전문가들에게 맡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되었든, 언론이 되었든, 종교 지도자가 되었든 어느 누구도 그렇게 이치에 닿지 않는 요구를 할 권리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부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정부가 귀를 열고 반대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경청하지 않는 한 4대강사업 문제의 합리적 해결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 많은 반대 의견에 귀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반대파의 입을 막아 버린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여론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토목공사의 끝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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