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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우리의 연대를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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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우리의 연대를 이길 수는 없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낮선 것에 대한 공포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개인은 약하고,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조직과 단체, 국가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공포에 대해 무감각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혐오와 공포다. 여자의 권력에 대한 남자의 공포, 이민자에 대한 원주민의 공포, 외계 생명체를 찾으려는 노력에 대한 지구인의 공포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이 느끼는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연대를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작년 여름,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던 시절, 33세의 젊은 미국인 의사 켄트 브랜틀리 박사는 철수하자는 제안도 거절하며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감염 환자들을 치료하며 의료 봉사 활동을 계속하다가 결국 에볼라에 감염되고 말았다.

한데 미국 본토 역시 에볼라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토머스 프리든 소장은 브랜틀리 박사를 비롯한 자국민 감염자를 미국 본토로 송환하여 치료하기로 결정한다. "왜 감염자를 미국으로 데려오느냐"는 비난이 쇄도하는 가운데 토머스 프리든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가 우리의 연대감을 이길 수는 없다."-개인주의자 선언 p.270, 문유석 저.>

  조직이나 집단은 공포를 먹고 유지된다. 낮선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거부해야만 유지된다. 다른 집단과 연대를 해서도 안되고, 다른 집단의 제안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전적으로 집단의 고유한 문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대를 거부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집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 불의를 이기고 정의를 살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집단에게 가해지는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 힘은 연대와 제휴, 협력에서 나온다. 특히 낮선 것들이 주는 유해성과 위협을 극소화 하고 이겨내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때때로, 두려워하는 집단의 감정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는 곳에 바로 성장의 기회가 있다. 불확실성과 기대의 무게는 우리를 압도시킬 수 있다. 심지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두려움 뒤에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름아닌 그 상황을 직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이 도전해야 우리가 얼마나 앞으로 나갈 수 있는지 능력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오히려 그 두려움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두려움은 단지 감정일 뿐이다. 한번 두려움을 이해하면,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드물게 일어나는 제한된 상황에서만 진정으로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대부분은 비이성적인 걱정과 생각에 불과하다. 우리 집단의 연대와 협력을 좀 더 강화하는 이유는 바로 승리와 성장을 위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見河-

참고자료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넘어서는 방법 https://brunch.co.kr/@philosophus/23

두려움을 느끼는 곳에 바로 성장의 기회가 있다 https://wonderfulmind.co.kr/fear-opportunity-to-grow/

낯선 것에 대한 공포와 위대한 사회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3/18/20150318022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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