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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늘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그의 sub-4.

지구빵집 2019. 8. 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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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전은 늘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sub-4(서브 포):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4시간 안에 완주하는 일

그는 늘 마주하는 일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사소한 것으로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다. 비어있으면서도 가득 찬 삶을 꾸려간다. 삶은 모든 순간순간 극적인 게 들어있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채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뭔가 감동적이고 연출한 듯 살아야 한다. 작은 허세도 부려야 한다. 계획적이고 비극적이고 아름답고 고귀한 요소들이 들어있어야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대사를 흉내 내야 하고, 결혼사진처럼 근사한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극적인 것들이 없이도 우리 삶은 한결같이 흐르기 때문이다. 

뉴스에 나오는 좋지 않은 소식도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좋은 시간과 멋진 장면들만 꼭 극적일 필요는 없다. 더럽거나 악하거나 비굴하거나 가난해도, 혹은 연약한 범죄자나 사람들이 바닥이라고 하는 누추한 곳에서조차 극적인 장면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올 수 있다. 영화, 문학, 음악, 그림 같은 거의 모든 예술이 하는 일이 어떤 형태의 삶이라도 극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지 않은가?

모든 도전은 극적인 장면을 만든다. 그의 도전이 극적인 장면을 되도록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여름이 시작하고 여자가 달리기에 집중하자마자 현저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 규칙적인 훈련으로 달리는 거리가 늘어난다.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시간은 줄어든다. 여자는 sub-4를 목표로 정했다. 기한을 정한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여자의 최고 기록은 약 1년 반 전에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4시간 21분이다. 여자의 목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현저히 늦은 기록은 단 시간 내에 좋은 기록으로 끌어올리지만, 거기서 시간을 줄여 상위의 기록을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초보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운동에는 단계와 절차가 존재한다. 나의 달리기도 멋 부리고 바로 실패하는 과정, 다치고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욕심을 부리다가 좌절하고 겸손함을 배우는 일은 성장하는 러너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는 달리기를 나보다 오래 한 사람이다. 훌륭한 마라토너가 되는 모든 과정을 극복한 사람이기에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나를 달리게 했고, 나보다 더 먼 거리를 달려왔으니 내가 도울 일이나, 해 줄 말은 없다. 옆에서 같이 달려주는 일뿐이다. 늦게 달리기 시작한 내가 먼저 sub-4를 달성했다.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56분의 기록으로 극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4시간 안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매 1km를 5분 40초로 달려야 한다. 그걸 42번 반복하면 된다. 남자가 목표로 한 3시간 40분은 모든 1km를 5분 10초로 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42번을 동일하게 해야 달성한다. 선수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평범한 초보 러너도 꾸준한 훈련이나 노력으로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내가 sub-4를 목표로 달릴 때 한껏 나를 응원한 사람이다.

"즐겁게 달려! 목표한 sub-4 꼭 하길 바라." 여자가 말했다.

"너도 즐겁게 달려,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남자가 말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후후. 앞으로 나한테 잘해. 하하" 여자가 말했다.

"살면서 너 때문에 제일 많이 웃은 거 같아." 여자가 말했다.

"감사하거나 고마워하지는 말아. 너도 아마 그랬을 거야." 남자가 말했다.

"달리다 보니까 느낀 건데, 노력한다고 모두 가질 수는 없어. 그렇지?"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옆에 있어 고마워. 처음으로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야." 여자가 말했다.

"너보다 더 잘 뛰면 네 옆에서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남자가 말했다.

"알아. 빠르게 달리게 되면 느리게는 못 달려. 느리게 달리는 게 더 힘들거든. 넌 이미 나보다 빠른 러너야. 달려야 해. 이제 내 옆에서 뛰는 단계는 넘어선 거지. 아쉬운 일이야. 네가 너무 빨리 달려서 놀랐고, 좀 서운했어. 천천히 오래 달려주길 바랐거든." 여자가 말했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검은색 스포츠 브라에 등에 동호회 이름이 새겨진 하얀 싱글렛을 입었다. 하의는 몸에 밀착하는 검은색 타이즈를 속에 입고, 핫핑크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달린다. 쇼트커트의 단발머리를 노란 손수건으로 뒷머리 중간에 묶었다. 윗머리가 달리는 발에 맞춰 위아래로 들썩인다. 무엇보다 자세가 좋아졌다.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팔에 힘을 빼고, 무릎은 높이 들어 약간 안쪽을 향하고, 내딛는 발이 안정적으로 지면에 착지한다. 뒤에 있는 발이 내려올 때 밖에서 안쪽으로 약간 돌아가는 버릇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 러너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로 달린다. 정기적인 훈련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대회를 앞두고 장거리 훈련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 시간을 엄수한다. 훈련을 시작하면 여자는 훈련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다.  

발걸음은 가볍고 땀도 많이 흘리지 않고 잘 달린다. 상승곡선을 타고 달리는 상태가 너무 좋아 걱정된다. 머리에 맨 수건이 땀으로 젖고 얼굴은 불그스레하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은 잘 안다. 지칠 때까지 한껏 땀을 흘리고 마주하는 얼굴은 선정적이다. 불그스레한 분홍빛 얼굴을 만지고 싶고,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싶고, 그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모조리 빨아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땀에 흠뻑 젖은 싱글렛으로 가슴을 지지해 주는 검은색 스포츠 브라가 모두 드러나 있다. 축구경기장의 서치 라이트가 조명이 되어 하얀 피부가 더욱더 희게 보인다. 달릴 때 조금씩 흔들리는 근육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자의 몸은 언제나 완벽하게 아름답다. '아니, 저걸 감추고 지내다니,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보기보다 보수적이고 자신을 드러낼 때 수줍어하는 사람이다.

마라톤은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즐기는 일에 의미가 있다고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마라톤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우지만 세세히 뜯어볼 필요도 없고, 무엇을 걸고 해야 할 만큼 절실한 목표가 없어도 좋은 운동이다. 몰입하여 달리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이다. 녹초가 될 때까지 달리고 나면 '나도 별 수 없이 약한 하나의 인간이구나.' 하는 겸손한 감정이 든다. 만약에 마라톤이 즐겁지 않다면 몇만 명의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해 42.195km를 달린단 말인가? 하루키처럼 모든 경주를 즐기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완주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우리의 목표였다. -見河- 

 

 

주위의 모든 색을 가리는 주황. #네가새면나도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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