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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도 힘들지만, 우리가 힘든 시간이 지나간다.

지구빵집 2019. 8. 3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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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도 힘들지만, 우리가 힘든 시간이 지나간다.

  학교나 동호회 선배를 가끔 만나면 말한다. 형제들이 주말마다 순번을 정해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무릎 수술을 했다. 넘어진 날은 괜찮고 했는데 다음날 거동을 못하셔서 병원에 가니 피가 고여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연세가 83세이니 조심할 때인데도 아버지는 늘 고집이 센 편이다. 서둘러 청주를 내려가 병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본다. 누나에게 필요할 때 쓰라고 돈을 송금한다. 아버지는 거동을 전혀 못하시니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나를 보고 멋쩍은 듯 웃는다. 간병인이 와서 자신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덩그러니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흐르는 강물에 던져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는 77세다. 당뇨를 앓고 있는지 20년이 넘었지만 활동도 잘하시고 아직까지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신다. 큰 누나는 엄마가 조금씩 이상하다는 말을 했지만 형제들은 모두 듣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버지가 다친 이후로 엄마는 말 수도 적어지셨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큰누나는 우울증 초기 증상이라고 했고, 보건소에 모시고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아본다고 했다. 부모님에 관한 모든 일은 큰누나에게 몰아주며 살아왔다. 부모님이 계신 근처에 살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간호사 출신의 누나는 부모님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고, 부모님도 많이 의지하셨다. 우리가 빼앗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감사는 감사하다는 행위가 들어가야 정말 감사하는 거고, 사랑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감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행동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순수하고 사실이 아닐까. 

 

  나이 든 모든 노인이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2018년 노인 치매 환자수는 75만 명. 성별로 보면 남성(27만 5,000명)보다 여성(47만 5,000명)이 1.7배 많다. 올해 조사부터 포함된 60세 이상 치매 환자수는 77만 명(유병률 7.2%)이다. 치매 진단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은 60세 이상 220만 명(20.2%), 65세 이상 166만 명(22.6%)으로 집계됐다. 아직 10%도 채 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착각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면 모든 노인이 치매나 치매의 가장 대표적인 병인 알츠하이머병(영어: Alzheimer's disease, AD 또는 Alzheimer's 치매의 가장 흔한 형태이며 75%의 치매 환자가 알츠하이머병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되며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른다.)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죽을 때까지 치매에 걸리지 않고 노년을 즐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모든 일이 자신의 일이듯, 치매라는 병의 유발 정도도 개인이 긴 시간을 얼마나 노력하는가 라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아, 이제 나도 시작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러한 과정을 겪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선배가 부러웠다. 마치 그들은 겪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겪어도 조금 힘들고 지나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정신없고 당황스럽고 불만에 가득 차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모든 일은 미루고만 싶었고, 나만은 피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지금처럼 큰누나가 알아서 다 하고 나는 필요할 때 돈이나 보내주고 간혹 청주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고 올라오는 일만 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니 감사하며 지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겪는 거야. 하나씩 견디며 지나가면 돼. 두려워하지 말고. 나도 지냈어. 원 없이 사랑하고, 잘 해 드려.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 나중에는 눈물이 안 나와. 우리 집, 그쪽 식구 다 챙기고 지내왔어. 누구나 겪는 일이야. 너도 예외는 아닐 거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하나씩 하나씩, 한 마리씩 한 마리씩." 

 

힘을 준다거나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를 세상에 보낸 부모님과 함께 서로 힘든 늦여름을 보내고 있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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