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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정의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다.

지구빵집 2024. 4. 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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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정의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행동이다. 영화 - 줄리언 반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지나간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정의한다고 생각하고 기억에 집착하지만,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정의하진 않는다. 아무리 많은 경험에 대한 기억과 사랑, 감정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거짓이고, 믿을 수 없고, 형편없는 기반을 가진 건물인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억에 집착한다. 마치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삶의 방식처럼 말이다. 꽃은 기억에 의지해 꽃을 피우지 않는다. 무성한 연두색 잎들이 언제 연두색으로 물들여야 하는지 나무는 기억이 없다. 사람은 언제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고, 언제 잠들지, 어느 땐 잊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기억으로 우리가 갖는 판단, 선택, 적절한 때는 꽃과 나무에게 계절이 주는 신호만큼의 의미도 없을 정도로 허약한 신호다.   

 

"자신을 정의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과 행동이야."

 

"우리는 기억이 자신을 정의 한다고 생각하지. 물론 젊은 시절에는 산 날이 얼마 되지 않아서 또렸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 사는 날이 많이지면 기억이란 그저 그때그때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에 불과해. 뭉개져 희미한데도 무척 정확한 듯이 우기고 강요하고." 

 

"수필 '인연'은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이 지은 아름다운 수필이야. 아사코와 사랑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 꽤 인상적인. 이상한 건 선생의 아내(임진호 여사) 이야기 만큼은 유독 글에서 찾아볼 수가 없대. 오로지 아사꼬와 어머니, 매우 아끼던 딸 서영이 이야기만 가득하대." 

 

"그러니? 신기하네. 결국 아름다운 기억 하나로 자기 아내를 지워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결국 나중에 이런 말을 했어. '내 일생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엄마이고 하나는 서영이다'라고.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아마 일생의 기억을 모두 한 곳에 두고 지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돌아가시기 전엔 치매에 걸렸대."

 

우리의 기억도 언젠가는 희미해지고 냄새도 색깔도 모두 빠져버릴 것이다.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잊혀진다. 잊혀지는 것들은 아름답다고 해두자. 남자는 참 편하게 인생을 산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는 법이다. p.11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165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기억은 우리의 입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다. 남들에게 하는 이야기라가 보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타인을(사건을) 편집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습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기억을 편집하기도 한다. 그래서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쌍방의 기억과 주변인들의 기억을 종합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가나고 치욕적인 감정이 들더라도 타인에게 저주와 같은 글은 함부로 쓰는게 아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이 찾자 올 때 이성적인 판단으로 글을 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줄리언 반스는 젊었을 때, 60-70년대에 사전을 편찬하는 사람이었다. 영국 사전을 보면 단어 옆에 그 단어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 연도가 적혀 있는데, 즉 사전 편찬자들이 그 단어의 용례며 역사를 다 조사했을 거란 의미다. 반스가 젊은 날을 그렇게 보내면서 문자와 단어, 기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겠나. 시간이 갈수록 삶의 대한 통찰과 맞물리는 소설을 쓰는 것 같다."(김영하)

 

기억이란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닌 오직 자신의 것이기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은데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은데로 편집한다. 그 타이밍에 가장 좋아하고 믿었던 그들에게 상처받고 감정에 취해 했던 행동이...나는 몰랐는데 엄청난 상처를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 우리는 때로는 이유도 모르고 헤어지기도 하고 자신만의 이유로 헤어지기도 한다. 무릇 영원한 문학과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기억의 문제다.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의 역사에서 세계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역시 그 기록까지 그런 식으로 서술된다. . 또 당신의 조그만, 혹은 거대한 이유는 타인에게 때로는 당신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는 이유다. 결국 우리는, 나는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그 기억을 간직하고 유리한 쪽으로 항변하기도 한다. . 어느 것이 옳은 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마지막 나레이션에서 그 이유를, 그 사정을 알고자하는 것은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나 역시 그러했었던 같다. 온전하지 않은 기억을 되돌이표마냥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립고 또 그립다. . 영화를 혼자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오늘은 어린 친구 둘과 같이 봤다. 그들이 따라올 수 있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우였다. 오늘은 같이 잘 봤다. 나오면서 읽기를 망설이던 원작소설을 사왔다. 책은 또 더 상세한 이야기를 말해줄 듯 하다. . 좋아하는 비가 잘도 내린다.

 

끊어졌거나 이어져 오고 있는 인연들 중에 내가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면면들이 사실일까? 내가 기억하는 그것이 진실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기억이란 얼마든지 조작되고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것이 때때로 섬뜩하게 무섭다. 스스로는 내 기억이 진실이라고 믿으니까, 그 기억에 의존해서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당신들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줄리언 반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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