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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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기사입력 2012-07-10 10:54
당신들이 모르는 우리네 학교의 진실
학생들의 비행, 불합리한 교육제도 등 우리나라에서 학교는 언제나 주요 쟁점 사안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지 않은 이상 학교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또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 각박한 사회에서 생활하다보면 학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과 선생, 이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본 적 있는가. 이들의 속마음에 귀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이들이 말하는 우리네 학교의 진실은 무엇일까.
■ "공부 못하면 제 이름도 몰라요. 제 꿈은 뭘까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맘껏 놀다가 갑자기 공부를 한 번 해보고 싶어 열심히 했고, 실제로 내 자신이 성장하는 걸 봤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온 지금 내가 아무리 해도 이미 나보다 잘하는 층이 있고 이 층을 넘기가 힘들다. 평일에 학교, 주말에 학원. 언제나 공부, 공부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멍 때릴 때도 있다. 피곤해서 잠시 책상에 엎드리면 어느샌가 선생님이 깨운다. 가끔씩 이런 생활에 질린다.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은 시험 점수를 나열해서 평균점수 아래인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른단다. 넌 이것도 못하냐면서.
확실히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등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선생님 한 명당 맡는 학생 수도 많고 수업 자체만으로 벅차니 수업을 따라오는 애들만 끌고간다. 소외감을 느낀다. 선생님도 인간이니까 이해는 된다.
문제아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예전보다 심한 건 맞다. 내가 중학생일 때도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많았다. 담배를 구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도 있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안 피울 수가 없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진 경우가 많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들어줄 사람이 친구들밖에 없다. 한 선생님이 이런 아이들의 위한 1:1 면담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담배도 끊고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는 걸 봤다. 무조건 잘못됐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성공하고 싶다. 돈, 명예가 아닌 내가 만족하고 즐겁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싶다.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다녀도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이 분명히 있다.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이걸 달성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상 이게 쉽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모든 것이 입시에 맞춰져 있다. 우리가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데 이런 학교에서 내 적성을 찾는 게 가능할까.
대학들이 수시 전형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는 진로와 관련된 내용이다. 봉사활동이든 체험학습이든 본인의 진로와 연관된 감동적인(?) 스토리를 써내야 한다. 주입식 교육만 받던 우리에게 갑자기 꿈과 희망을 내놓으란 식이다. 진정으로 진로와 관련된 체험을 해 본 아이가 몇이나 될까. 설령 일반 회사원이 꿈이라 해도 직장 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중간에 그만 두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엄마의 꿈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지금도 부모님이 권하는 직업이 있다. 학교에서도 빨리 진로를 정하라고 한다. 난 좀 더 많은걸 해보고 싶은데 말이다.
■"공부는 아니라는 애들에게 학교는 무슨 의미일까요?"
수업할 때 축 쳐진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공부가 죽어도 아니라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텐데 말처럼 쉽지도 않고, 꾸역꾸역 학교에 와서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한다면 이것만큼 시간낭비가 없지 않나 싶다.
나는 서울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 겸 학생부 교사로 있다. 언론이 보도하는 학생들의 실태를 보면 어떨땐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현직인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이건 일부 자극적인 에피소드지 일반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저지른 일에만 관심있지 이면에 감춰진 얘기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애들 치고 사연 없는 애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대체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장 많이 방황하는 것 같다. 입시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때다. 내키지도 않는 대학은 가야겠고 대학 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자니 아는 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교육 과정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격차가 크다. 중학교 때 공부에 조금 소홀했던 애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정신차리고 달려들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 듣기 때문이다. 그냥 포기해버린다.
다른 곳에서 적성을 찾으면 다행이다. 우리 반 어떤 아이는 교과서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요리 자격증은 벌써 여러 개 땄다.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다보니 요리책은 술술 읽힌단다. 이런 아이도 입시라는 틀에서 예외가 아니다. 생각 같아선 인문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경력을 쌓고 싶은데 부모님이 최소 전문대는 가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부모님도 중학교 때까지 활발했던 아이가 고등학교 오면서 다소 어두워졌다고 한다.
예전에 아이들에게 독일 보케이셔녈 스쿨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애초에 취업전선에 맞춰 교육을 받는거다. 굳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졸업한 뒤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면 대학을 안가겠다는 애들도 많다. 부실대학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근본적 원인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한 반 정원이 30명가량 되는데 이 중 7~8명 정도가 직업반을 희망한다. 대부분 공부에 뜻이 없다. 진로상담부에 상담 전문교사가 있긴 하지만 교사 한 분이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을 관리한다는 건 불가능이다. 보통 의뢰받은 학생이나 검사에서 위험군으로 분류된 아이 위주로 상담한다. 단순히 '꿈이 없는 아이들'은 상담에서 제외된다. 입시 위주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성적 말고는 상담 거리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학교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 성적이 안좋으니 학교와 가정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잘못하면 소위 '나쁜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런 아이들을 잡으러(?) 다닌다.
담배를 피우다 걸린 아이와 상담하던 중 "나중에 선생님을 무슨 낯으로 찾아올거냐" 했더니 그 아이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중에 찾아와도 돼요?"라고 되물었다. 순간 무언가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아이들 머릿속에 공부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인생을 정해놓은 거다. 이런 아이들이 과연 학교라는 곳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ys8584@fnnews.com 김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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