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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에 관하여 - 페체르 크로포트킨

지구빵집 2021. 10. 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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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에 관하여

 

크로포트킨/ 역자: 역자 미상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토록 놀라게 했던 '아나키'라는 단어를 당파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종종 꾸지람을 듣곤 한다. "당신네 사상은 훌륭하다. 그러나 당신네 당파명은 불운한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흔히 아나키는 무질서 그리고 혼돈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 단어는 이해관계의 충돌, 개인들의 투쟁으로 인하여 조화로운 체제를 성립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상을 연상시킨다"라고 말이다.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당파,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당파는 이름을 독자적으로 선택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는 것부터 지적하기로 하자. 후일 널리 알려지게 된 그들의 이름을 지은 것은 브라반(Brabant)의 거지 떼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일종의 별칭으로, 잘 고른 이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당파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널리 인정되었고, 이내 곧 자랑스러운 간판이 되었다. 이 단어 역시 사상 전반을 집약했던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또한 1793년의 생-뀔로뜨는 어떠한가? 이 이름을 지은 자들은 바로 민중혁명의 적들이었지만, 이 이름은 사상 전체를 기가 막히게 요약하고 있다. 즉, 옷만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이른바 애국주의자나 쟈코뱅이라고 불린 모든 왕당파와 대립하였던, 누더기를 걸쳐 입고 가난에 찌든 인민들의 반역 사상. 그 자들은 그 잘난 연설과 부르주아 역사가들의 찬양에도 불구하고, 생-뀔로뜨의 가난과 자유, 평등정신 그리고 혁명적 열정을 심대하게 경멸한 바 있는 인민의 실질적 적이었다.

 

니힐리스트라는 이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이름은 기자들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었으며, 종교색 짙은 특정 분파가 아니라 실질적인 혁명세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때까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심하게 말장난 치도록 만들었다. 그 말은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에서 지어냈는데, '아버지'가 채용하여 '아들'의 불복종에 대해 분풀이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그 별칭을 받아들였고, 나중에 그 이름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깨닫고 제거하려 하였지만 불가능하였다. 언론과 여론이 그 러시아 혁명가를 다른 이름으로 묘사하려 들지는 않았을 터이다. 어쨌든 그 이름은 결코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데, 이 역시도 사고방식을 잘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억압을 토대로 하는 현존 문명의 행위 일체에 대한 부정 - 현 경제체제에 대한 부정을 표현한다. 지배와 권력에 대한 부정, 부르주아 도덕성에 대한 부정, 착취자를 위한 예술에 대한 부정, 괴이하거나 구역질나는 위선적 유행과 예절에 대한 부정, 현 사회가 과거로부터 상속받은 모든 것에 대한 부정 : 한마디로 하자면 오늘날 부르조아 문명이 존귀하게 다루는 일체의 것에 대한 부정.

 

아나키스트의 경우도 똑같다. 인터내셔널 내에서 협회에 대한 권위를 부정하고 또한 모든 형태의 권위에 거역하는 한 당파가 출현했을 때, 그 당파는 처음엔 '연합주의자', 다음에는 '반국가주의자' 혹은 '반권위주의자'라 자칭했다. 실제로 그 당시에 그들은 '아나키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하길 꺼려했다. 'an-archy'라고 표기된 그 단어는 그 당파를 프루동주의자들과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시키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당시 경제개혁에 관한 프루동주의자들의 견해는 인터내셔날과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세력들이 그 이름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으며, 결국 아나키스트라는 명칭으로 그들의 유일한 포부가 결과야 어찌 됐든 무질서와 혼돈을 조성하는 것일 따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나키스트 당파는 반대세력이 붙여준 이름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an과 archy 사이에 하이픈을 사용하여,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an-archy가 "무강권"을 뜻하는 것이지 "무질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곧 그 단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였으며, 읽는이의 혼란을 막을 별도의 수정 작업이나 그리스 어원의 참뜻을 널리 알리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단어는 1816년 영국의 철학자 벤담이 "악법을 개혁하고픈 철학자는 악법을 어기라고 설파해서는 안된다... 아나키스트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여, 법의 정당성을 거부한다. 또한 법률로써 인정하기를 거부하게 하여 집행을 저지하고 나서도록 선동한다"라고 표현한 것과도 같은, 기본적이며 보통의 상식적인 의미로 되돌아갔다. 오늘날, 그 단어의 의미는 좀 더 확장되었다. 즉 아나키스트는 현행법뿐 아니라 일체의 기성 권력, 모든 권위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핵심 - 일체의 권력과 권위에 대한 반항 - 은 여전히 동일하며, 그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명칭이 질서를 부정한다고 연상시켜, 결과적으로 무질서 혹은 혼돈의 사상을 떠올린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서로들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확인해 보자. 과연 어떤 질서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한 질서는 우리 아나키스트들이 꿈꾸는 것과 일치하는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잇속을 위해 희생당하는 계급 분할이 사라졌을 때 자유롭게 들어설 인간관계와 일치하는가? 모든 사람이 하나의 같은 가족일 때, 그리고 개개인의 노동은 만인을, 만인의 노동은 개개인을 위한 것일 때 이해관계의 결합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출현하는 질서와 일치하는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아나키가 질서를 부정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은 이와 일치하는 미래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들은 현사회에서 통용되는 질서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나키가 파괴하고자 하는 그러한 질서는 무엇인지 보기로 하자.

 

오늘날 그 자들이 뜻하는 질서란, 열에 아홉 명이 노동하여 한 줌 게 으른 자들에게 사치와 쾌락을 제공하고, 극히 역겨운 열정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질서란, 열에 아홉이 번듯한 생활과 지적 재능의 정당한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나 예술적 창조에 의해 인간에게 제공되는 쾌락에 대해서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 돼지 상태로 열에 아홉 명이 전락하는 것이다. 질서란 이런 것이다!

 

질서란, 가난과 기근이 사회의 일상 상태가 되는 것이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일랜드 농민이며, 디프테리아와 열병 그리고 식량부족에 뒤이은 기근으로 죽어가는 러시아 제3 제정의 농민이다. 당시 창고의 곡물은 해외로 반출되고 있었다. 또, 시골의 옥토를 버리고, 겨우 몇 달가량 버티다가 함께 파묻힐지 모를 토굴을 찾아 유럽 전역을 유랑하게 된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부자를 먹일 짐승을 기르기 위해 농민으로부터 빼앗은 땅이다. 농사라도 짓자는 사람에게 반환되기보다는 차라리 놀고 있는 땅이다.

 

질서란,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몸 파는 여성이다. 공장에서 말이 없어졌거나,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다. 기계 상태로 전락한 노동자이다. 부자를 괴롭히는 노동자의 유령이며, 지배에 반대하여 출몰하는 백성의 유령이다. 질서란, 극소수가 권좌에 오르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소수 권력자는 대다수를 기만하고, 사기, 부패, 폭력, 학살 등으로 같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식들에게 나중에 같은 권좌를 차지하도록 키운다.

 

질서란, 사람과 사람, 무역과 무역, 계급과 계급, 나라와 나라 사이에 계속되는 전쟁이다. 끊이질 않는 유럽의 대포소리이며, 황폐화된 시골이며, 전투에 참가한 전세대가 희생되는 것이며, 수세기에 걸친 중노동으로 이룩한 재부가 순식간에 파괴되는 것이다.

 

질서란, 노예제이며, 족쇄 채워진 사상이며, 칼과 창으로 버텨나가는 인종의 타락이다. 수백 명의 광부가 폭발에 의해 급사하거나 호흡곤란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탄광주의 탐욕으로 매년 수백 명씩 폭사하거나 매몰되며, 어렵게 불만을 털어놓자마자 총살되거나 무력으로 짓밟힌다.

 

마지막으로, 질서란 피로 물든 파리코뮌이다. 포격에 산산히 부서지고, 총살당하고, 파리 도로 아래 석회 속에 매장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 3만명의 죽음이다. 투옥되고, 시베리아 눈밭에 묻히고, 잘해야 순수파로 가장 헌신적인 경우라면 교수형에 처해진 러시아 청년의 얼굴이다.

 

질서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무질서 - 그 자들은 무엇을 무질서라 부르는가?

 

그것은 치욕스러운 질서를 거부하고자 속박을 끊고 족쇄를 부숴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인민들의 봉기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이다.

 

그것은 임박한 혁명 전야에 닥친 사상의 반역이며, 수세기 동안 변함없이 인정되고 있던 가설들의 전복이다. 신사조 혹은 과감한 발명이 봇물 터지는 밀려오는 것이며, 과학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무질서는 고대 노예제의 폐지이다. 코뮨이 생성되고, 봉건 농노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며, 경제적 노예상태를 철폐하려는 시도이다.

 

무질서란 왕을 전율케 하고, 일할 권리를 선포했던 1848년이다. 신사상을 위해 투쟁하였던 파리 인민이다. 그들은 학살당하면서 인류에게 자유코뮨의 사상을 남겼으며, 우리가 다가갈 수 있다고 느끼는 자유코뮨의 혁명 즉, 사회혁명을 향한 길을 열어젖혔다.

 

그 자들이 무질서라고 부르는 무질서란, 과거 노예제를 철폐하는데 전 세대가 중단 없는 투쟁을 벌여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앞장서 몸을 바쳤던 시기이다. 민중의 천재성이 자유 비행을 감행하여, 불과 몇 년 만에 장족의 진척을 보였던 시기이며, 그러지 못했다면 고대 노예상태에 머물거나 가난에 찌들어 허리를 펴지 못했을 것이다.

 

무질서는 엄청났던 열정과 이루 말할 수 없었던 희생과의 단절이며, 지고지 순한 인간애의 서사시이다.

 

이 같은 질서에 대한 부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아나키라는 말은, 보다 나은 미래를 쟁취하고자 투쟁하고 있는 당파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택 아닌가?  

 

참고 

[아나키즘] 크로포트킨에 관하여 

“만물은 서로 돕는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② 

위키백과 표트르 크로폿킨 

 

 

출처= https://anarchyisorder.files.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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