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서평. 이도우 장편소설

지구빵집 2022. 1. 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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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나잇 책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근 '날씨 좋아지면 봬요.'라고 인사했던 기억이 나는데 막상 누구에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했는지, 전화 통화로 했는지. 아마도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추측해 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상관없는 무해 무익하고 공허할지도 모르는 인사들을 좋아한다. 초치는 일들이 많아도 삶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소설을 읽을 때 지은이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관심이 많다. 굳이 애써 찾지 않고 남자나 여자겠지 하고 말아 버린다. 이미 글에 다 나와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글로 옮긴 것이기에 글은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낸다. 캐릭터들 면면은 그의 분신이기도 하다. 플롯은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이 경계를 넘나드는 적당한 선에서 결합된 이야기의 줄거리다. 여자 소설가가 쓴 글에 공통점은 유난히 자기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씻는 일이 자주 나온다. 또 하나는 감정을 마음속으로 꾹꾹 삭이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몸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 않지만 열심히 씻는다. 호두 하우스가 동파되어 보일러가 망가져 은섭의 집에 신세 자러 가도 씻고, 집에서도 씻고..... 여자처럼 씻으러 태어난 것처럼 씻는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저자 이도우 소설가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거의 읽고 나서 TV 드라마로 방영하고, 마케팅에 많은 정성을 들인 책임을 알았다. 일부러라도 조금 늦게 관심을 갖고, 유행인 철이 지나야 어디 한번 볼까? 하고 다가가는 일은 아마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일방적으로 휩쓸고 가는 물결에 떠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서.

 

첫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차를 만들면 

다음 잠에서 깨어날 때 슬픔이 누그러지리라.

 

서울에서 미술강사로 일하던 목해원은 학원 아이들과의 다툼이 힘들어 어린 시절을 보내던 강원도 북현리 혜천읍 호두 하우스로 내려온다. 잘 나가던 소설가인 심명여 이모는 갑자기 낙향해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민박집인 '호두 하우스'를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었고, 가정폭력을 행하던 아버지를 죽인 죄로 엄마는 감옥에 가게 되어 혜원은 이모와 자라는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기차역에서 해원이 가출하는 장면에 반한 은섭은 학창 시절부터 쭉 혼자 좋아해 왔습니다. 은섭은 아버지와 산속에서 살다 아버지가 죽고 큰아버지에게 맡겨져 자랐다. 시골에 내려온 혜원이 동네에 책방을 차린 은섭의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벤트를 하고, 책일기 모임, 은섭과의 사랑, 친구 보영과의 화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실제 명여 이모였다는 비밀까지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달달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호두 하우스, 있다면 정말 가보고 싶은 시골의 작은 독립 책방이다. 경북 시골로 이사한 노부부가 살던 기와집을 은섭이 책방으로 만들어 경영하는 책방이다. 여러 등장인물은 이곳에 모여 늑 가을과 겨울을 나고, 봄을 맞는다.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은섭이 매일 쓰는 '굿나잇책방 블로그 비공개 글'이다. 나중에 해원에게 발각되어 모든 글을 보게 되지만 중간중간 해원과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변하는 은섭의 마음, 명여 이모와의 갈등으로 은섭이 떠날 때의 고통을 볼 수 있다.

 

은섭이 큰아버지 집에 살게 된 것, 명여 이모의 비밀, 친구 보영과 서먹한 거리에 대한 화해 등 몰랐던 이야기는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게 된다. 

 

책을 읽고 지은이를 찾아보니 두 살 어린 아름다운 작가다. 매끄럽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모든 표현은 절제되고, 마음은 날아가지만 글은 천천히 걷고, 마음속에 존재하는 겨울과 봄에 대한 표현도 좋았고, 무엇보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해원과 은섭의 사랑에 대한 잔잔하고 물들어가는 모습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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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만날 운을 지금 다 쓰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 p.89

 

늑대의 은빛 눈썹, 눈앞에 대고 사람을 보면 진짜 모습이 보인다. p135

 

Irene 아이린은 은섭의 SUV 차 이름.

 

들판에 짚 발표시키는 사탕 같이 쌓아 놓은 흰 통 = 사일로 = 곤포 = 마시멜로 = 뒤늦게 깨달은 사랑 

 

의심이 이루어지는 장소 p.181

 

힘을 빼. 뭐든 힘을 빼야 배우기 쉬워. 

그렇게 말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힘 빼는 거잖아. p248

 

엽편소설 = 나뭇잎 소설 = 쇼트 스토리

 

학 이야기  p134

 

인생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남겨가는 거지. 결국은 친절한 이들이 좋았고, 다정한 사람과 더불어 잘 지내고 싶었다. p338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존재하는 곳이 제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p388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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