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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소설. 가족사가 해피 엔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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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소설. 가족사가 해피 엔딩이네.


이 책은 농담 하나, 비극 하나에서 출발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일어난 이야기다. 주인공 심시선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원치 않는 외국살이를 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여류작가이자 화가다. 심시선이 죽은 뒤, 그녀의 자손들이 심시선이 살아온 궤적을 글과 그림, 액세서리 등 남긴 물건으로 심시선을 추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선의 큰 딸 명혜의 주도로 심시선 일가족은 시선의 죽음 10주기를 맞아 지금의 '심시선'이 시작되게 한 곳, 하와이에서 저마다의 방식, 그러니까 물건이든 , 경험이든 무엇이든지 추억할 이야기를 만들어 심시선을 기리기로 한다.

각 장은 심시선 할머니의 전 남편, 또 전 남편, 딸, 며느리, 사위, 손자와 손녀의 성격과 직업, 그들이 기억하는 심시선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릴 적 죽을 고비를 넘긴 우윤의 이야기, 그런 우윤으로 인해 쉼 없이 읽기를 시작한 시선의 며느리 난정의 이야기, 어느 날 세상으로부터 받은 폭력에서 피해자가 된 화수가 등장한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세랑 작가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할머니와 관련한 과거를 추억하는 가족들의 여정을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정하는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만의 시선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가족들 모두가 살아온 경로도 다르고, 여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주장한다. 가족 누구도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모두 각자의 개성대로 당당히 살아가는데 우리라고 왜 그렇게 살지 못할 것인가?


"너 같이 많이 읽는 애는 언젠가 쓰게 된다."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p.25

좆같은 일이 화수에게 일어났다. p.183

"나는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해. 남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이랑 자신이 잘못한 것 위주로 기억하는 인간. 후자 쪽이 훨씬 낫지." p.208

"어쨌든 하와이를 좋아하면 하와이에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제주도를 아끼면 제주도에 덜 가야 하는 것처럼."
"오기 전엔 몰랐잖아. 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인데." p.235

꼴사납다는 말은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제 뜻을 나타낼까? p.267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 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p.288

화수는 멈추고 끊겨 전달되지 않은 것들을 헤아려보았다. 어릴 때 어릴 때 엄마들이 머리를 묶어주던 여러 방식, 변형된 자장가들, 절판된 그림책들, 배앓이를 할 때의 민간요법, 카나페 레시피들, 냉동실에 미니 눈사람, 잔 흠집으로 뒤덮여 그것이 무늬처럼 된 반지,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모이던 습관, 카드놀이의 이례적인 규칙, 죽고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진 앨범들, 무겁지만 시원한 대나무 돗자리, 변색된 병풍, 마흔 살짜리 화분, 우표 부분이다 뜯겨나간 편지들, 홀수로 남은 잔들...... p.424

할머니 덕에 중산층이 몰락하는 시대에 몰락하지 않을 수 있었죠. 행운이란 건 알아요.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p.332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p.331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소설. 가족사가 해피 엔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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