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장편소설

지구빵집 2022. 1. 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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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단어를 가지고 살아간 휴머노이드, 천 개의 파랑 

 

방학이 되면 주로 소설을 읽고, 학기 중에는 프로그래밍 관련 책과 사회과학, 경제와 관련한 책을 읽는다. 인기가 있거나 베스트 셀러에 관심이 없고, 나중에 SNS나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읽고 선택한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제목이 멋있어 보이면 빌리기도 한다. 특별히 한 종류의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지만 앞으로는 한 종류의 책만 읽을 생각이다. 운동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마치 운동만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마치 지금처럼 5시에 일어나려고 살아가고, 달리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달리는 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천 개의 파랑이란 제목이 마음에 들어 무심코 빌린 책은 집에서 가까운 경마장과 그 주변의 식당이 주 무대라서 반갑고, 경마 이야기와 말이야기가 나오고, SF 소설 같지 않으면서 한국 과학 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소설이다. 

 

 

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말을 타는 기수(驥手)로 지내다 파란 하늘에 한 눈을 팔다 하반신이 부서진 휴머노이드 로봇은 C-27이라는 이름이 전부였다. 

 

우연재를 만나 콜리(브로콜리 색과 닮아 붙여진 이름)란 이름을 얻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2035년, 경마 경기의 기수가 사람 대신 휴머노이드로 대체되면서 콜리와 한 팀인 경주마 "투데이"는 시속 100km를 향해 달리며 일약 경마 스타로 이름을 날린다.

 

기수 휴머노이드로 만들어지는 마지막 단계에서 기수의 메모리 칩이 아닌 인지와 학습 휴머노이드를 연구중인 연구생의 가방에서 떨어진 칩을 갖게 된 C-27은 경마장에서 고삐를 놓고 말의 갈기를 만져보고, 파랑분홍이나 회색노랑으로 이름 붙인 하늘을 좋아하고, 자신의 말인 투데이와 교감을 일으키는 이상한 휴머노이드가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온 연재는 로봇 베티에게 밀려 일자리를 잃는다. 연재의 아버지인 '소방관'은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예산 때문에 우선순위에 밀려 교체되지 못한, 오래된 소방복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연재의 언니 은혜는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을 하지 못해 '사이보그 인간'이 되지 못하고 휠체어를 사용해야 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그 기술의 속도를 채 따라잡지 못하는 곳에 아직 우리가 사랑하는 무엇들이 있다. 사람이라고, 동물이라고, 기계라고 함부로 지칭하기 어려운 주어들은 제 속도에 맞게 움직이며 살아가고,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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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콜리는 스스로 주로 위에서 낙마한다. 너무나 빠른 속도를 강요받은 투데이의 다리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콜리는 투데이가 자신을 태우고 완주했다가는 영영 다리를 잃을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자신의 파트너인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하늘을 보면서 낙마했고, 하반신이 망가진 휴머노이드 기수는 폐기될 위험에 놓였다. 우연재는 콜리를 전 재산을 들여 말 관리자인 민주로부터 몰래 구입해 지수와 함께 다리를 만들어 주고 가족처럼 지낸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투데이는 무릎이 망가져 달릴 수 없는 말로 퍼분을 받아 자연사의 위기에 처한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어 안락사 2주를 남기고 2달을 더 살게 하기 위해 연재의 친구 ‘지수’, 경마장 승부 조작을 취재하는 서진, 연재의 엄마 보경, 언니 은혜, 수의 사 복희 등 많은 인물들이 함께 한다. 결국 이들은 투데이가 안락사되는 것을 막고 마지막으로 주로에서 콜리와 호흡을 맞출 수 있게 한다.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투데이와 콜리는 가장 천천히, 느리게 달리는 연습을 한다. 결국 이것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사람들은 시야를 가리고 빠르게 질주해야만 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아간다. 그 속도로부터 버림받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참고

말의 지능과 성격

 

 

인터넷 서점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766653

 

 

 

나는 지금 떨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속도라면 떨어지는 데 3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3초보다 몇 곱절은 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조금씩 하늘에서 멀어지고 있다. p.7

 

이대로는 죽어. 콜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관중석이 꽉 찬 늦여름의 경기에서 콜리는 스스로 낙마했다. p.31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p.83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p.97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p.113

 

“몇몇 아이들이 상아 없이 태어나기 시작했어요.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아주 짧죠. 흔적만 남아 있는 정도로요. 이 녀석도 상아 없이 태어났을 거예요.”

“… 좋은 진화인가요?”

복희는 묻고서 멍청한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진화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다. 심지어 상아의 탈락은 오로지 인간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것이 좋은 진화일 리가. 관리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들의 종족을 없애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만을 바라야죠.” p.159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p.179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p.221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p.205

 

'저에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머뭇거리던 소녀는 건초더미를 밟으며 다가와 부서진 콜리의 하반신을 들췄다.

'괜찮아요. 이미 망가졌으니까요. 경기 도중에 떨어졌는데 바로 뒤에 오던 선수에게 밟혔어요. 제 실수죠. 딴생각을 하면 안 됐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날이 맑은 날 초원을 뛰고 있다는 상상을 했거든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가짜 말고 진짜요. 진짜 초원을 달려본 적 있나요?' p.33

 

경주 실력이 우수한 말끼리만 교배해 점점 더 빠른 말을 탄생시킨다. 연재는 이 말이 아직까지 이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방식으로 몇 세대 후 태어난 말들은 얼마만큼 빨라지는 것일까. 그렇게 빨라진 말들이 끝내 달려야 하는 곳이 경마장이라면 그것은 너무나도 큰 발전과 재능의 낭비처럼 느껴졌다. p.58

 

은혜는 말들의 눈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연재는 은혜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리움을 느끼려면 그리워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했다. 말들이 실체를 기억할까. 한 번도 초원을 밟아보지 못할 말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만 느낄 것이다. 갇혀 있지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문명사회 이후 쌓아온 말들의 기억 DNA는 초원보다 마방에 더 많을 것 같았다. p.60

 

“운이 나빠서 죽게 되는 경우는 단순해요. 그 좁은 마방을 벗어나 살 곳이 없거든요. 저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무턱대고 반대하는 건 결국 그 아이들에게 알아서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미 이 행성은 인간 중심의 행성이 됐잖아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느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p.156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예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착취당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잖아요.” p.251

 

슬픔도 배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는데 놓쳤다. 현실의 무게감이 몸을 눌러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몸속에서 흐르지도, 버릴 수도 없는 물로 오래도록 고여 있었다. 비린 냄새가 났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일 때도 속에 쌓인 슬픔이 찰랑거리며 비린내를 풍겼다. 슬픔이 비림으로 바뀌자 후에는 꺼내려고 해도 비릿해서 꺼낼 수 없어졌다. 그렇게 계속 몸에 담아두었다. 고여서 비려질 때까지. 끝끝내 썩어 마를 날을 기다리면서. p.278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p.113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p.179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p.205

 

사람은 이따금 강렬하게 무언가에 끌렸다. 그게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음악일 수도, 물건 일 수도 있었다. 그 강렬한 끌림 앞에서는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월급을 전부 꼬라박을 정도의 강렬할 끌림을, 어제 연재는 다 망가진 콜리를 보고 느꼈으리라. p.93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p.113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p.205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이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p.286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p.83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p.221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p.261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p.205

 

슬픔도 배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는데 놓쳤다. 현실의 무게감이 몸을 눌러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것은 몸속에서 흐르지도, 버릴 수도 없는 물로 오래도록 고여 있었다. (중략)

그렇게 계속 몸에 담아두었다. 고여서 비려질 때까지. 끝끝내 썩어 마를 날을 기다리면서. p.278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p.285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그 의문이 연재의 생각을 좀먹기 시작한 후 연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습관이 생겼다. p.113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p.204

 

관심이 없어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그랬다. 어느 생명체의 일생을 전부 책임질 용기가 나지 않았고 생을 마감한 동물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는 것도 겁났다. p.246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p.349

 

˝내 시간은 멈춰있어.˝

˝흐르게 하는 법을 잊었어.˝

시간은 고여 있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다가도 여지없이 그날로 빨려 들어갔다.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 모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띠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p.286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예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착취당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잖아요.˝

복희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매일 뉴스에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만, 사라져 가고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관심을 나눠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볼 때 사랑스러워하는 거니까요. 근데 이런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누구나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동물을 키우면서도 동물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 함께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동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유행에 따라, 필요에 따라.˝

 

˝재미있으니까.˝

민주는 뱉어놓고 시시한 답변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이상의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재미가 없었다면 애초에 경마는 사라졌을 거였다. 경마가 몇천 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코 재미일 테니까. ˝누가요? 말이요?˝

˝아니, 인간이.˝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그럼 인간이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기술의 발달 과정에서 은혜는 철저하게 삭제되었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천개의 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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