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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지구빵집 2021. 12. 3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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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저 | 쌤앤파커스 

 

 

가만히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시간이다.

 

시간이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서로 관련은 있지만 명확히 구분된다.

 

  1.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과 관련한 일반적인 현상이다.(들을 수도 없고 소음도 없는 시간)
  2. 시간은 이 연속안에서의 간격이다.(내일, 내일, 매일, 매일매일의 작은 보폭 걸음,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
  3. 그 간격의 지속이다.(신사 양반 인생의 시간은 짧아)
  4. 시간은 특별한 순간을 가리킬 수도 있다.(내 사랑이 떠나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5. 시간은 지속을 측정하는 변수를 나타낸다.(가속도는 시간에 대한 속도의 미분이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기본적인 운동 법칙이나 심오한 자연의 문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무질서해져서 특수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있다. 

 

 

1부 시간 파헤치기의 결론이다.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의 과거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합리적으로 현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의 간격을 결정하는 토대는 세상을 이루는 다른 실체들과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장의 한 양상이다. 이 역동적인 장은 도약하고 요동치며 상호작용할 때만 구체화되며 최소 크기 아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시간과 관련하여 남는 것은 무엇인가?

 

"손목에 찬 시계는 바다에 던져버리고 시간이 잡고자 하는 것은 바늘의 움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편이 낫다. - The Grateful Dead '햇빛 아래서 산책하기' 

 

모든 과학적 진보는, 세상을 읽는 최고의 문법이 영속성이 아닌 변화의 문법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존재'의 문법이 아닌 '되어감'의 문법이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 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기간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 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책에서 발췌

 

우리는 보통 시간이 단순하게, 기본적으로 어디서든 동일하게, 세상 모든 사람의 무관심 속에 과거에서 미래로, 시계가 측정한 대로 똑같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의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순서대로 벌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는 정해졌고, 미래는 열려 있고……. 하지만 이 모두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의 특징적인 양상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시각이 만든 오류와 근사치들의 결과물이다. 앞서 언급한 지구가 평평해 보이는 것이나 태양의 회전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성장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되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조들, 즉 층들이 복잡하게 모인 것이다. 점점 더 깊이 연구가 진행되면서, 시간은 이 층을 하나둘씩 한 조각, 한 조각 잃어왔다. pp.10-11

 

시간이 흐르는 속도보다 이 점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시간의 핵심이다. 시간의 비밀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맥박의 진동 속에, 기억의 수수께끼 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있다.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은 정확히 무엇일까? 세상의 문법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메커니즘 중에서 이미 존재해왔던 과거와 아직 존재하지 않은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와 미래가 그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와 20세기의 물리학은 이런 질문들과 맞닥뜨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장소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는 예상치 못한 사실과 마주하며 당혹스러워했다. 세상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기본 법칙에서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원인과 결과, 기억과 희망, 후회와 의지의 차이 ) 없기 때문이다. p.29

 

프록시마 b에서 여동생의 삶 중 어떤 순간이 ‘지금’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것은 어떤 축구팀이 농구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했는지, 혹은 제비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혹은 음표 하나의 무게는 얼마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 축구팀은 농구가 아닌 축구를 하고, 제비는 돈벌이를 하지 않으며, 소리는 무게가 없으므로 모두 잘못된 질문이다. 농구 챔피언 대회는 농구팀을 대상으로 해야지 축구팀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돈 버는 일은 사회 속의 인간을 대상으로 해야지 제비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개념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해야지, 멀리 있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p.52

 

세상은 ‘사물’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물질로, ‘실체’로, ‘현재에 있는’ 무엇인가로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혹은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연적 발생으로, 과정으로, ‘발생하는’ 그 무엇인가로 이루어진 세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 무엇은 지속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영속적이지 않다. 기초 물리학에서 시간 개념의 파괴는 두 가지 관점 중 첫 번째 관점이 붕괴된 것이지 두 번째는 아니다. 변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의 안정성이 실현된 것이 아니라, 일시성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p.105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은 허상이 아니다. 이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다. 그러나 세상의 일시적 시간 구조가 현재주의의 시간 구조는 아니다. 사건들의 시간적 관계는 우리가 예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시간적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친밀 관계가 세계의 질서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허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한 줄로 놓여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그 어떤 관계도 없는 게 아니다. 변화와 사건은 허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하나의 세계적인 질서에 따라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118

 

우리가 시계로 기간을 측정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기간은 서로 다른 두 순간에 시계를 봐야 측정할 수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순간에 있지, 두 순간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현재만 본다. 과거의 ‘흔적’이라고 해석되는 것들은 볼 수 있지만, 과거의 흔적을 보는 것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차이의 근원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일이 내면적이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그것은 내면의 일부이며, 뇌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이다. pp.187-188

 

그래서 결국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엔트로피의 성장에 의존하여 시간의 흐름에 정착한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특별한 관점에서 기술한, 세상에 대한 근사치의 근사치의 근사치이다. 성서의 전도서 128장에 따르면, 탄생을 위한 시간과 죽음을 위한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시간의 개념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층적인 측면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제각각의 다양한 층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평생 시간의 주위를 맴돌고 나서 알게 된 시간의 물리적 구조이다. pp.203-204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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